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니다 보면 항상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다.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행동에 눈을 뜨고 나면,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삶의 양식 속으로 침투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행동을 일상에서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오늘은 차 이야기이다!
차를 접하기 전의 나는 차가운 음료를 좋아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유가 들어가 있지 않은 물 베이스 음료에 얼음이 사각거리는…. 그런 투명한 음료를 좋아했다. 유당불내증이 있는 것은 둘째로 치고, 시간이 지나 얼음이 모두 녹아버려 층이 저버린 우유의 밍밍한 맛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선택은 언제나 아이스아메리카노였다. 일명 얼죽아, 더운 여름에는 당연하고 추운 겨울에도 얼음이 들어간 아메리카노는 포기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랬던 내가 차에게 사로잡힌 순간은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시작은 중국 상하이에 갔을 무렵….
0. 차가 맛있을 수 있다?
중국은 차의 나라이다. 무심결에 들어간 카페조차 차가 들어간 음료가 많고, 많은 사람이 음식과 어우러지는 차를 즐겨 마신다. 중국에서 차는 일종의 식문화다. 때는 5월의 상해 도심 한복판, 높은 기온과 숨 막히는 인구 밀집도 탓에 거리를 걷다 보면 음료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그렇게 메마른 채로 길을 걷다 보니 때마침 차지티를 발견하고, 수많은 인파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당시 서울에 차지티가 막 들어온 직후라, 밀크티를 위해 줄을 길게 서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던 터였다. 음료가 다 거기서 거기지, 그렇게 줄 설 일인가? 싶었지만, 중국에 왔으니 새로운 음료를 마셔보자는 생각에 별 기대 없이 한자로 길게 설명되어 있는 이름 모를 밀크티를 주문하게 된다.
얼마 뒤 음료를 받아 들고, 한 모금을 빨아들이자 인생 처음으로 꽃잎이 입안에서 만개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헉, 엄청 맛있다! 이게 도대체 뭐지? 한국에서는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화려한 꽃 내음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몇 번을 연속하여 마시며 계속해서 놀라움을 반복하게 된다. 이 꿀과 같은 음료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방금 주문했던 메뉴판을 접속하자, 곧이어 자스민 밀크티라는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1. 음식과 어울리는 차
자스민 밀크티를 통해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하이 여행의 마지막 날, 대미를 장식할 음식으로 나는 베이징덕을 선택했다. 조명이 어두운 음식점의 구석에서 전혀 읽을 수 없는 한자 메뉴판을 관찰하던 중, 종업원은 메뉴를 주문하기 전 음료를 선택하기를 권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 찰나, 주변에서 풍겨오는 향긋한 차향에 이끌린 나머지, 우롱차를 선택했다. 기다림의 순간이 지나고, 드디어 나온 메인 요리와 찻주전자. 윤기가 흐르는 베이징덕을 연이어 먹다 보니, 느끼한 속을 내려줄 무언가가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찻잔으로 손이 향했다. 향기롭고 씁쓸한 차는 기름진 입안을 깔끔하게 정돈해 줬고,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 음식의 조화로움 속에서 맛을 탐미하다 보니, 무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사할 때면 찬물을 마시는 게 습관이라 일부러 얼음을 왕창 타먹었던 과거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2. 습관으로 남겨진 차
마지막으로, 차가 습관이 된 것은 몽골을 다녀와서부터다. 몽골은 일교차가 큰 나라이다. 여름이면 햇볕이 강하게 쏟아져 내리기 때문에 낮이라면 25도까지 올라가지만, 해가 사라지고 난 후의 저녁부터는 10도를 웃돌며 쌀쌀함을 풍긴다. 그렇기에 조식과 석식 메뉴에서는 항상 차가 빠지지 않았다. 뜨거운 물과 여러 종류의 차 티백은 늘 식탁 위에 자리 잡았고, 어색하고 진하게만 느껴지던 홍차의 향도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는 익숙해졌다. 마지막 날, 몽골 여행의 기념품으로 늘 마셔왔던 홍차 티백을 모두 하나씩 담을 정도로 차는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차를 마신다. 집에 떨어지면 아쉬울 정도로 구비해놓는 자스민 차와 식탁 위에 항상 놓여있는 홍차, 감기가 들면 마셔야 하는 약용 차, 잠이 안 올 때 마시는 캐모마일 차 등등…. 차는 뜨거운 음료를 즐겨 마실 줄 아는 진정한 어른이 마시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매력에 빠져드니 맹물을 마시는 것이 아쉬워 매 순간 차를 마시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지는 요즈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차를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