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4년째 홈베이킹 중,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 [문화 전반]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된 폭풍같았던 홈베이킹의 흔적을 돌아보다
글 입력 2017.05.2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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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홈베이킹에 푹 빠지게 되었다.

사실 처음으로 빵을 직접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이렇다. 당시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아서 칼로리가 낮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은 뭐가 있을까 찾던 중이었다. 나는 빵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시중에서 파는 빵은 칼로리가 너무 높아서 ‘집에서 내가 건강하게 빵을 만들어 볼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직접 만들면, 설탕이나 버터 양을 임의로 조정해서 풍미는 좀 떨어지더라도 살찔 염려는 별로 없는 신개념 웰빙 빵을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이 완전히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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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만들었던 빵은 정체모를 브라우니(?)였다.

레시피를 보니 설탕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대로 만들면 지나치게 달 것 같아서 설탕량을 반으로 줄였더니 브라우니라고 하기도 민망한 이상한 맛의 결과물이 나왔다. 설탕을 줄이긴 했어도 많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단맛이 1도 안 났던 것이다. 보기에는 맛있어 보였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그 다음부터는 설탕을 아주 조금만 줄이면서 베이킹을 하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도 건강하고 살 찔 염려 없는 빵을 만들겠다는 허황된 꿈을 좀처럼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맛있지만 고칼로리의 베이킹을 하거나, 아예 하지 않거나. 두 가지 선택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베이킹에 싫증을 내고 그만뒀어도 되었다. 차라리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이게 나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 두 번 베이킹을 시도하다 보니 점점 더 흥미가 붙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맛있고 칼로리 폭탄인’  베이킹의 세계로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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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블로거들이 올린 레시피를 보며 각종 제과류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물론 실패도 아주 많이 했다. 밀가루에는 글루텐이 있어서 오래 치댈수록 질겨지기 때문에 구워져 나온 빵의 모양과 식감까지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무조건 오래 꼼꼼히 섞으면 좋은 줄 알고 마구 밀가루 반죽을 거품기로 섞다가 망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 액체반죽에 가루류(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등) 을 넣을 때는 바로 넣지 않고 체쳐서 넣어야 뭉치지 않고 더 좋은 식감을 낼 수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고체상태의 버터나 실온에 오래 두어 말랑해진 버터를 사용하라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데, 그걸 모르고 ‘버터가 버터지 고체냐 액체냐가 뭐가 중요한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전자레인지에 돌려 녹인 버터를 사용하다가 왕창 망쳐서 눈물을 삼키며 아까운 반죽을 통째로 하수구로 흘려 보낸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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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약간의 노하우가 생겼다.

실력도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는 타르트/파이류 만드는 데 푹 빠지게 되었다. 바닥에 깔리는 타르트지 반죽과, 그 안에 채워 넣어 구울 필링 반죽을 따로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 액체 상태였던 필링이 오븐에서 구워지면서 고소한 냄새와 함께 고체로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자면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루베리 치즈 타르트, 에그 타르트, 레몬 머랭 타르트, 가나슈 타르트, 모카 치즈 타르트, 애플 파이, 호두 파이 등 나름대로 꽤 많은 결과물이 내 손에서 탄생했고, 그 중 몇 판은 예쁘게 포장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름 뿌듯하다. 물론 맛이나 모양이 전문 제과점에서 파는 것엔 전혀 못 따라가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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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베이킹을 취미로 삼는 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집 안에 맛있는 음식(특히 디저트나 빵류) 가 있으면 그 사실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서 집어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살 찌기 딱 좋은 습관을 갖고 있는 거다. 그런 내가 베이킹 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드니 결과는 불 보듯이 뻔했다. 체중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평소에 운동을 잘 다니다 보니 심각하게 살이 찌진 않았지만, 건강에도 분명 좋지 않은 음식을 계속 먹는 건 바람직하진 않은 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냥 케이크가 아닌 ‘내가 만든 케이크’가 갖는 의미는 아주 크다. 내 손에서 탄생한 빵을 요리조리 살펴 보고, 칼로 잘라서 단면을 감상하다 보면, 일종의 모성애 같은 게 생긴다. 자꾸 애착이 가니 더 먹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아마 홈베이커들은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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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바빠서 몇 년 전처럼 열성적으로 베이킹을 하지는 않는다. 건강을 생각하면 잘 된 일이다. 하지만 가끔씩 따분할 때면 다시 빵을 만들곤 한다. 지금도 오븐 안에서 부풀어 오르는 반죽의 모습을 관찰하며 다 구워질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웰빙 빵을 생산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품고 야심차게 시작한 홈베이킹이 입 안에서 황홀하게 퍼지는 버터와 설탕의 향연으로 타락(?)한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홈베이킹만 안 했어도 지금 체중이 2-3kg은 덜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좋은 건 가끔씩 베이킹을 하는 것이다. 집 안에 각종 빵이 너무 많이 쌓이기 시작하면 살도 찌지만, 그보다도 전기세 폭탄을 맞을 수도 있으니 적당한 수준에서 즐긴다면 나름대로 좋은 취미인 듯 하다.

이제 뜨거운 오븐 앞을 오가기에는 너무 더운 계절이 다가오지만, 가끔 내키면 쿠키라도 몇 판 대량생산해야겠다.


[박한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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