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르코르뷔지에 전시회를 보고 [시각예술]

글 입력 2017.03.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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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코르뷔지에.jpg


예술의 전당 전시는 유독 한 명의 예술가에게 집중하는 전시들이 많다. 최근의 예시들만 보더라도 알폰스 무하, 앤서니 브라운, 타마라 렘피카와 같은 작가들을 개별적으로 조명하고, 그들의 예술적 총체를 보여주는 전시들이 많았다. 이러한 대담한 개인전의 형태는 3월 26일까지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르코르뷔지에 전시에서 정점을 찍은 것 같다.
 
작가 한 명의 이름을 내걸고 전시를 한다면 흔히 말하는 네임 밸류 name value와 인지도가 있는 작가여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생소했다. 사실 그는 아파트라는 공동 주택 형태를 최초로 고안한 건축가이자 다양한 회화, 조각 작품들을 만든 20세기의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의 업적보다 피카소나 아인슈타인과 교류했다던 그의 화려한 인맥에 눈길이 더 갔던 나는, 전시를 보고 난 후 르코르뷔지에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 전시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겸손하고 성실했으며, 시대를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던 르코르뷔지에라는 인물 자체의 아우라와 업적도 있겠지만, 전시의 기획에도 많은 공이 있다. 먼저 특이했던 점은 이 전시의 구성이다.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일반적인 연대기적 구성을 취하지 않는 대신, 이 전시는 르코르뷔지에가 죽은 후에 받은 헌사나 칭찬, 그리고 그의 성대했던 장례식 영상으로 시작한다. 이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그의 건축물들을 소개시켜준다. 르코르뷔지에가 익숙하지 않은 다수 대중의 관심을 한번에 끌 수 있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의 기법이라고 생각했다.
 
또 하나 이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건축모형, 회화, 조각과 같은 실제 작품에 못지 않게 그 수가 많은 텍스트와 인용구들이다. 전시장 벽면에는 각 부분에 해당하는 설명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적혀 있다. 시대에 대한 설명,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와 같이 해석이 필요한 인용구에 대한 설명 등 다른 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구체적인 텍스트가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관람객들을 도와줬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한 명의 예술가를 깊이 이해하고, 오래 기억에 남게 하는 데는 분명 효과적인 것 같다.
 
이 전시를 기획한 코바나 콘텐츠의 대표 김건희씨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스포츠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의 내면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해요. 잘 될 수 있을까, 저 사람이 날 좋게 봐줄까. 거장들 역시 얼마나 그게 얼마나 치열했겠어요. 인간의 힘겨움, 외로움, 고독. 이런걸 이겨낸 거장들의 프로세스를 보자는 거죠. '저 사람 나보다 더 심하구만' 하면서 위로도 되고. 그런 전시를 만들고 싶었어요.”  파리 출신도 아니고, 늦은 나이에서야 인정을 받은 르코르뷔지에를 조명한 이 전시는 이런 마인드를 가진 기획자 덕에 그의 업적들뿐 아니라 그가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큰 감명을 받고 가는 전시회가 되었다.
 
예술이 무엇이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기에 내가 계속 찾는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예술을 즐기는 것은 나에게는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삶의 바쁜 흐름 속에서 느리게 집중되어 흘러가는, 그렇게 예술을 즐기는 시간이 나에게 매우 소중하다. 이번 르코르뷔지에 전시는 나에게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주었고, 몰랐던 인생 선배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해주었다.


[김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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