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 딸, 이제 집에 가자 " 영화 < 귀향 > [시각예술]

소녀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글 입력 2016.01.0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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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50여년이 지난 2016년, 향(鬼郷), 
모진 세월에 잊혀지고 부서졌던 
소녀들의 원혼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鬼郷,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망령들을 부르는 노래

영화 <귀향>은 1940년 16살의 나이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불타 죽을 뻔했던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귀향(鬼鄕)의 ‘귀’는 귀신 ‘鬼’자를 썼는데 일본군에 의해 끌려가서 타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위안부 피해자 소녀들을 비록 영으로나마 고향으로 모셔 오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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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귀향> 포스터


태워지는 처녀들의 ‘귀향’, 영상으로 기록해야 했다.

2002년, <귀향>의 감독 조정래씨는 경기도 퇴촌에 있는 ‘나눔의 집’에 계신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를 위해 봉사공연활동을 하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할머니들을 만나기 전까지 조 감독에게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만행’ 이 두 단어에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순전히 안마를 해드리려는 남자 봉사자들의 손길도 허락하기 힘들 정도로 할머니의 마음의 상처는 크고 깊었다. 전기고문, 잔인한 폭행으로 얼룩진 할머니의 상흔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미술심리치료 시간에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보고 난 후, 감독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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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순 할머니의 <태워지는 처녀들>


10년, 그 어떤 영화보다 기다려온 영화였다.

10년의 시간 동안 조정래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투자자들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냉랭한 반응과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었다. 심지어 ‘그 할머니들 다 가짜 아니냐’ 라는 망언을 퍼붓던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누가 그 영화를 보겠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결국 영화를 만든 것은 사람들의 후원이었다. 돈이 없어 영화를 제작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한 네티즌이 ‘대중(이용자)이 창작자를 후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제안한 것이다. 불과 보름 만에, 목표치를 훌쩍 뛰어넘는 후원금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결국 국내외 4만 명의 후원자들의 진심이 더하고 더해졌고, 그렇게 <귀향> 촬영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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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스토리 펀딩


"44일간 뉴스펀딩을 통해 1만 4737명의 시민이 2억 5098만원의 제작비를 후원했다. 
자신의 용돈을 꺼내서 보탠 꼬마 아이들, 초등학생도 있었다. 
뉴스펀딩 후원금, 일본.미국의 교민들이 건넨 제작비, 
제작진 계좌로 직접 입금한 많은 시민들의 후원까지 모두 더하면 5억여 원에 달했다. 
위안부 할머니를 응원하는 시민단체의 후원이 이어졌으며, 
배우들도 거의 무보수로 촬영에 참여했다."


‘다 해결 되었다’고 말하는 지금, 다시 바라보게 할 영화

본래 국내 개봉 날짜는 광복 50주년을 맞는 2015년 8월 15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배급사를 찾지 못해 실패했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란 말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영화는 현재 올해 2월 혹은 3월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시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얼마전 타결된 ‘12.28위안부 협상’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금, <귀향>의 개봉 시점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연적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알려진 1990년 이래로 위안부에 대한 논쟁은 끊임 없이 제기되어왔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 문제에 대해 벌써 무뎌진 것만 같다. 한편 자신들의 범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던 일본은 이제 태도를 바꿔 고작 10억엔(100억원)으로 세계 역사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말을 영영 봉쇄하려 하고 있다. ‘다 해결 되었다’고 말하는 지금, 다시 바라보게 할 영화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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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8 한일 위안부 협정 합의 내용


영화, 그 이상의 의미

<귀향>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봐야 하는 이유는 일본을 집요하게 비난하고 국내에 반일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위안부 문제 자체도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사안이지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영화를 통해 과거의 비극을 재조명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놓치고 외면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들을 돌아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전 한국군 위안부, 코피노 문제, 세월호 참사 등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할 문제에 대해 그 누가 책임을 지려하고 있는가? 은근슬쩍 덮으려 하고 얼렁뚱땅 잊어버리고 잊지 않은가? 우리 또한 직시해야 하지만 애써 회피하고 있는 과거의 과오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그 문제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멀리 보고 기대해본다면, 이 영화는 그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

예술작품은 과거를 재조명하고 현재를 기억하며 이상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개인적인 것이든 공동체적인 것이든, 무엇을 다룰지는 전적으로 창작자의 의도에 달렸다.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것이 예술의 가치이지만, 영화 <귀향>처럼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품들도 계속적으로 세상에 나와야 할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될 진실’이 있으며 ‘마주해야만 하는 과거’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관심과 후원이 절실하다. 한 사람의 머릿속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았던 <귀향>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 <귀향>으로 만든 것은 바로 국민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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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및 사진 출처

영화 <귀향> 홈페이지 http://www.guihyang.com/
강연100도씨 ‘국민이 낸 숙제’ - <귀향>감독 조정래
<스브스 뉴스>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귀향', 한국에서 상영이 불투명합니다.


[윤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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