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많은 촛불들 속, 우리가 발견한 것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12.23 03:2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예술 작품을 막기 위해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가 암흑 속에 가려져있을 때 그것은 최대의 위력을 발휘합니다. 사람들이 그 명단을 모를 때, 그것이 존재한다는 소문만이 돌 때. 그래서 제 주변의 많은 예술가들이 지난 몇 년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소문만을 듣고 자기 작품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거나 상을 받지 못하면 그게 블랙리스트 때문이라고 믿었어요. 그럼 그렇게 믿는 예술가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다음 작품부터는 죽은 사람들에 대해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철학가 지제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전체주의 사회는 처벌을 집행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누구도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처벌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사회의 예술가들은 고유명사를 피하고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외면하고 실존 인물에 대해서 절대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사건들은 더 이상 예술의 소재가 되지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런 예술 작품을 원하세요? 그런 예술 작품을 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번 겨울 동안 추위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나가서 촛불을 들고 지켜왔던 많은 것들 중에는 소중한 예술적인 가치들이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에요. 사실은 저를 포함한 모든 예술가들이 여러분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거예요. 저희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켜주세요.”

- 손아람 작가 JTBC <말하는대로> 中


 

  2016년 한 해가 끝나간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중 가장 빛이 났던 순간을 고르라면 당연히 ‘200만 국민이 함께한 촛불집회’를 고를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개인의 일을 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같은 목소리를 내는 순간, 이것처럼 국민들이 빛이 났던 순간이 없었다고 감히 말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리스트가 공개되었다. 하지만 리스트가 공개된 뒤 오히려 예술가들은 자신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지 않은 사실을 부끄러워하였다. 내가 찾아간 2차 예술대학생 시국대회에서 나와 악기를 연주하신 한 졸업생 예술가는 “내가 이 자리에 나와 후배들 앞에 서 있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씀을 웃으면서 하셨다. 그 웃음이 어딘가 씁쓸해보였다.

 
1611211609537000.jpg
 
 
  배우 유아인은 자신이 속한 ‘스튜디오 콘크리트’ 구성원들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전 자신의 SNS에 1960년대 가수이자 흑인 인권운동가 니나 시몬의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니나 시몬은 영상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속한 시대와 상황을 반영하기로 선택했어요. 그게 제 의무입니다.",  "우리가 이 나라의 형태를 갖출 거예요. 아니면 더는 전혀 형성되지 않겠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해요. 시대를 반영하지 않고 어찌 아티스트가 되겠어요?"

  집회가 열기를 띄울 때, 사람들을 놀라게 한 광경이 펼쳐졌다. 과거 경찰과 대립하고 치열한 몸싸움이 일어났던 광경과는 사뭇 달랐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꽃을 건네고, 경찰차의 차벽을 꽃으로 장식했다. 여러 명의 작가들이 함께하는 <차벽을 꽃벽으로 (Wall of Flowers)>라는 프로젝트였다. 시민들은 꽃그림으로 디자인 된 스티커를 경찰차벽에 붙였다. 이후 의경들이 이 스티커를 떼는 데에 고생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몇몇 시민들은 새벽까지 남아 차벽에 붙은 스티커를 자발적으로 떼어내었다. 이 프로젝트는 시위가 거듭할수록 더 발전된 형태로 진행되어갔고, 국내는 물론 해외 미디어도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IMG_9576.jpg
 
IMG_9809.jpg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박종호 작가가 쓴 에세이의 제목이다. 수많은 촛불들 속, 우리가 본 것은 전시장에서만 보던 멀리 떨어져있는 예술이 아닌, 우리 삶 속에서 위로가 되어준 예술이었다. 사람들이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퍼할 때 살며시 다가와 같이 슬퍼해주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시대상황 속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저항하였고 시민들은 이에 함께했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예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가 "우리가 왜 예술을 삶 속에서 가까이 하고 살아야하는데? 그게 없어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걸."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그렇다면 예술은 왜 존재하는거죠?" 우리가 지키기 위해 힘쓴 것들 중에는 분명 '예술의 자유'가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예술. 사람들은 그런 예술을 원한다. 예술은 우리를 위해 아파하고, 우리는 예술이 사회의 아픔을 담아낼 수 있게 지켜낸다. 아름다운 상호작용, 이것이 우리가 불빛 사이에서 발견한 것이다.
 
 
 
657476b99ba1b9d82e6f137d2acc6cd8_6VEimG641Kt96sqgzMQsJeUbaiwg.jpg


[박이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