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별이 우리를 찾는 방식: 영화 '어느 날' [시각 예술]

글 입력 2017.04.1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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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날' 포스터 >


 
아내가 죽은 후 삶의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보험회사 과장 ‘강수(김남길 분)’.
회사로 복귀한 그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미소(천우희 분)’의 사건을 맡게 된다.
‘강수’는 사고 조사를 위해 병원을 찾아가고,
그 곳에서 스스로 ‘미소’라고 주장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꾸만 자신에게만 보이는 ‘미소’를 수상하게 여긴 ‘강수’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제가 보여요?” 

어느날,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 의식을 잃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 ‘미소’는
병실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가 영혼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전 처음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 ‘미소’는
유일하게 자신을 볼 수 있는 ‘강수’를 만나게 되고
그동안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데..


(다음 영화 줄거리에서 발췌)  

개봉일: 2017년 4월 5일
감독: 이윤기
출연진: 김남길, 천우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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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날'의 두 주연 배우 김남길(강수 역)과 천우희(미소 역) >


 '어느 날'은 만남과 이별에 대한 영화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영화일 것이다. 위의 캐릭터 포스터에서 남자 주인공인 '강수'를 표현하는 대사인

"나한테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는 영화 '어느 날'이 표현하고 있는 만남과 이별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사실 대부분의 만남과 이별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의도해서 시작되는 만남이나, 예고된 이별은 사실 잘 보기 힘들지 않은가. 항상 상상도 못한 일은 너무나 담담하게 우리를 찾아온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강수는 아내를 병으로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보험회사를 다니며 환자들이 보험금을 수령할 만 한지 아닌지 감시하고, 어떻게든 회사에 손해가 가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그런 강수에게 있어서 영화 전반에서 최대의 골칫거리는, '미소'라는 이름의 여자다.

 시각장애인인 미소는, 천애고아로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다. 강수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든 미소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식의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바로 그 때, 강수의 앞에 또 다른 미소가 나타난다. 미소의 영혼과 같은 존재로, 그녀의 모습은 오로지 강수에게만 보인다. 처음에는 귀신을 봤다고 생각하며 피하지만 계속해서 마주치면서, 강수는 그녀에게 정을 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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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날' 포스터 >


 사실 영화의 초중반부는 어쩐지 어색하다. 설정 자체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를 잃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웃으면서 일을 하고 병원에서 환자가 자살하려 했다는 말을 꾸며내야 하는 강수의 비극적인 상황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인 미소가 갑자기 앞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을 낯설어 하거나 무서워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아서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의 몸은 마치 유령처럼 어떤 것도 만질 수 없는데 어딘가에 걸터앉는 등의 모션을 취할 수 있다는 것도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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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느 날' 중에서 >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점은, 그렇게 있을 수 없는 상황들이 뭉치고 뭉쳐, 결국 만들어내는 클라이맥스였다. 김남길의 아내와 관련된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다. 보통 병으로 죽는 것은 굉장히 감정적으로 그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록 짧게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김남길의 아내가 아파서 입원해있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던 갈등의 표현이 무척 섬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는지, 변하게 하는지를 잘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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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며 가장 좋았던 장면 중의 하나, 
김남길이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생각이 확실해졌던 장면 >


  그리고 미소가, 자신의 어머니가 다시 원래대로 살아날 수는 없지만 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자신을 간호하면서 지쳐가는 모습이 싫다고 하는 장면에서 강수만이 유일하게 미소를 볼 수 있었던 당위성이 어느 정도 성립되었다. 미소는 강수에게 자신이 지금 죽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강수는 괴로워한다. 죽은 아내에 대한 생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단순히 사고로 죽어버린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온 병,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병은 그녀의 성격까지 바꿔버리고 만다.

"내가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지?"

 강수의 아내는 강수에게 이런 원망 섞인 말을 하고는 결국 자신이 더 비참해지기 전에 자살을 시도해버린다. 그리고 강수의 아내가 응급실로 실려온 바로 그 순간 처음으로 미소는 강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가장 큰 슬픔이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는 것이 된 순간,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영혼이 나타났다는 점은 강수와 미소의 관계가 영화의 초중반에 그려지는 것처럼 상투적이지만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김남길 천우희.jpg
< 강수에게 미소는 이별을 받아들이게 해주는 존재다 >


 강수는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울먹인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아픔을 준다. 미소는 강수에게 아픔을 상처로 남기지 않게 해주는 존재다. 바다 씬에서 미소는 한 순간 강수의 아내로 변한다. 결국 그가 바라보고 싶었던 존재를 처음으로 직시하게 된 강수는 느닷없는 이별에 더 이상 어쩔 줄 몰라하지만은 않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 해서 그 사람과의 기억들까지 모두 상처로 남길 수는 없다. 그 기억들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강수는 결국 미소를 자신의 손으로 보내주게 된다.
 
 사실 파도 장면 이후, 강수가 미소의 연명을 돕는 기계를 직접 끄는 장면을 보면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엔딩씬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확 깼는데, 이 영화의 상당 부분이 그렇게 어디서 본 듯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분명한 한계로, 영화 전반적으로 담아낸 도시와 하늘의 풍경이 굉장히 섬세하고 따뜻했다는 것은 좋았지만, 자연스러운 서사이면서도 동시에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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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환상의 빛' 중에서, 엔딩의 바다 장면 >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마지막 장면의 파도 씬을 보며 좋아하는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환상의 빛'이 생각났다. 전남편의 자살은 여주인공에게 평생의 짐이 되어, 내색하지도 않고 삭혀야만 하는 것이 된다. 영화는 내내 평온하게 흘러가지만, 바다를 바라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먹이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정말 강렬하다. 그런 그녀를 두번째 남편이 위로하며 하는 대사가 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자, 가장 유명한 대사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전에는 배를 탔었는데, 
홀로 바다 위에 있으면 저 멀리 아름다운 빛이 보였대.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버지를 끌어당겼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 영화 <환상의 빛> 중에서

 '어느 날' 이 전하고 싶었던 것도 결국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어느 날의 이별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위로가 아닐까. 비록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김남길의 연기는 빛났고, 천우희의 천진난만한 연기 역시 좋았다. 무엇보다 감독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따스하게 그려내려는 노력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을 영화 보는 내내 받았다. 그리고 그 마음만은 인위적이지 않게 온전히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면, 어느 날 무턱대고 영화관으로 가서 봤던 영화 치고는 꽤나 나쁘지 않았다.


 
< 영화 '어느 날' 메인 예고편 >


[최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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