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행을 찾아 떠나는 여행 [여행]

글 입력 2016.02.2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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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새로운 풍경을 보고, 사진을 찍고, 걷고 뛰고 돌아다니고.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예전보다 커졌으면 커졌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다. 여행과 관련한 컨텐츠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때로는 극한, 때로는 힐링이라는 키워드와 결합하기도 하면서 여행은 방송과 도서를 섭렵한 주제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컨텐츠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그 어떠한 것이든 열심히 투자하고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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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나는 걸까. 여행은 돈도 쓰고, 체력도 쓰고, 시간도 쓴다. 기회비용만 생각하다 보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겠지만,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기도 어렵다. 여행이 무엇인가 되묻고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나는 여행을 꽤나 자주 가는 편이다. 여행에 대해 호불호를 묻는다면 단언컨대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문득 마음이 허전해졌다. 나는 여행을 왜 떠나는 건지 되물었을 때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여행을 떠나면 떠날수록 나는 여행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여행에 대해 단순히 잠시 질린 것일 수도, 혹은 나 홀로 여행의 의미를 너무 무겁게 진 것일 수도 있다. 왜 여행이라는 키워드는 사람들을 그토록 설레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이런 질문을 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휴학을 시작하고 작년부터 지금까지 일 년 동안 달 건너 한번 꼴로, 짧든 길든 간에, 일단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일단 떠나 보자고 생각했다. 혼자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때로는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사진도 참 많이 찍었다. 하루에 최소한 백장은 찍었으니까 여행 다녀온 사진을 다 모으면 몇천장은 될 것이다. 그렇게 카메라는 점점 무거워지고, 굽이굽이 뻗은 길들을 함께한 신발은 밑창이 많이 닳았다. 모든 여행에 함께 했던 분홍색 가방은 점점 회색 가방이 되어 갔다. 여행을 다녀오면 다람쥐마냥 모아오던 강아지풀, 솔방울, 이름 모를 낙엽들, 작은 나뭇가지들. 풀 냄새 나는 예쁜 것들은 내 방 한 켠에 작은 숲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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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는 제주도를 다녀왔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제 와서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제주도는 온전히 새로운 곳에 가까웠다. 내게 제주도는 그랬다. 바람이 참 많이 불고, 하늘이 참 많이 보인다. 바다를 따라 둘러 걸으면 언젠간 내가 있던 자리에 다시 돌아온다. 날이 맑은 날에는 어딜 가든지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도의 돌은 유연하다. 구멍 숭숭 난 몸을 하고 부드럽게 바람을 견딘다. 새로운 풍경은 내게 새로운 감각을 안겨다 주었다. 영상으로 본 것, 사진으로 본 것, 책에서 읽은 것 모두 다 떠나서, 눈으로 보기 전엔 모른다. 그리고 들어보기 전에는 모르고, 만지기 전에는 모른다. 길을 걷고, 또 길을 잃어보기 전엔 모른다. 아주 단순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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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이 편하기도 하고 비교적 가깝기도 해서, 어쩌다 보니 전주와 속초를 자주 가게 된다. 전주는 스탬프 카드가 있다면 열 번은 거의 채웠을 즈음이고, 속초도 여름과 겨울에 걸쳐 세네번은 다녀왔으니 이제 도시가 꽤나 눈에 익었다. 같은 곳을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는 얘기를 듣는다. 사실 별 생각 없이 여행을 가고 싶다, 해서 목적지로 두었던 것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사실 갈 때마다 새롭다는 대답은 차마 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주 가면 더 이상 새로울 건 별로 없다. 하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다르고, 떠나온 상황이 다르고, 그 날의 날씨가 다르다.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이. 당연한 말이다. 다만 여행은 절대명제가 아니었다. 여행은 나의 밖에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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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여행이라는 키워드에 어떤 환상을 가졌었는지는 몰라도, 여행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특이하고 독특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여행은 때때로 힘들고, 때때로 집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여행은 무조건 낯설고 새로워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여행은 무작정 로망으로 부풀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여행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현실이라는 단어는 좋은 의미도 아니고 나쁜 의미도 아니다. 꿈처럼 아련하지도 않다. 꿈처럼 사라지지도 않는다. 머리에 번개를 맞는 듯 새로운, 마치 꿈 속의 세상 같은 느낌도 아니다. 시간이 흐르고 꿈의 흔적으로 남을 수는 있겠지만, 그냥, 정말 내 눈앞에 놓인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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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눈에 선히 보이는 것이라 생각할 때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약속한다. 일탈을 꿈꾸며 여행을 시작하고, 때로는 자연을 보며 감탄하고,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을 만나며 추억을 쌓는다. 여행을 떠나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였는지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넓었는지 느끼면서, 오히려 내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느끼게 된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은 내 안에 그 어떤 형태로든지 남아 나를 만든다. 새로운 풍경을 본다. 새로운 풍경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더 크고 넓은 것들을 보고 돌아온다. 내가 있고, 내가 이 자리에 있다. 여행은 방랑하게 하고, 또 정착하게 만든다. 돌아올 곳이 있어야 여행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행으로 무엇을 얻어가야 할까 하는 고민을 내려놓는 순간, 난 여행이 정말로 즐거워졌다.
 
     2월이 방금 막 끝이 났다. 달력이 넘어가고 3월이 시작되었다. 질릴 정도로 함께 해온 이번 겨울도 곧 끝이 날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싹이 트고 꽃이 펴서 봄이 찾아올 것이다. 공기는 따듯해지고 하늘은 눈이 부실 테다. 아마도, 이 역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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