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건축계의 이단아들이 묻는다, 당신의 유토피아는 어디있나요? [예술철학]

글 입력 2015.11.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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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그램, 당신의 유토피아는 무엇인가요?


archigram 111.jpg
Archigram 


그림 속 네 발 달린 기계들을 보시라. 생긴 모양이 곤충이나 파충류 같기도 한 저것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위의 그림은 1960년대 영국의 건축집단 ‘아키그램(Archigram)’ 의 작품, ‘움직이는 도시(Walking City)’이다. 아키그램은 당시 건축학과 학생들이었던 피터 쿡(Peter Cook), 마이클 웹(Michael Webb), 론 헤론(Ron Herron), 데이비드 그린(David Green)등을 중심으로 1961년 결성되었다. 이 청년들은 당시 영국 사회의 획일적인 주택 정책과 날로 무의미 해져만 가는 주류 건축계 및 디자인계를 향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건축(Architecture)과 전보(telegram)의 합성어인 아키그램이라는 이름은 당대 건축 현실에 제동을 거는 ‘긴급 전보’를 때린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아키그램의 활동은 주로 드로잉과 꼴라주로 이루어진 자신들의 작업물을 잡지물로 발간하는 것이었다. 1961년부터 1974년까지 총 9번의 잡지가 발간되었고, 그 결과물들은 하나같이 기발한 상상력에서 기인하였다. 식물처럼 계속 자라나는(확장하는) 건물, 플러그를 꽂아 작동하는 플러그 인 도시(Plug-In City), 유목민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걸어다니는 도시(Walking City) 도시,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도시 주변 빈민촌의 젊은이들을 찾아가 조립되는 행사장 및 극장인 ‘즉석 도시(Instant City)까지. 그들은 개념적인 스케치뿐만 아니라 꽤나 구체적인 도면을 제시하며 나름의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었기에, 그들의 작품은 도면 위에 머무르고 만다. 그러나 재밌는 것은 아키그램의 결과물이 반 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건축뿐만 아니라 디자인, 예술계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는 현대 건축물에 반영되기도 했다. 


아키그램이 했던 일들은 그들이 꿈꾸는 건축, 일종의 건축적인 유토피아를 상정했던 것이다. 우리 주변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이 빚어낸 결과물들은 이러한 유토피아적 정신을 근간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나은 것’, 이상을 향한 본능적 욕망은 역사를 만들었고, 인류의 원대한 발전을 이끌었으며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결정짓는 근본적인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간에 개인에게 꿈꾸고 상상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날만큼 ‘꿈꾸고 상상하라’는 말이 부담스럽게 들리는 때도 없을 것이다. 어딜 가나 Be Creative, 창의적이 될 것을 요구하지만 그 이면엔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는 ‘쓸모 있는’ 인간을 찾으려는 속셈이 자리하고 있다. 창의성을 향한 타인의 요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보단 되려 불안하게 만드는,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을 갖게 한다. 진정한 상상력은 규정된 상상력에 가리워져 이미 그 자취를 감춘 것만 같다. 


아키그램의 정신에서 주목할 것은 그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상상력이 아닌 시대에 반하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를 자처했고, 사회 혹은 집단의 유토피아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유토피아를 향했다. 아키그램이 계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과 오늘날까지도 빛 바래지 않은 그 명성은 아마 이 개인적이고 반 시대적인 상상력 덕분이라 감히 단언하고 싶다. 그들이 그려내는 건축물과 도시의 모습이 현실 가능하던 불가능하던 아니, 오히려 실현 불가능해 보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꿈꾸고 상상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대학교 2,3학년 학생들이,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모여 벌린 이 ‘발칙한’ 실험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저들의 유토피아가 아닌 ‘당신의 유토피아’는 어디있냐고. 다급한 전보가 울린다. 아키그램이 보내는 메세지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한다.


[윤정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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