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결국 우리는 '실내인간'일지도 모른다 [문학]

글 입력 2017.03.13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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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특정 분야의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연기를 하는 가수, 또는 음악을 잘하는 미술학도와 같은 연예인들. <실내인간>을 쓴 작가 이석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는 가수로, 누군가에게는 작가로 더 익숙할 수 있는 이름이겠지만 그는 1996년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로 가장 먼저 대중들의 앞에 나타났다. 앨범의 모든 곡을 작곡할 만큼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난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담담하게 감정을 노래하는 가사들을 살펴보면 현실을 이야기하는 데에서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실내인간>은 산문집 <보통의 존재>에 이어 2013년에 발간된 책으로,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장편 소설’이라는 쉽지 않은 첫 시도였지만, 노랫말처럼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문체는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안고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한다.


이석원.jpg


이석원의 두 번째 작품 <실내인간>은 크게 보면 주인공 용우, 제롬, 그리고 우연한 만남으로 친구가 된 용휘의 우정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셋의 대화를 통해 틀 안에 갇힌 채 타인은 물론 자신의 진심까지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실내인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 속 인물 제롬은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 ‘기브 앤 테이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에 반해 용휘는 들어주기만 할 뿐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을 알고 지냈음에도 가족·직업·인간관계 등 그 어떤 것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그렇게 용휘에 대한 은근한 호기심만 커질 때쯤, 둘은 놀라운 사실을 듣게 된다. 용우와 제롬이 TV를 보며 욕했던 강아지 수 마리를 쥐약으로 죽인 범인이 용휘이며, 사실 그는 ‘방세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유명한 작가라는 것. 게다가 방세옥은 작품의 흥행을 위해 서점에 불을 지르고,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 한 권짜리 책을 일부러 두 권으로 나눠서 팔며, 끊임없이 표절설까지 휘말리던, 그야말로 문학 세계에서는 평판이 최악인 얼굴 없는 작가라는 것까지. 작가 방세옥이 아이 폭행부터, 사재기, 표절까지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용우는 알 수 없는 소리를 가끔 하긴 했어도 고민이나 속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던 ‘용휘’라는 존재에 대해 점점 더 회의를 두게 된다.  
 
책에서 비밀스러운 인물 용휘는 자신이 사랑하고 그토록 원했던 한 여자와의 재회를 위해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물이다. 더 많은 책으로, 할 수 있는 만큼 그녀에게 더 많은 인사를 건네려 정작 ‘김용휘’라는 인물은 가두고, 숨기고, 틀에 가두면서까지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고 문학상도 받게 된 스타작가는 꿈꾸고 기다렸던 옛사람과 연락이 닿게 되지만 다른 사람과 이미 결혼을 한 그녀와의 재회는 허무하게, 종이접기보다 더 쉽게 끝나고 만다. 심지어 사이트에 검색하면 겨우 프로필이 나올까 말까 한 B급 무명작가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안채로.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사회에서 ‘보여주기’는 여러모로 비일비재하다. 특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SNS는 스크롤을 내려도 끝이 없고,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자신의 모자란 점은 가리기에 바쁜 요즘이기 때문. 그러는 와중에 정작 내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지, 얻고 싶은 것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망각하고 있는 것이 서글픈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왠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오늘날 수많은 ‘실내인간’을 미숙하게 바라보지 않았던 작가 이석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더랬다. 수많은 오류를 범하고 살아가고 있을 어설픈 우리이겠지만, 용휘의 간절함이 끝났다고 해서 우리의 기회가 끝난 것은 아니지 않냐며. 그래서일까, 아마 나는 내일 이석원의 책을 찾으러 다시 또 도서관에 가게 될 것 같다.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그게 어쩌면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만 마음이 아득해져버렸다.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저씨.”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나는 그가 고마웠다.


[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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