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산드로 키아, 영혼과 서사로의 회귀 [시각예술]

아방가르드를 넘어서
글 입력 2015.09.04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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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홍색과 자주색, 푸른 먹빛의 하늘, 삼원색의 조화와 가을 연못의 색감. 이는 모두 키아의 그림을 이루는 주요한 색감들이다. 
 색에서 풍겨오는 가을의 정취 때문인지 그림들이 전시된 벽면의 색감들도 모두 따뜻한 회색과 자주색, 노랑, 녹빛이다. 이는 키아의 색채가 갖는 ‘온도를 지니며 운동하는 대기, 에너지’로서의 정체성과 어우러진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아방가르드를 넘어서, 키아- 환상과 신화 展>은 여름의 마지막 열기와 다가오는 계절의 정취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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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키아 (Sandro chia, 1946~, Firenze)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현대 이탈리아 거장이자 “시적 탐미가”라 불리는 산드로 키아는 개념미술의 흐름에 반항하여 현대적 감성 속에서 전통으로의 회귀를 추구하였다. 그것은 근원을 향해 가는 탐구의 여정이며 이를 통하여 그는 역사를 일구고 인간의 서사를 이야기한다. 이는 과거에서부터 현대에 걸쳐 ‘구’와 ‘신’이 일체의 몸으로서 공존하고 상생해온 역사이며 ‘지속’과 ‘생동함’의 과정이다.

 



트랜스 아방가르드- 전통과 현대성의 공존

 키아는 7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트랜스 아방가르드 운동의 선구자이다. 이는 20세기에 부흥한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에 대하여 의구심이 부각되기 시작하던 때에, 개념미술을 지양하고 전통적인 미술 양식과 테크닉의 재건과 회복을 주장한 첫 번째 예술운동이었다. 이들은 단순한 전통의 답습을 넘어서 혁신을 추구하였다. 이 혁신의 방식은 키아에게 있어 ‘현대적인 감성’을 통해 드러난다.

 키아는 고전적인 주제, 인물상의 구현을 현대적인 감성 속에서 풀어냈다. 예를 들어 그는 당시에 유행하던 문화적, 사상적 조류들을 수용하여 작품의 주제에 밀착시켰는데,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 관계, 라캉의 욕망 이론을 기반으로 고전적, 신화적 주제들을 재구성하였다. 또한 그는 과거의 대가들 뿐 아니라 초현실주의자들이나 팝아티스트 등 동시대 작가들과의 영향관계도 작품에 여실히 담아냈다.

 이처럼 키아의 작품은 전통을 재현하는 공간인 동시에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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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본 사이로 보면"
인물의 얼굴에 피카소의 다시점을 적용하였으며 칸딘스키와 마티스의 영향도 나타난다.



몽상가의 면모와 색채의 마술

키아는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는 색채들 속에서 질서를 구축하는 동시에 생동하는 본연의 에너지, 감성의 안개를 자아냄으로서 시적 환상을 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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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 arte y sonante"


 섬과 들판, 원시의 대지 위에서 신화적 구도를 갖춘 인물이 철학자, 몽상가, 예술가의 얼굴을 하고 있다.
 키아는 현대적 감성 위에서 신화적인 지표를 통하여 전통을 모색하며, 근원을 탐구하는 과정을 담는다. 이러한 ‘몽상’은 키아의 작품 속에서 ‘구축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 두가지로 동시에 표현되고 있다. 이 표현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바로 ‘색채’이다.

강렬한 색채는 중심에 선 인물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구성함에 있어 대비를 이룬다. 살구색, 선홍빛의 색채는 유연하게 쌓아올려져 다부지고 육감적인, ‘조소’적인 인체를 구성한다. 인물의 살빛과 더불어 좁은 윗머리와 각이 지고 코와 이어진 이마, 그림의 정면에서 취하는 자세 또한 이탈리아 전통의 표현으로서 인물을 통해 작품 전체의 중심을 잡고 질서를 구축한다. 반면 세계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모여 거칠게 꿈틀대거나, 색채가 형태의 조직에서 벗어나 순환하고 운동하는 ‘대기’로서 존재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대기는 ‘에너지’로서 격동하는 붉은빛으로 표현되는 동시에 힘을 내재하고서 가만히 침잠하고 흐르는 푸른 먹빛으로 표현된다.

몽상은 구축되어진, 인간적인 질서로부터 모든 사물과 질서의 원형으로서의 ‘에너지’를 추구하는 태도이다. 이 두 개의 차원이 이루는 교감은 바로 몽상가의 얼굴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연못의 수면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 두 세계가 접하여 서로의 형태로 화하는 완벽한 조응의 순간은 정돈된 고요함으로 나타나며 수면에 이는 파문과 같은 동요와 막막한 공허감 또한 얼굴에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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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estic, mimetic, athletic"


  
 “저는 그림과 세상을 함께 만들어 냅니다. 자세히 보는 모든 것은 얼굴로 변하곤 하지요. 
  얼굴은 곧 삶과 세상의 초점이 됩니다.”

“영혼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나의 메너리즘적 형상들은 고체의 형태에서 기체의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 중에 있다. 그림 안에 에너지, 즉 원동력이 되는 힘이 있다는 증거이다.”
    



환상과 신화

 키아가 빚어내는 서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는 전통과 신화를 통하여 서사의 기반을 갖추고서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영혼과 무구한 진리, 가치를 회복한다. 영혼과 서사의 회복은 현재, 그리고 세계를 직면하는 힘을 갖게 한다.
고전적 구도 속에서 현재의 이야기를 하는 것, 현대적 감성 속에서 고전적 주제를 다루는 것은 우리에게 인간과 그들 역사의 본연의 생명이 지속되고 생동해온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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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da and the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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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lletto"



서사의 본질 - 아이러니

 키아의 세계를 구성하고 유지시키는 주요한 원소는 바로 아이러니이다. 
그에게 있어서 모순은 세계의 진리이자 가장 완전한 진실이다. 따라서 키아는 모순을 표현함에 있어 세계와 진실을 마주하는 역할을 가진 ‘얼굴’을 주요한 매개로 삼았다.

 심리적 갈등, 마음의 동요와 간극은 서로 다른 이목구비들로 어우러진 이중 얼굴, 다면 얼굴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는 키아의 대표작이라 꼽을 수 있는 ‘키스’ 시리즈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키스하는 남녀의 얼굴에는 애정의 달콤함, 환희가 비단결같이 부드럽고 밝은 빛으로 어리는 동시에 달아오르는 붉은 열기와 둔턱 아래에 지는 푸른 그늘도 존재한다. 이는 키스의 순간에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 기류의 표현이다. 정제되고 그윽한 기쁨과 함께 흐트러진 열기와 흥분, 회환과 망설임의 감정들이 모순 속에서 공존하는 것이다. 
키아는 ‘색’을 통하여 말의 공백 속에 번져가는 숨의 온도, 감정의 색채와 그 사이의 여백까지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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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most a k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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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s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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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nigma of Flight"
 

 몽상가의 얼굴, 지긋이 흘리는 시선과 기울인 고개는 공허해보이면서도 맹렬하다. 마치 온열을 품은 안개 같다. 
 안개는 흐릿하고도 투명하다. 또한 휑하니 흐르고 맴도는 듯 하면서도 가만히 조응하는 깊이와 그윽함을 지녔다. 
 은연함은 사람에게 인내와 고요를 안겨줌으로서 상대에게 몰두할 계기가 되며, 투명함은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직면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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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teste in camp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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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구글검색
예술의 전당 홈페이지


[최인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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