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F 서울국제음악제] 살바토레 아카르도와 함께 한 어느 멋진 봄날

글 입력 2014.05.2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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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a beautiful day

살바토레 아카르도와 함께 한 어느 멋진 봄날





굉장히 오랜만에 엄마와 함께 나들이를 했다. 하지만 이전의 나들이와는 달랐다. 그동안의 나들이가 산과 들로 나갔던 거라면, 이번 나들이는 뭔가 엄마와 내가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왔음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던 그런 나들이었다. 클래식이나 유사한 공연들에 관심을 갖게되면서부터 종종 공연을 보는 일이 많아졌는데, 한껏 공연을 관람하고 돌아온 날이면 엄마는 늘 내게 묻곤 했다. 재미있었느냐고, 이번엔 얼마만한 규모의 연주회였냐고. 처음 그 질문을 들었을때는 그냥 흘려 들었다. '엄마가 이런 쪽에 대해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관심을 갖겠어. 그냥 공연을 보고 왔다고 하니 으레 하는 말이겠지.'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후로도 내가 무언가 공연을 보고 올 때마다 여러가지를 물어보셨다. 어떤 악기가 메인이었는지, 독주회인지 오케스트라인지, 어디서 보고 왔는지, 느낌은 어떤지 등등을 말이다. 그런 질문을 몇 번을 듣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은 엄마도 이런 장르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게 아닐까?' 사실 그 동안의 나는 엄마에게 굉장히 무심한 딸이었다. 언니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와의 소통은 언니에게 미뤄둔 채 나는 내 할일만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엄마가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건지, 어떤 음악을 듣고싶어 하시는 지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렇다면 딸로써 엄마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내겐 5월 18일에 열리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바이올린 독주회의 티켓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엄마.. 이번에 예술의 전당에서 바이올린 독주회를 하는데... 같이 보러갈래? 이 사람이 세계적으로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고 실력도 장난 아니래. 지금 서울 국제 음악제라는걸 해서 한국에 온건데..." 혹시 엄마가 안가겠다는 말을 할까봐 노심초사하며 공연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려던 찰나, 엄마가 대답했다. "그래, 좋아." 보러가자는 대답을 하던 엄마의 그 환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동안 영화 한편, 공연 하나 같이 본 적도 없었던 내가 참 미워지면서도 지금이라도 엄마와 함께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게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공연을 관람하기로 한 후, 사실 조금 걱정되는 부분은 있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도 아닌데 너무 심심하거나 밋밋하다고 하는 건 아닌지 혹은 전혀 모르는 곡들만 연주되서 피곤해 하시지는 않을지 신경이 쓰였다. 결국 프로그램 목록에 나와 있는 음악을 먼저 찾아 들었고, 나는 엄마에게 이같은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엄마! 엄마가 들으면 딱 아는 곡이 하나 있어!" 그 곡이 바로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였다. 국내에서는 모 전자기업의 CF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이었다. 엄마가 아는 곡이 단 하나라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공연날이 다가오길 하루하루 기다렸다.


결과를 먼저 이야기 하자면, 엄마도 나도 '매우만족'이었다. 바이올린 독주회는 나도 처음이었지만, 엄마에게는 그런 공연관람이 굉장히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도 한 때 클래식을 좋아하던 한 소녀였다고 한다. 젊을 적엔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기도 했다는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다보니 자신이 좋아하던 취미는 잊고 가정을 잘 꾸리는데만 여념하셨던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 옛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그래서 이번 공연은 나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 동안 자주 봐왔던 오케스트라는 규모가 크다. 바이올린 연주자만 해도 20명 남짓일 정도로 스케일이 거대하다보니 사실 그 동안에는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달랐다. 바이올린의 현을 가늠하는 살바토레 아카르도의 손을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환상적인 선율도 느낄 수 있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 하나이 이렇게 집중해 보기는 처음이라, 신기하고 놀라운 순간의 연속이었다. 살바토레 아카르도를 일컬어 '파가니니의 재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그만큼 그의 연주실력이나 기술, 곡에 담겨있는 힘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기에 앞서 비슷한 기사를 많이 접하면서도 크게 와닿지는 않았던 부분인데, 눈 앞에서 그가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바이올린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의 현란한 왼손에 엄마와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감탄사를 동원해가며 그의 연주를 극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간접경험이 직접경험을 100% 완벽하게 따라가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그의 연주 동영상도 자주 보고, 또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수 없이 검색하고 알아봤지만 막상 눈 앞에서 연주하던 사람은 모니터 속의, 동영상 속의 그 사람과는 또 다른 모습과 느낌이었다. 그 시간, 그곳이 아니었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바이올린의 환상적인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오직 그 때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을 보는 경험은 좋은 것이며, 또 한번쯤은 꼭 해봐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최근에 TED에서 한 강연 동영상을 봤는데, 우리의 삶에 클래식이 필요한 이유에 대한 강연이었다. 좋은 공연을 보는 기회를 가지라는 나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강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점들을 꼭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는 자신이 아끼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더욱 소중한 시간으로 탈바꿈 될 수 있을 것이다.


2014 서울국제음악제 | 세계 정상급의 음악가들이 서울의 5월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물들입니다.

http://www.simfkorea.org


[안수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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