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전'엔 나와있지 않은 '언어'의 힘.

글 입력 2016.06.0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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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느낀 일입니다. 여러 기사의 제목 워딩 등, 점점 ‘공식적’이라고 불리는 자리에서도 무분별한 언어의 사용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너무나 당연하기에 ‘언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무지’를 ‘사전’이라는 소위 “팩트”에 대한 맹신으로 채우려고 한다는 것을요. 이러한 글이 대체 왜 '문화'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 언어야말로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또한 ‘사전’을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지금부터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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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NS에서 '혼전순결'이라는 말에 대한 갑론을박이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작성자는 왜 '순결'이라는 말을 사용하냐며, '혼후 관계주의자'가 올바른 표현 아니냐 주장했는데요. 거기에 달린 댓글이 놀라웠습니다.
 
"사전에 있는 말인데요? 사전에 있는 뜻대로 쓴다고 뭐라 하시네."
 


순결 [명사]
1. 잡된 것이 섞이지 아니하고 깨끗함.
2. 마음에 사욕(私慾), 사념(邪念) 따위와 같은 더러움이 없이 깨끗함.
3. 이성과의 육체관계가 아직 없음. 또는 그런 상태

 

네, 맞습니다. 혼전순결주의, 할 때의 그 '순결'은 위에 올려드린 사전적 의미 3번에 해당하는 의미죠. 하지만 사전에 등재되었다고 해서, 그것은 '올바른' 용법일까요? '올바른' 뜻일까요? 사전에 등재되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그 용어를 써도 되는 이유가 될까요?


"사전은 '옳지'않다."

 
답은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사전에 등재 되었다는 말은 결코 '그 언어가 올바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전에 등재되어있는 언어는 결코 '올바르'지만은 않습니다. 사전은 옳고 그름을 정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제 말을 듣고 의아해하시는 분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전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우리는 그 뜻대로 언어를 사용하는 것 이 아니냐며 반문하시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께 한 가지, 질문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전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그 과정을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질문이 너무 애매모호하니, 질문을 약간 바꿔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을 모아서 사전을 편찬한 것일까요, 아니면 사전을 먼저 편찬하고 그것을 우리가 쓰는 걸까요? 답은 명확합니다. 말이 먼저고, 사전이 그 후에 나온 것이죠. 사전은 우리가 쓰는 '말'들을 정리해서, 모아놓은 것일 뿐. 어떤 단어도, 사람마다 그 쓰임이 조금씩 다르니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용법을 정리해 놓은 것일 뿐입니다.
 
즉, 사전에 어떤 단어의 의미가 실렸다는 것은 단지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런 뜻으로 많이 써왔다는 것을 나타내줄 뿐입니다. 그런 용법으로 쓰였을 당시의 사회적인 인식, 혹은 분위기를 담고 있을 뿐. 과거의 모든 사상, 혹은 사회적 분위기가 옳지는 않듯이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여성의 ‘성’은 지켜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서 관계를 하지 않은 여성이 ‘깨끗’, 즉 ‘순결’하다고 여겼던 사회의 가치관은 현대적인 관점에서 결코 올지않습니다. 즉, '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말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 단어를 쓰는 것이 적절하다고는 말 할 수가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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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해서 혹자는 만들어진 과정이 어쨌든 현재 사람들의 인식은 바뀌었고, 저런 표현을 쓴다고해서 그 시대의 가치관을 긍정하는 것도 아닌데 있는 용법대로 쓰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언어의 기본적인 특징부터 말씀드려야 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언어는 사람의 사고를 지배한다.”

 
는 것입니다. ‘사고’의 결과물로 내뱉는 것이 언어인데,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니.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어는 매우 철저하게 사람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지배’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으니, 조금 순화하자면 큰 영향을 미친다, 서로 상호적이다 쯤으로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이는 ‘언어’가 사고의 결과물임과 동시에, ‘사고’자체가 언어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정리할 때 명확하게 개념화 한 ‘단어’로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거나, 각 개념들을 종이에 적어넣는 행동을 하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듯 어떤 사고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쓰이는 ‘언어’는 분명히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구요.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방식 중 하나로 ‘신어’가 쓰였다는 것에서도 사고에 대한 언어의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기에, 언어를 사용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과거에 써 왔던 것이니까, 있는 것이니까 하며 ‘언어’에 대한 아무런 의구심도 품지 않는다면. 결국은 과거에 올바르지 않은 가치관도 계속해서 재생산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순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순결’이란 단어를 ‘성관계 이전의’라는 뜻으로 사용했을 때도 ‘순결’의 또 다른 의미인 ‘깨끗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순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한, 성관계 이후의 존재는 ‘깨끗’하지 않다는 사고로 이어지게 되죠. 이러한 사고는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일종의 이미지로 존재하며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언어’로써 계속해서 가치관은 답습되고, 재생산 되는 것이죠. 

