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톨스토이, 그의 고집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6.22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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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는 여성혐오론자이면서 예술을 혐오했고 육식을 혐오했으며 검소하고 소박한, 노동하는 삶을 찬양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 옹호론자도 아니었으며 자본주의는 더더욱 싫어했다. 죽을때까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는 수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하고 외로워보이기까지 한다. 자신만의 어떤 가치와 신념을 강요하고 설득시키려 논파하는 것은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좋은게 좋은거지 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라는 식의 모든걸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오히려 모든 것을 몰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 하는 것은 흑백논리지만 어떤 가치를 더 숭고하게 해주기도 한다.

톨스토이가 가진 고집스러운 신념들 중 가장 눈여겨 보게 된 것은 그가 채식주의자라는 점이었다.그는 고기를 혐오했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절식을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 즉 절식의 '첫걸음'은 육식 중단이어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한다.


톨스토이는 궁극적으로 육식의 중단을 득도의 차원으로 연장시킨다. 육식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수난과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인간이 자기 내부에 있는 최고로 거룩한 정신적 능력, 즉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연만을 불필요하게 억눌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내부에는 살생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박혀 있는데 고기를 먹기 위해 그것을 억눌러야 하는 것은 지극한 모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육식은 '자연에 거슬리는 행동'인 것이다.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184p 中


예전에는 채식주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 고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채식주의라 함은 나와는 멀게 느껴지는 신념일 뿐이었다. 그러나 1년 전 몽골로 여행을 다녀와서는 고기에 대한 내 시선이 달라졌다.

몽골에서 염소의 배를 가르는 모습을 봤다. 잔인한 걸 보는걸 매우 싫어해서 끝까지 안보려 했다. 그때 여행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래도 내가 먹는게 어떻게 해서 식탁에 올라왔는 지는 봐야하는 것 같다는 말에 보러 갔었다. '인간의 내부에 살생에 대한 거부감이 뿌리박혀 있는데 고기를 먹기 위해 그것을 억누른다'는 대목이 상당히 와닿았다. 그렇다고 해서 채식주의자가 되겠다는 용기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이 고기가 살생을 통해 내 식탁에 올라왔다는 것을 각인하며 먹는 것과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 맛있는 고기를 볼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한층 경건한 마음으로 고기를 접하게 된다. 몽골에서 염소가 배를 가르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깊이 박히지 않았을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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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서 몇번의 전쟁을 치뤄야
저런 확신과 신념을 가질 수 있을까?

- tvn드라마 미생 13화 중


예전의 나는 나와 반하는 의견도 품을 줄 알고 모두를 존중할 줄 알게 되는 사람이 진정으로 그릇이 큰 사람이라 생각했다. 자기 말만 맞다며 고집부리는 사람을 보면 바로 눈살을 찌뿌리기 일수였다. 그러나 어떤 가치에 신념을 갖는 것, 고집을 부릴 줄 아는 그 기세를 갖는 것도 상당한 내공과 학식을 통해 생긴다는 것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알맹이 없이 고집만 부리는 기세는 금방 꺾이기 마련이다. 그가 가진 편견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속에 분명히 더 높은 차원의 그만의 신념이 있었기에 톨스토이는 대문호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잔뜩 열이 받은 채로 책 초반 부분을 읽었었는데 그래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덮을 수 있었음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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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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