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매일 아침, 당신의 단어를 써보고 엮어보자. < 오늘 아침 단어 >[문학]

글 입력 2015.04.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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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것들이 거리로 나갔다
긴 소매들은 소매를 접었다

입김이 남아있는 창문
불이 꺼지지 않는 들판
날아오르는 바람과
걸어다니는 발자국들

가슴만 한 신음을 낳고
누군가 밤새 울었다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안겨 있는 나를 보았다
하얗게 빛이 났다
나머지는 어두웠으므로
비명 같은 내가
빈 종이 되었다

(유희경,<꿈속에서>)

나와 다른 한 명이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대한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조금도 꾸미지도 않고 천천히 분리되며.
그래 구름이. 멀리에도 구름이 있었다. 두 명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구름을 보았다.
.
.
밤이 왔다. 나와 다른 한 명은 더 이상 나무 의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구름은 조금만 보였다. 나는 그것도 좋았다. 다른 한 사람은 어땠는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유희경,<궤적> 중)    


1. 입에 달라붙은 멜로디처럼 어떤 일은, 지독하게 기억난다
그때 나는 창백해진 얼굴과 그렇지 않은 시간
조금, 몸이 흔들렸다
주저앉은 얼굴과 가득한 밝은 빛이 테두리들 사이
있던 사람이 없어지고 나서야

2.
불행한 소식을 들었다
우는 사람은 늘 같은 방향으로 돌아선다
나는 내 몫의 것들을 믿지 않았다
지금은 언제나 눈물방울처럼 움직인다
3.
목으로 치미는 목소리가, 써지지 않는 순백의 글자가 귀를 틀어막은 음악이 오늘이다가 갑작스럽게 멈춰버리곤
오늘이 믿기지 않는다

4.
울며 말했다 울음이 말을 막고 말이 울음과 섞여서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그 소리가 나를 잡아당겼다
언제나 무수한, 너와 너들

                                                            (유희경, <불행한 반응> 중)


책장에 꽂혀있는 유희경의 시집, <오늘 아침 단어>가 유난히 눈에 띄었고 이 글을 적게 된다.
목차를 보며 눈길이 가는, 손길이 가는 단어와 그 제목을 따라 페이지를 간다. 
그리고 우연적으로, 거짓말처럼 그 모든 것들은 한 순간이라도 마음에 와 닿고, 그것들은 이어지며 엮어진다. 

위에 소개한 시 <꿈속에서>와 일부 발췌한 <불행한 반응>,<궤적> 은 모두 오늘 아침 단어로 내게 와닿은 시였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일 수 있는 이야기인, ‘나’ 라는 사람과 이야기, 단어를 엮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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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느즈막한 새벽에 잠시 앓았던 통증 때문에 꾼 꿈이었는지, 아니면 근래의 개인적으로 꾸는 꿈들의 향연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어젯밤 꿈 속에서, 나는 두 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였다. 두 아이는 쌍둥이 남매같았다.
나는 항상 아이들을 앞으로 들쳐 안고 이동했다. 지하철을 타기도 했고, 아이들만 서 있는 지하철에서 문이 닫히기 직전 뛰어들어가서는 안심한 듯 아이들을 꽉 껴안기도 했다. 
항상 가방을 메고 있었던 것 같다. 항구에 간 적도 있다. 축축함과 습기를 꽉 삼킨 두터운 이불 사이에서 꿈 속의 나는 잠에서 깼다. 내 주위에는 가방이 있었다. 가방을 열면 가방이 나오고, 가방을 열면 또 가방이 나왔다. 현실의 내가 사용하는 가방도 있었고, 과거에 사용했던 가방도 있었다.
 내 동생이 내 아들과 내 동료가 되어 옆에 길게 누워있었다. 그가 내 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늙고 빳빳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리고 무어라 말했다. 
그의 언어는 기억나지 않는다.다만 꿈 속의 나의 망막에 늙은 남자의 입이 집중했을 때, 나와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멀어졌다. 현실의 내가 꿈 속의 나를 관찰하듯, 제 3자의 시선으로 나와 그들의 모습이 풍경이 되어버렸다. 
배 냄새와 바다냄새가 났던 느낌이다. 내 아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꿈 속의 아이들의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적어도 한명 정도는.
 꿈 속, 내 아들이었던 아이는 노랗게 뜬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앞머리는 유독 짧았고 흔한 시골아이처럼 생겼다. 눈이 작았고, 검은 눈동자 밖에 보이지 않았다(너무 작아서 그런 듯하다). 
상황 때문에 불안한 듯 눈동자는 흔들리지만 나 하나만 보고 믿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래서 꿈에서도, 꿈 다음에도, 꿈 속의 꿈에서도 아이들을 찾아 헤맸고 슬퍼했다.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전날에 앓았던 통증은 1주기를 맞은, 세월호에 대한 통증이었다. 
그래서 꿈에 내 아이들이라는 아이들이 나오고, 배가 나오고 그랬던 걸까.

매일 아침마다 당신의 손에 굴려지는 단어를 하나씩 써 보자. 
당신의 매일  아침 단어에서,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식을 포함하여 무의식의 경계까지, 우리를 건들이고 아프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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