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과 돈, 그 미묘한 관계에 대하여 [문화전반]

예술과 상업성, 가깝고도 불편한 관계
글 입력 2015.07.06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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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돈, 가깝고도 불편한 관계
 
 흔히들 예술이라고 하면 작품 자체가 가지는 예술성과 숭고함을 떠올릴 것이다. 비록 현대에 들어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힘든 예술들도 등장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관객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 어떠한 가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어렵고 난해한 특성이 짙을 수록 예술성이 크다고 믿기도 한다. 때문에 너무나도 ‘상업적인’ 예술은 과연 예술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점이 제기된다.

 ‘예술’이 가지는 숭고한 가치에 과연 ‘돈’의 개념이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왜인지 모르게 우리는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며, 그 헝그리 정신에서 출발한 예술은 작품에 대한 진실성을 더욱 증가시킨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예술은, 사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과거 예술가들이 사회적으로 가치가 폄하되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예술활동에 전념하며 그들의 작품세계에만 몰두하다 불행히 죽은 예술가들이 많다. 사후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명예와 돈을 얻더라도, 그들이 살아 생전 작품을 하던 시절부터 추앙 받던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을 뿐만 아니라 ‘상업성’과 연결 짓는 고리가 무수히 많다.

 직업적인 것만 보더라도 그러한 연결고리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아트 딜러들은 작가의 작품을 관객들에게 소개시켜주고, 그 작품을 구매하게끔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작품은 좀 더 세심한 설명을 통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고, 구매자는 작품을 소유할 수 있으며, 작가는 자신의 작품활동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스폰서는 또 어떠한가. 예술가들이 보다 작업에 몰두할 수 있게, 문화 융성의 측면을 위해 국가나 귀족들이 후원하던 풍습은 현재에도 내려져오고 있다. 예술가들의 보다 나은 작업환경을 위해 이루어지는 국가나 기업의 후원은 현대의 수많은 메디치가(家)를 보는 것만 같다.
 
 요즘 각광받는 ‘예술 경영’의 측면 역시 마찬가지다. 경영적인 측면을 예술에 도입함으로써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향으로 예술이 나아갈 수 있게끔 두 분야가 윈-윈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이제 단순히 작품활동만은 전념하고 사람들이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보다 주체적으로 예술을 ‘경영’해 나간다. 이 바람직한 흐름의 중심에는 ‘상업성’도 빼 놓을 수 없다.

 자본주의적 측면에서 상품성을 우선시 한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당장 우리 눈앞에 놓인 수많은 물건을 구매할 때 보다 좋은 품질, 보다 낮은 가격, 보다 이득이 많은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로 인한 경쟁과 품질 개선을 통해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은 더 좋은 상품을 얻게 된다. 예술작품도 그와 다르지 않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칠 때 관중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지만, 요즘 트렌드는 어떤지,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 지 등을 한번쯤 염두에 두고 작품 활동을 하면, 보다 뜨거운 반응으로 대중이 응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자본주의적 특성은 단순히 돈을 좇는 것이 목적이 아닌, 보다 대중과의 소통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작품을 마주하는 사람들은 대중이고, 그들 역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일반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과연 예술을 일반 상품과 동급 취급을 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대중이라는 관객과 엮어서 생각해 보았을 때 작품과 그에 대한 화답은 중요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예술가의 직업적 인정

 보통 예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일반 직업군에 종사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의료, 사고, 연금, 실업보험 등과 같은 여러 사회보장제도의 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돈도 벌지 못하고 제대로 된 사회의 보살핌 없이 이중 직업을 가지거나, 제대로 된 활동조차 할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았다.
 
 독일의 경우 이 부분에 대해서 상당히 진취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약 30년의 역사를 가진 ‘예술가 사회보험제도’를 통해 본업이 예술가인 사람들을 위한 복지를 실현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예술가들은 65%가 작품 활동만으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고 하니 그 실효성은 어느 정도 입증된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 따라 2010년, 예술가를 직업인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끔 해주는 법적 인정을 실시했다.

 만약 예술성과 작품성을 배재한 채 상업성과 수익성만 고려한 작품활동을 한다면,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기 보다 ‘장사를 위한 예술적 아이템 차용’ 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가가 작품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코드를 삽입한다거나, 어떠한 사업과 결탁하는 것을 지양해야 할 필요는 없다. 이미 예술에 대한 경계마저 모호해진 시대에서 예술과 비(非)예술을 구분 짓는 잣대로 ‘돈’이라는 개념을 쓰는 것은 어쩐지 불공평하다. ‘예술가’라는 직업도 다른 직업군들처럼 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적당한 소득과 삶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며, 나아가 그들이 지향하는 작품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삶의 제반이 충족되었을 때 좀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작품들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상업성에 작품이 잠식되지 않게 본인의 작품에 대한 기준과 척도를 올바르게 세우는 것은 예술가들에게 남겨진 중요한 숙제이다.





아트 마케팅

 마케팅의 기법의 일종으로 시작된 아트 마케팅은 몇 년 전부터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기업들이 광고를 할 때 예술작품을 차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했는데, 요즘은 그 양상이 다양해지고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에 쓰이거나, 광고에 삽입함으로써 유명한 예술작품을 이용해 이미지를 끌어다 쓰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친숙한 이미지의 삽입을 통해 고객이 보다 친근함을 느끼게 하고 고급스러운 브랜드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기업에서 후원하는 다양한 문화 사업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KT&G의 상상마당이나, 현대카드의 공연프로젝트는 기업 이미지 변신에 큰 이바지를 했다.



10.jpg▲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차용한 LG 광고
naver_com_20110513_001320.jpg▲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재미있는 부분은, 위와 같이 보통 ‘상업’이 예술을 차용하는 행태에서, 요즘은 반대로 ‘예술’이 상업을 끌어들이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기업의 주체로 자본주의적 목적을 가지고 예술을 도구로써 이용한 것을 넘어 예술분야 자체에서 그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르려고 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6월 9일부터 8월 23일까지 진행되는 가수 지드래곤의 전시 ‘피스마이너스원’이나, 얼마 전 뜨거운 반응으로 마친 팀 버튼의 전시가 있다. 대중 가수의 정점에 있는 지드래곤을 대상이 아닌, 주축으로 하는 전시로써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먼저 작품을 제시하고 함께 했다는 것은, 예술 업계가 보다 대중에 가까워지려고 하는 노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영화 감독인 팀 버튼의 전시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을 하나의 예술가로서 인정하고, 대중이 좋아하는 부분을 탐색하여 예술작품으로써 관객에게 다가가려는 시도인 것이다.




%C7ǽ%BA%B8%B6%C0̳ʽ%BA%BF%F8_(3).jpg▲ 가수 지드래곤
%C7ǽ%BA%B8%B6%C0̳ʽ%BA%BF%F8_(2).jpg▲ '피스 마이너스 원' 포스터



 이는 예술의 수용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다양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이 더 이상 고고한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대중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문화 예술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뜨거워 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관객들에겐 기쁜 소식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작품을 통해 ‘얼마나 버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정확히는 그들이 ‘작품 생활을 할 수 있을만한 적당한 기반을 조성하기에 충분한가’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과 돈의 관계는 꼭 한번 제기되어야 하는 문제이며, 예술가들이 그들의 직업을 영위할 수 있게, 그들의 작품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끔 하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다시 작품으로서 우리가 향유하는 문화 생활의 수준 향상을 위한다면 꼭 필요한 영역인 것이다.


[이주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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