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 밥을 먹다 >

글 입력 2016.10.27 00:0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밥을먹다 포스터 인쇄(B3,4절).jpg
 




아트인사이트(www.artinsight.co.kr)를 통해 연극 <밥을 먹다>를 관람했다. 연극을 보기 전에 '밥을 먹으면서' 느낀 그 따뜻함을 안고 예술공간 서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랜만에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연극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안고 무대의 시작을 목도했다.






<시놉시스>

단칸방 지하 101호 강주네 집.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혼자가 된 지 7년. 그녀의 조용한 일상에 감옥에서 출소한 삼촌 성훈이 나타난다. 권투를 다시 시작해 보겠다는 삼촌 성훈과 그것을 반대하는 강주는 심하게 다툰다. 그러나 이들은 가족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성훈은 한 통의 전화를 받는데...






시놉시스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강주 그리고 그녀의 삼촌인 성훈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고 있던 강주의 집으로 출소한 삼촌이 찾아와 얹혀살기 시작하면서 극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삼촌이 없는 동안 이미 강주가 만든 인연들(지금 살고 있는 집 주변의 이웃 제임스 리, 장미화, 아르바이트하는 공시생 임창준)이 강주 그리고 성훈과 더욱 더 긴밀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좋았던 점은, 일상의 장면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노력한 것들이 여실히 보였다는 점이다. 입장해서 무대를 보면 객석 앞에서부터 시작되는 검은색 바닥의 무대가 마치 공터마냥 일부 비워져 있고, 조명이 집중되는 곳 밑에는 구별되는 색으로 생활공간(강주의 방)이 꾸며져 있다. 그 공간은 정말 원룸에서 생활하는 청춘들이라면 누구나 해놓고 살 법한 모습이었다. 낮은 매트리스에 깔려있는 이불, 옷장이 아닌 행거와 플라스틱 서랍장으로 옷가지를 정리해놓은 모습, 자취용 가전과 주방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보여주기용 세트로 갖춰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극 중에 실제로 여러 장면들에서 사용되었다. 첫 씬에서는 강주가 프라이팬에서 간단하게 볶음요리를 하고,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내고 밥솥에서 밥을 퍼서 간소한 상차림을 만들었다. 또한 매번 이웃들이 집을 찾아오면 강주는 티백을 꺼내서 차를 우려냈다. 삼촌이 혼자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고, 강주가 아플 때엔 죽을 만들어 먹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하나 그려지면서 달그락거리는, 그 생활감 넘치고 정감가는 소리들이 극장을 가득채웠다. 적막한 가운데 그 소리들이 계속 들리니 아주 짧은 순간동안은 ASMR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또한 극 중에 관객들과 정말 소통하며 극을 만들고자 했던 노력들이 느껴졌다. 소소한 것이지만 체육관 장면에서 체육관 전단지를 객석에 나눠주며 인사하는 모습이나, 권투 글러브를 낄 때 앞좌석에 앉은 관객들에게 글러브 끼는 것을 도와달라고 하는 모습이 그랬다. 극이 후반부로 접어들면 강주와 성훈을 비롯해 주변 이웃들이 함께 건물 옥상에 모여 얼큰한 동태찌개를 끓여서 나눠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엔 작고 동글동글한 주먹밥을 객석에 나눠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 때에 원하는 사람은 소주를 조금 받을 수도 있다.) 관객들과 '밥을 함께 먹는' 것을 그리고 지향한다는 게 와닿았다.

게다가 배우들의 연기 역시 좋았다.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며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생활연기인 마냥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로 객석을 웃게 만드는 것도 배우들이 이 작품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만들었다. 특히 장미화 역을 맡은 박미선 배우의 애드리브는 매번 웃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맛깔났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었다. 먼저 '밥을 먹는' 행위를 통해 관객들과 함께 밥에 담긴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기획의도가 작품 속에 완벽하게는 드러나지 못했다. 이웃들끼리 같이 밥을 먹는 장면들에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 담기긴 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관계인 강주와 삼촌인 성훈이 밥을 먹는 장면은 그렇지 않았다.

강주와 성훈이 가족이면서도 애증의 관계를 보여주는 예시로 삼은 것은 분명 안다. 그러나 강주가 사는 단칸방에 찾아와서 다짜고짜 얹혀 살면서 현실적인 생계를 꾸리기보다는 그저 이상만 좇는 삼촌 성훈은 강주에게 오히려 짐이었다. 이웃인 장미화 역시 그로 인해 강주에게 '저 사람이 들어온 이후로 다 문제'라는 식으로 술김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조카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성훈은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카인 강주가 밥을 다 차리면 먹기만 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다가 강주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면 삼촌인 성훈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권투를 하겠다고 밀어붙이다가 강주와 싸우는 장면에서는 강주에게 윽박지르기도 했다. 위협적이고 굉장히 보기 불편했다. 만일 그게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이라고 한다면, 그 현실은 정말 참담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삼촌과 조카가 인척이기 때문에 '가족'으로 묶이는데, 본 작품에서 나타난 '가족'의 모습은 가부장적이고 구시대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집안일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성' 그리고 생계를 위해 바깥일을 하면서도 집에 들어오면 청소, 정리, 요리 등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하는 '여성'.

그나마 위안이 된 부분이 있다면 강주가 아플 장면에서, 제임스 리가 삼촌인 성훈에게 죽 끓이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장면이었다. 보다 건강한 관계의 가족을 위한 첫걸음을 뗄 수 있는 초석이 되고, 그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장면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질서를 벗어난 건강한 가족 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끝끝내 이 작품 내에서는 볼 수 없었다.





공연을 보기 전에, <밥을 먹다>를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나는 이 작품이, '밥을 먹는 것'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다시금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한국인에게 '밥'이 갖는 맥락을 생각해보면 이는 비단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밥은 음식을 넘어서 한 개인의 안녕을 말하고, 개인들이 모여 형성한 어떤 관계를 말해주는 요소가 된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런 면면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를 기대했는데, 연극 <밥을 먹다>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마강주 역의 주선옥 배우, 마성훈 역의 장재승 배우, 제임스 리 역의 유준원 배우, 장미화 역의 박미선 배우, 임창준 역의 백효성 배우 그리고 서석규 배우의 연기가 뜨거운 작품이었다.


[석미화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