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문학]

글 입력 2015.02.0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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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가죽소파표류기


 

200페이지도 안 되도록 얇은데다, 표지의 귀여운 일러스트까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담담한 문장 한 줄 한 줄이 마음을 쑤시었다. 나와 내 친구들이 고민하던 문제들과 같은 문제들을 겪으며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받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청춘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많은 이야기에서 청춘은 열정을 가져야 하는 존재, 꿈과 용기로 중무장한 존재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곤 했다. 이와 반대로 청춘들의 마음을 담아내고자 노력하는 책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의 들어가는 글에서는 기존의 20대 세대론, 청춘담론 등에 대해 비판하며 청춘들의 이야기는 청춘들과 함께 써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세대론에 대한 책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이 책은 애초부터 20대들, 그중에서도 대학생들이 다른 세대와 어떻게 다른지를 강조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중략) 사실 사람에 대한 앎과 시대에 대한 앎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곧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 그 시대의 조건과 방향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것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나도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어로 말한다면 이 책이 20대들과 연결되는 전치사는 ‘about/on'’to'도 아니고 ‘with'이다.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들어가는 말

 

그렇다. 청춘의 마음과 청춘의 고민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청춘을 살고 있는 그 자신들이다. <초록가죽소파표류기>는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가 정지향은 한 인터뷰에서(http://ch.yes24.com/Article/View/25929) 이 작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무 살 이후로 제가 느껴왔던 감정과 주변의 친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소설로 잘 그려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20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한편에서는 청춘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와 닿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했어요. 어떤 세대를 누군가 단번에 아우르는 일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공감과 교류, 나아가 치료를 가능케 할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 세대 속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작가 본인이 겪고 있는 청춘의 현실과 그에 대한 고민은 그렇기에 더욱 진실하게 다가온다. 학생들이 떠나 텅 빈 지방 대학가 자취촌에 사는 와 연인이자 선배인 요조에게 가 여행지에서 사귄 친구 민영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회로 진입하고자 노력하지만 동시에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내 친구와 선배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청춘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에서 청춘은 흔히 푸르러야 한다는 이미지로 대표되곤 했으나, 우울한 잿빛의 현실에서 푸른 마음을 지키고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요조민영의 이야기는 이러한 현실에서 청춘들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는 위대한 해결책은 되지 못하더라도 잿빛으로 물들어가던 마음에 초록빛 위안을 심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작가 정지향의 수상소감의 일부를 덧붙인다. 푹신한 초록빛 가죽소파에 앉아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소설이었다.

 

 

내가 쓰는 모든 비유가 무력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가령 너무 많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고백을 해야 할 때. 첫사랑에게 보냈던 연애편지처럼, 이 고백 또한 한없이 순진하고 단순해질 것이라는 예감이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매일 밤 머리맡에서 별의 그것처럼 무기력이 폭발했다. 파편들을 이불처럼 덮고 내내 진득하고 깊은 잠을 잤다. '애들이 뭘 안다고 글을 쓰겠어?' 무심한 사람들의 말이 자주 꿈속까지 따라왔다.

이불을 걷어차고 배낭을 멨다. 낯선 곳을 홀로 헤매다 하나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사랑은 그날에만 있다.' 미루어둔 감정은 영영 가라앉아버리거나 전혀 다른 모양으로 일그러져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상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괴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매일 열심히 사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매일 열심히 써야 하는 것이었다.

돌아와선 '그날의 문장은 그날에만 쓸 수 있다'고 바꿔 쓰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무심한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어리고 나는 뭘 모른다. 하지만 사랑을 말하고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만 한 가지씩 비밀을 알게 된다. 좋은 문장을 쓴 날보다 비밀을 새로 알게 된 날 밤에 더 단정하고 아름다운 꿈을 꿨다.

 

[유윤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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