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랑에서 고독까지. 영화 < 베를린 천사의 시 >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5.2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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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천사의 시
(Wings of desire / Der Himmel Über Berlin) 

감독 빔 벤더스. 독일. 1993 개봉. 130분


베를린 천사의 시 포스터.jpg
 

 < 베를린 천사의 시 >는 1987년 독일에서 제작되었다. 영화는 천사들의 시각에서 보이는 베를린의 모습을 흑백으로 그려낸다. 베를린의 천사들은 인간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들은 베를린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때때로 인간이 절망의 순간에 처했을 때 옆에서 한 줌의 희망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또한 20년 전이나, 200년 전의 사건까지도 꼼꼼히 기록하고 기억하는 그들은 살아 있는 역사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역사적인 존재들은 현재 일어나는 세상의 아주 사소한 사건에도 흥미를 가지고 주의 깊게 관찰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분단된 베를린은 독재와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영화는 인물들의 말을 통해 베를린의 현주소를 암시한다. 늙은 시인은 폐허가 된 포츠담 광장을 보며 탄식하고, 사람들이 친절을 잃어버렸다고 한탄한다. 독일은 지리적으로는 동, 서독으로만 나누어졌지만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부에서 분열하고 또 분열되었던 것이다. 자기들만이 아는 암호로 외부를 배척하는 모습은 자신만의 암호로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했던 히틀러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폐허가 된 베를린의 모습과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사람들을 통해 전쟁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베를린의 우울한 정서를 드러낸다.


마리온3.jpg


 이러한 불안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천사가 뛰어내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심하게 흔들리는 촬영 기법을 사용하여 불안한 사람들을 비추고 전쟁 장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장면의 끝에는 추락을 두려워하는 공중곡예사 마리온의 불안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불안은 불안으로 끝나지 않고, 마리온은 자신이 인간이기에 두려워하면서도 괜찮아지는 것이 인생이라며 자신을 위로한다. 천사 다미엘은 인간들의 ‘인간적인’ 면모, 특히 마리온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면모에 깊이 빠져든다. 그는 전능한 존재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되기를 선택한다.
 
 흑백과 컬러로 양분된 두 세계에서 한 인물이 다른 세계로 건너간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다미엘이 인간이 됨으로써 그의 세계는 단조로운 흑백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색상을 띄게 된다. 그의 시각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영화도 자연히 흑백에서 컬러의 세상을 그려낸다. 영화의 배경이 분단된 베를린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다미엘이 인간이 되는 행위는 분열된 세계를 통합하려는 노력이다. 작품의 배경이 분단된 베를린이라는 점에서 감독은 작품 속 철학적인 담론들을 통한 분열된 세계의 통합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감독의 손을 떠난 작품이 나에게 왔을 때, 내 눈에 더욱 인상 깊게 보였던 것은 시공간을 떠나 모든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불안과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천사 다미엘은 “영원한 시간 속을 떠다니느니 나의 중요함을 느끼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들었던 의문은, ‘정작 인간들은 자신의 중요함을 느끼고 있는가’였다. 영화 속에는 수많은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고민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서 한참 지났지만, 현대에도 그러한 고민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먹고 살 문제를 고민하고, 진로를 고민하고, 주변 사람과의 일을 고민하고…때때로 그런 고민들은 존재에 대한 고민으로 흘러간다. 영화 중반부 마리온의 고민에 이어서 나오는 피터 한트케의 시는 존재에 대한 의문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존재의 고민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시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베를린 천사의 시 als das kind...jpg

 
아이가 아이였을 때
그때는 이런 게 궁금한 시절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나는 여기에 있고 저기에 있지 않을까?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것들이 
단지 세계 앞에 있는 세계의 환영은 아닐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나인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없었다는 일이,
그리고 이렇게 나인 내가 언젠가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될 거라는 일이?

-아이가 아이였을 때, 피터 한트케


 시에 나오는 아이의 질문은 인간의 것이기도 하지만, 천사들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을 느끼고자 인간이 되기를 선택하는 천사들은 순수한 열망과 호기심에 기반한 결단력을 지닌 존재이다. 그들은 불안과 허무에 휩싸인 불완전한 인간 세계에 들어가서 인간처럼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왜 나는 나고 네가 아닐까? 라는 존재의 의문을 품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에는 많은 개인들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마리온의 이야기이다. 마리온은 불안과 의문을 지니고 살았던 인간이다. 그녀는 공중 곡예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그녀의 내면에는 항상 추락에 대한 불안이 자리한다. 그녀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 불안을 이겨내기도 하고, 불안 때문에 허무와 무기력을 느끼기도 하며 곁에 있는 다미엘의 존재를 느끼고 위안받기도 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불안하고 불완전한 인간의 내면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 것 같다. 현대인은 추락의 위험 대신 낙오의 위험을 느낀다.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들도 스펙 쌓기에 집착하며 낙오되지 않으려고 경주한다. 자신의 중요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타인에 의해 능력이 평가되고 필요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공감을 잃어버린 세대는 여전히 경계 속에 있고, 타인을 믿지 못하고 친절할 수 없다. 마리온이 허무에 빠졌을 때처럼,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다.

 하지만 추락에 대한 불안을 안고서도 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불안과 허무는 안고 가야 할 불가피한 감정이다. 천사들에게 들리는 수많은 목소리들은 모든 인간들이 내면의 불안을 안고 살아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이 존재하는 이상,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마리온처럼 사랑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도 있고, 다미엘처럼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의지의 힘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고독.JPG

 
 영화는 다미엘과 마리온의 사랑으로 결말을 맺는다. 마리온은 “우리 둘의 결단은 세계의 결단”이라며 그들의 사랑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실제로 분열된 세계의 징검다리와 같은 존재인 다미엘이 인간이 되고, 마침내 다른 인간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상징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나에게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결말보다 “그(다미엘)로 인해 고독할 수 있었다.”는 마리온의 대사였다. 고독과 쓸쓸함은 자기 자신 그 자체이다. 즉 고독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침잠을 의미한다. 나에게 사랑은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해지려 노력하는 행위의 일환이었다. 그 결합 자체가 내면의 빈 자리를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합 자체는 불완전함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 단 한 번의 순간을 영원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랑하는 인간의 힘이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각자의 중요성를 인정하며 서로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침잠할 수 있게 되는 사람들. 사랑의 힘은 이처럼 홀로 선 개인들이 유대를 형성할 때 빛을 발한다.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관계 맺기도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의 일환이라는 사실이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며, 타인 없이는 살 수 없는 너무나도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존재에 대해 치열하게 탐구할 수밖에 없는 우리. 그 끝에 마침내 완연한 고독을 얻었을 때, “괜찮아. 그런 게 인생이지.”라고 말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임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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