[Opinion]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 - Lost stars [문화 전반]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게 사슴에게 키스하는 사자의 악몽일지언정.
글 입력 2017.07.05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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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게 사슴에게 키스하는 사자의 악몽일지언정.

내 삶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이 문제만 해결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영원히.
마치 동화에서 ‘그래서 왕자님과 공주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말이 
내 삶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그 요원한 끄트머리가 나에게 주어질 줄 알았지. 
나 그것만 잡고 살았는걸.

제발, 나를 그냥 꿈과 환상에 빠진 소년으로만 보지 마요.

사람은 전부 외롭대.
이 말을 생각하면 나는 곤란해진다. 
어떤 얼굴로 이 말을 들어야 하는 걸까. 비웃을까, 슬퍼할까, 
그래도 사랑한다는 표정을 지어야 할까.

다사로운 빛을 비추어주는 신은 그때 자기를 찾길 바랄 테지만…
나는 그가 그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기에
오히려 외로움과 신의 연결이 께름칙해진다. 
그래서 다른 답을 찾고 싶은데.

신이시여, 말해주세요. 
왜 젊음은 젊음에 의해 낭비될 수밖에 없는 건가요?  

아니, 답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걸어나갈 수만 있다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나는 나를 살게 할 이야기가 필요하다.
 
사냥철이 시작됐군요. 
그래서인지 양들은 의미를 찾아 서두르네요.

2013년에 나왔던 영화가 있다. 그걸 2014년에 학교에서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틀어줬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공부 말고 다른 게 다 재밌어서, 감사히 그냥저냥 보고 있었다. 영화 도중 ‘Lost stars’라는 노래가 나왔다. 그리고 이 노래와 함께, 아마 나는 홀리듯 너를 보고 있었다. 잔잔한 영화 도중 갑자기 압도적으로 나를 지배하는 그 노래가 너 같아서.
나는 그때 나에게 툭 던져진 너에게 혼이 빼앗겨 있었다.

이 글은 불친절하게도 노래 ‘Lost stars’가 영화 ‘Begin again’에 나왔네 어쩌네 설명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너에게 헌정하는 글도 아니다. 
이 글은 어떤 순간을 위해 쓰였다.
 
절대로 우리의 행복했던 순간이 당신을 슬프게 하지 마세요
어제였나, 사슴에게 키스하는 사자를 본 적 있어.

이 노래를 다시 들은 건 어디쯤이었을까,
그때 우리는 일어나야 했지만, 머뭇거리는 나를 잡으며 너는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만 듣고 가자’
 
너는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어.
이게 내가 바라던 끄트머리일까, 너의 손은 나를 향한 욕망인가.
너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너를 몰라, 나는 나도 몰라.

우리는 누구인가요
이 우주에서 먼지같은 존재일 뿐일까요

근데, 너는 나를 정확히 아는 체하는구나.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건 악몽이야.

너는 이 악몽을 잘 모르는구나. 그럼,
좀 웃긴 생각이지만 이 노래로 역할놀이를 좀 하자. 그래야 나와 너를 정확히 볼 수 있어. 우리 사이는 악몽이야. 그게 우리 둘 사이에 적절하지. 홀렸으나 서로의 집착과 결핍을 모르니.

아, 너는 말했지, 내 슬픔을 알고 있다고.

난 내가 당신이 저기서 우는 걸 본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도 들은 것 같아.
난 당신이 분명 저기서 우는 걸 들은 거 같아요.
근데, 사람은 다 외로우니까.

너는 그거인 거야. 이 노래 속에서 누군가 슬퍼하는 걸 보는 절대자를 추구하는 사람. 나의 구원자. 누군가 너의 이름을 부르고, 우는 걸 듣는, 근데 있잖아, 너도 어쩔 수 없이 결핍되어 있어서 그 사람을 영원히 구원해주지 못해. 그러니까 넌 내 끄트머리가 아니야.


역할놀이가 끝났다. 악몽이 끝났다. 가짜 끄트머리는 판명 났다. 이것으로 나를 살게 했다면 이 순간과 노래는 그저 이야기이다.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 답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그냥 걸어나가게끔만 해줘.
 
삶의 다음 장에선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다른 끝이 주어질지도 모르잖아요.
우리가 눈물 속에서 함께 춤추는 그런 아름다운 끝이.

악몽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하고 살던 도중, 문득 깨달았던 적이 있다. 
내가 잡고 있던 끄트머리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내 오른손이 잡고 있던 끄트머리는 내 왼쪽 어깨였으며, 
내 왼손이 잡고 있던 건 내 오른쪽 어깨였다는 것을, 
나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지.
끄트머리라는 것은 본래 없었으며
내가 잡고 있었던 건 내 삶 자체였음을 깨달으면서.
상상은 헛꿈이야. 마치 사자가 사슴에게 키스하듯.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방황하는 별이 아닐까요.
어둠을 밝히려 할 뿐인

노래가 끝났다. 악몽은 허구였으나, 삶은 이어진다.
다음 장은 버틴다면 펼쳐질 거라고 믿는 것뿐이다.
사람을 살게 하는 이야기가 이렇게 잔인할 수도 있는 거다.


[성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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