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의 믿음으로도 이길 수 없는 본능, 웃음과 사랑 [시각예술]

영화 < 장미의 이름 >을 보고
글 입력 2016.02.1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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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감독   장 자크 아노
개봉년도  1989년 
장르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 범죄
국가 이탈리아, 독일(구 서독), 프랑스
시간   130분 


영화 <장미의 이름>의 원작은 중세사학자로 유명한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다. 소설 『장미의 이름』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영화화될 당시에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제작 배경은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국 문화를 보호하고 유지하려는 유럽의 움직임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1980년 중반 서독과 프랑스, 이탈리아가 합작해 만든 것으로, 영화가 제작될 당시 유럽의 정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난 여태까지 이슬람에 대한 영화는 본 적이 없지만, 기독교와 관련된 영화는 여러 번 보았다. 기독교 영화는 <미션>이나 <다빈치 코드>, <브루스 올마이티> 등 여러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장미의 이름>처럼 역사 속 한 수도원의 모습을 그려본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했고 공부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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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요한 22세가 있던 1327년 유럽, 북부의 한 수도원이었다. 젊은 아드소는 프란체스코회 소속이었던 수도사 윌리엄과 함께 베네딕트회의 한 수도원으로 온다. 영화 속 베네딕트 수도원의 모습은 현재의 교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숙했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원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수도원들 중에서도 베네딕트 수도원 수도승들은 오로지 신을 향한 믿음을 위해 살고, 수련을 위해 엄격히 살아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도사는 웃지 말아야 하며 어리석은 자만이 웃음소리를 높인다”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얼마나 큰 죄의식 속에 살고 있으며 비현실적인 생활을 강요했는지, 아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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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장은 윌리엄에게, 그동안 수도원에서 사망사건들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윌리엄은 “바스커빌의 윌리엄”이란 이름답게 탁월한 추리력을 보여준다. 마치 영화 속에서는 프란시스코회가 베네딕트회보다 옳은 것처럼 보인다. 베네딕트 수도승들은 매우 보수적인데다가 검은 복장 때문에 그런지 음침하고 무서워 보인다. 반면 윌리엄 형제의 옷은 밝으며 그들은 진실을 가려낼 줄 아는 사람들로 나온다. 하기야 프란시스코 수도회에서 부패한 교황에 대항했다는 점을 보면, 이렇게 묘사하는 게 이해가 되긴 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다보면 프란시스코 수도승들을 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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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드소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함께 잠을 자고, 과연 이런 행동을 해도 되는 것일까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윌리엄은 범인을 찾아낸다. 호르헤 수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불태운다. 『시학』의 제2권 희극론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유발하고, 호르헤에게 웃음은 곧 혼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당시 젊은 수도사들 사이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같은 새로운 사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고, 전통적인 성서 해석을 고수하던 호르헤는 이를 달갑게 보지 않았다. 만약 희극 때문에 발생하는 웃음으로 두려움을 잃으면 신앙마저 잃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웃음은 곧 죄악이었다.

이건 지나친 종교적 신념의 단점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종교적 신념이 극으로 치달으면 불필요한 희생이 일어나곤 한다. 실제로 중세 시대에 무고한 사람들이 이단으로 몰리고 마녀로 화형 당한 역사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까지 태워버리다니, 이거야말로 정말 병폐가 아닐까? (물론 이건 영화상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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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확고한 신념도 인간의 본능인 웃음과 사랑을 막을 순 없다. 그렇게 보수적인 수도원에서도 웃음과 사랑, 성욕을 향한 본능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신을 향한 믿음이 강할지라도 그 믿음이 인간의 본능까지 제어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면 오히려 본능이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표출된다. 영화 후반부에 보면 몰래 여자를 탐했던 수도승이 나오지 않는가. 베네딕트 수도원장은 그런 본능의 무서움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웃음을 두려워했던 것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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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현재의 기독교가 베네딕트 수도원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른 건 매우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종교든 너무 비합리적인 요소들은 언젠간 반발과 나쁜 결말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은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점차 사라진다고 생각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영화가 중세 시대의 작은 일면만 보여주었지만, 보고나니 기독교 역시 그런 흐름을 거쳐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허구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영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해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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