 과거 Policeman, Fireman등의 단어가 현재 Police officer, fire fighter로 바뀐 것도 그 직업군의 ‘기본’을 ‘남자’로 뒀던 과거의 가치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이처럼 사전은 바뀔 수밖에 없고, 바뀌어야만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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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논의를 통해서 사전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는데요. 그렇다면 ‘사전’에 있는 의미 중, 현재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것만을 거르고 순화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를 제외하고선 ‘용법’, ‘뜻’이 맞으면 다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요? 저는 여기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철저하게 사회문화적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사회문화적이라니, 이해가 어려우실 텐데요. ‘언어’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인 ‘맥락’과 연관을 맺는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예시를 들고자 합니다.

“강남 유흥가 화장실서 ‘묻지마 살인’
 
특정 사건에 대한 실제 기사 제목입니다, 이 제목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이 제목에 대해서 수많은 논의가 진행되었는데요. 또 다시 “사전에 있는 의미대로 쓴 건데 뭘 저런 거 가지고도 트집이냐.” 라는 댓글이 달렸더라구요. 
 


유흥가[명사]

술집 따위의 놀 수 있는 장소가 모여 있는 거리.



네, 맞습니다. ‘술집’ 따위의 놀 수 있는 장소가 몇몇 있기는 했죠. 그걸 굳이 ‘모여있는 장소’라고 인식한다면 그 장소가 사전적으로 ‘유흥가’는 맞을 수 있습니다. ‘유흥가’는 앞서 말씀드린 ‘현대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는 뜻’으로 쓰였다고 할 수도 없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순간에 이 워딩이 맞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닙니다.
 
일단 ‘유흥가’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화려한 네온사인, 술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특히 ‘새벽 1시’ 유흥가라고 하면, 굉장히 퇴폐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지죠. 아마 대부분이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셨을 겁니다. 사실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유흥가든 아파트 단지든, 피해자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지만. 아직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돌리는 일이 잦은 이 사회에선 ‘유흥가’라는 워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기자가 ‘유흥가’라는 워딩을 할 때는 어떤 의도를 담았을까요? 또 그 제목을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엔 순간적으로 어떤 이미지가 스쳐지나갔을까요?
 
그 장소가 사전적인 의미로 ‘유흥가’가 맞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단어’를 받아들일 때 사전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언어는, 매우 정확하게, 사회·문화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어’를 받아들이고 해독할 때 절대 사전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 외에 ‘백과사전적 지식’이라는 것도 사용되죠. 그 안에는 사회문화적인 함의가 포함 됩니다. 그 장소가 ‘유흥가’라 말하는 것만으로도 수용자는 ‘술에 취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혹자는 ‘그러게 왜 그 시간에 그런데 있었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끔 하는 거죠. 또 ‘사회문화’적으로 해석 된 ‘언어’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고를 지배합니다. 저러한 언어의 사용이 어떠한 사고를 만들어가는 것이죠. 실제로 이러한 제목의 기사에 저런 식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습니다. ‘유흥가’라는 워딩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며, 그 언어를 기반으로 그런 사고를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워딩을 ‘번화가’로 했으면 어땠을까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유흥가’와 ‘번화가’는 확연한 이미지의 차이를 보입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 ‘유흥가’란 표현과 달리, ‘번화가’란 표현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번화한 곳에서 사건이 일어났다는 표현은, 수용자에게 피해자의 무고함과 이 사건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키죠.

즉, ‘사전적’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또 그 ‘사전적 의미’가 현대의 관점에서도 ‘그른 표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어디에나’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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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은 ‘팩트’가 아니기에, 언어는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정보의 틈새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죠.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더욱 ‘팩트’에 매달리게 됩니다. ‘팩트’라고 딱 정해져서 나온 것은 믿음직스러워 보이니 말입니다. 저는 이러한 풍조 자체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지만, ‘사전’, 즉 ‘언어’에 대해서만은 ‘팩트는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있을 때 ‘사전’은 참 중요한 도구입니다. ‘사전’을 통해서 어휘력을 높이고, ‘사고’를 확장해 나갈 수도 있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전’은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라는 것입니다.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팩트’가 아닙니다.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며, 변해야만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결코 ‘언어’는 ‘사전’이라는 것을 ‘믿고’ 부주의하게 사용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토록 ‘언어’를 사용할 때는 그만큼의 주의와, 책임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의식 중에도 사용하는 것이 ‘언어’인데 조심하라니.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니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기에 더더욱 언어사용에 있어서는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우리 생활 전반에 깔려있습니다. 그 ‘생활’의 전반을 차지하는 것이 ‘잘못’ 쓰인다면. 게다가 그것이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엄청난 것이라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이것이 미칠 파장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것은 물론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창작자에게는 '언어'에 대한 '책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현재 '문화'를 향유한다며 글을 쓰고 있는 제게도 요구되고 있겠죠. 언어에 '책임의식'을 갖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조심스러워지고, 예민해지게 되니까요. 저 또한 지금 이 순간조차도 제가 사용하는 ‘언어’에 무척이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저는 '언어'에 책임을 가지고자 합니다.

제 '언어'가 이 글을 읽고 계실 분들께 어떤 힘을 가지고 영향을 미칠지.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이 후에 사용하실 ‘언어’는 또 어떤 힘으로 세상에 영향을 미칠지가 기대되기도, 두렵기도 하지만. 제가 책임을 가지고 쓴 '언어'는 그래도 보다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고 스스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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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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