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채식주의자, 소수자의 또 다른 이름 [문화 전반]

글 입력 2016.07.08 18:1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실 한강 작가의 책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상을 수상하기 전부터 그녀의 책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때는 그저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이겠거니 미루어 짐작하고 읽지 않았었다. 그녀의 책이 맨부커 상을 수상한 후 비로소 그 책을 보게 된 것을 보면 내 안에도 속물근성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소설 속의 주인공인 영혜의 남편 시점, 2부는 영혜의 언니의 남편인 미술작가 형부의 시점, 3부는 그녀의 언니의 시점이다.
소설이 이처럼 3부로 나누어지는데 특이하게도 주인공인 영혜의 시점은 어디에도 없다. 그녀가 꾸는 꿈에 대한 이야기나 가끔씩 대답하는 이야기들로 영혜의 생각이나 느낌을 추측할 순 있지만 그녀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표현되어있지 않다. 


채식주의자2.jpg
 

 1부를 먼저 살펴보면 그녀의 남편이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영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너무나 평범해서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결혼한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꿈을 꾸었다며 고기를 먹지 않겠다 말한 뒤부터 그 동안 자신이 알던 여성과 다른 여성이라고 단정한다. 결혼 후 5년간 매일 아침 6시면 아침밥을 차려주고 옷을 다려주고 잠자리도 거부감 없이 하던 그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꿈을 꾸었다며 냉장고에 들어있던 모든 고기와 생선들을 내다버린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가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정말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누구일까? 

 영혜는 중간 중간 꿈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의 꿈속에서 남편이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 꿈을 꾸기 전날 아침 난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지. 
당신이 화를 내며 재촉했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거야? 
알지, 당신이 서두를 때면 나는 정신을 못 차리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대고, 
그래서 오히려 일들이 뒤엉키지."



 소설 속에서 남편은 영혜를 섹스토이나 조용한 애완견쯤으로 생각한다. 그는 영혜가 깨워주지 않으면 아침에 혼자 일어나지도 못해 회사에 지각하고, 화를 내는 모습은 많지만 영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심지어 그녀가 잠자리를 거부하자 그는 술을 마신 뒤 마음대로 아내를 강간한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잠자리에 들어야 하며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노예나 다름없이 아내를 대한다. 결국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해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그녀와 이혼한다. 
 
그녀의 남편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들조차도 그녀가 왜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인지 이해해주지 않고 아버지란 사람은 모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뺨까지 때리며 억지로 탕수육을 먹이려 한다. 영혜의 언니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아버지의 폭력에 가장 많이 노출됐던 사람이 영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 또한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모습을 보아 영혜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가정폭력에 노출되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을 한 후에도 남편과 사회라는 이름의 또 다른 폭력 앞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채식을 통해 그녀를 억압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일 뿐이다. 어느 곳에서도 영혜의 직접적인 속이야기는 볼 수 없지만 그녀는 몸으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대답한다. 그녀의 남편, 형부, 언니, 가족들, 그 외 다른 사람들 중 누구도 그녀의 기분이 어떠한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없으며 그녀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의 형부도 관음적이고 비겁한 성적 욕망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영혜를 이용한다. 그 과정에서 영혜에게 허락을 구하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영혜의 언니 또한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내버리는 모습부터 보여준다.

 소설을 보는 내내 영혜의 모습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억압받는 모습과 폭력적인 한국 사회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보였다. 시대의 발전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나 힘없는 약자들을 향한 폭력과 편견이 넘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때, 혹은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낼 때, 많은 사람들이 소설 속 영혜의 주변 인물들과 같은 목소리로 그들을 향한 편견과 무지,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이런 모습은 남성보다 여성으로, 성소수자로, 장애인으로, 다문화 가정, 말 못하는 동물 등 비주류로 살아갈 때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Difference3.jpg
 
 
 서울 광장에서 퀴어 퍼레이드가 벌어질 때 한 쪽에서는 피켓을 들며 결사반대를 외쳤다. 이틀도 아니고 단 하루뿐이었다. 그들이 자신들도 이렇게 존재한다고 외치는 날은 1년 중 단 한 번뿐이지만 이 사회에서는 그마저도 녹록지가 않다. 얼마 전 부산지하철에 여성전용칸이 생긴 후 그것이 역차별이라며 반대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직접적인 성추행이나 몰래카메라 촬영과 같은 지하철 성범죄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었을지도 모를 일이 된 지 오래이지만, 이런 범죄 예방과 여성을 위한 전용칸 하나조차도 한국 사회에서는 공감보다 너희들은 약자가 아니니 특권을 누리려 하지 말라는 비난부터 일삼는다.  

 연예인 박유천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자 어떤 사람들은 창녀에게 무슨 성폭행이 있냐고 말했다. 창녀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기본권인 존엄성마저 무시당해도 괜찮은 것인지, 그리고 여성에게 어떤 특권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들의 말처럼 여성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면, 여성들이 겪는 편견과 차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OECD 회원국 중 최하위의 유리천장 지수, 낮은 여성 고용률, 남녀의 높은 경제 급여 차이처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 부르짖는다. 나는 이 사회가 약자라고 불리는 자들에게 얼마나 동등한 기회와 자격을 부여했는지부터 묻고 싶다. 

나이를 먹어가며 세상에 완벽한 평등은 없다는 것을 슬프지만 인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과 인식조차 부족한 사회가 바로 지금 한국 사회라고 생각한다. 
결국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겠다 말한 것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녀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것이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통해 여성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처럼 말이다. 유독 여성을 예로 들며 이야기 했던 것은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소수자들, 약자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으며 처음엔 영혜를 이해하지 못했던 내 모습도 반성하게 되었다. 이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나와 다른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고 나의 취향이나 생각을 강요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책이 쓰여진 2007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동시에 나와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얼마나 소중한 지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구글


[장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