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머리가 아플 때면 미술관에 가곤 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을 때나 계속된 일정으로 지쳐있을 때, 사람을 대하는 것이 힘들어질 정도로 정신이 고될 때면 바쁜 와중에 잠깐의 틈을 내서라도 미술관으로 떠나곤 했다. 나에게 미술관은 작품을 관람하는 곳인 동시에 휴식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종의 대피소였다.

 

그런 미술관을 상상했을 때 공통으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 발소리가 울리는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서늘한 한기와 퀴퀴한 약품 냄새, 고요함 속에 들려오는 대화 소리와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볕 같은 것들이다. 이들을 배경 삼아 작품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어느 순간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어딘가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떤 근심과 걱정도 이곳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수많은 미술관 중에서도 대전 시립 미술관은 가장 많이, 그리고 자주 방문한 곳이다. 한밭수목원과 대전 엑스포, 이응노 미술관과 붙어 있다는 편리성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거리상 이점 덕분이었다. 공용자전거를 타고 수목원의 자연을 감상하다가 미술관에 들어와 지역 청년들의 전시를 관람하고, 해가 질 녘의 갑천을 떠다니는 오리들을 멍하니 쳐다보면 어느샌가 활력을 되찾곤 했다. 그야말로 쉼을 취하기에 최적인 공간이었다.

 

이때 눈여겨볼 점은 작품의 질이나 작가의 명성, 전시의 주제는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느긋하게 미술관에 머무는 동안 작품과 내면의 대화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활동이 마음을 치유한다는 것을 몸소 체감한 뒤로는 정신적으로 내몰릴 때마다 저절로 미술관이 고파졌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면서도 ‘미술관에 가면 나아지겠지’라는 신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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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맥락에서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인간의 뇌와 예술의 관계성에 관해 과학적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명랑하게 증명해 낸 책이다. 존스홉킨스대 뇌과학자인 수전 매그새먼과 구글 디자인 아티스트인 아이비로스가 공동으로 출간한 이 책은 과학적 측면과 예술적 다양성에서 모두 집중하며 예술의 유용성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한다. 총 7장에 걸쳐 증명된 과학과 예술의 상관관계는 굉장히 넓은 방면으로 적용된다. 간접적으로 경험의 연결 고리를 느낄 수 있는 예술 작품(피카소의 게르니카)부터 스트레스를 줄여줄 수 있는 소리의 주파(소리굽쇠), 긴장도를 낮추고 자기 객관화에 도움을 주는 시 낭독(메리올리버의 기러기)까지. 형태와 종류를 가리지 않는 예술의 다각화는 그걸 접하는 이들의 마음을 고양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과학적 근거와 연구들이 제시되며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중에서 인상 깊었던 몇 개의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치유에 대한 예술


 

책에 따르면 오늘날 예술은 신체 치유에 6가지 방편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예방약, 일상적 건강 이상의 증상 완화제, 질병이나 발달장애, 또는 사고에 대한 처치나 개입, 심리적 지원, 만성적 증상을 극복할 수 있는 도구, 마지막으로는 생애의 끝에서 위안과 의미를 제공하는 수단이 바로 그 6가지에 해당한다. 삶의 시작과 마지막에 걸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삶에 파고들어 있다.


특히 통증을 완화하거나 표현하는데 예술은 효과적이다. 통증이 의사들이 해결하기에 가장 어려운 증상인 것은 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달라서이다. 생물학적 반응뿐만 아니라 심리학적인 영향이 깊게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진단을 받더라도 통증 감각 경로의 활성화와 사건에 대한 이전 기억, 감정 상태, 자존감을 포함하여 고차원적인 인지 작용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때 예술은 통증 해결에서 중요한 열쇠를 쥐어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술 치료를 통해 환자의 고통이 신체적 통증뿐만 아니라 불안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예술은 나아가 호전될 수 없는 건강 문제를 앓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완화 치료 개념으로써 활용될 수도 있다. 학술 문헌 검토에 따르면 시한부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예술 활동이 동원되었을 때 이들의 행복감을 증대시킬 수 있고, 타인과의 소통 능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예술은 신경퇴행성 질환의 치료를 도울 수도 있다. 2001년부터 시작된 ‘파킨슨병을 위한 춤’은 8년 동안 지속되며 환자들의 실질적인 증상 완화를 도왔다. 이후 여러 과학자가 이와 같은 성과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었고, 실제 운동 장애를 줄여 삶의 질이 향상되었음을 입증해 냈다. 또한 뇌전도 검사를 했을 때 춤을 추는 파킨슨병 환자들의 뇌파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근육을 담당하는 부위인 기저핵에서 혈류가 증가하며 뇌의 신경 회로를 재배선하게 된 것이다.

 

 


아동 발달에 대한 예술


 

예술은 청소년기를 비롯한 아동의 전반적인 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술 활동을 하는 아동은 타인과의 사회적 관계가 더 원만하게 형성되며 우울증이 생길 확률도 적기 때문이다. 미국 미술치료협회에 따르면 미술 표현과 창작 활동은 10대 청소년이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제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예술을 일찍이 접한 청소년의 뇌에서는 집중력과 문제 해결력, 결단력이 향상되었고, 이는 마약과 담배, 식습관을 포함한 여러 건강 측면에서 더 나은 선택지로의 실천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긍정적인 결과는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에서도 도드라진다. 로스앤젤레스의 유스 오케스트라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연구에서는 소리를 처리하는 뇌 영역 크기가 더 커졌으며, 두 대뇌반구 간에 소통을 주도하는 뇌량에서도 더 강한 연결성을 보였다. 또한 정기적으로 무용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은 신경 화학물질이 증가하는 결과를 보였다. 이는 사회 정서적, 인지적 발달을 통한 친사회적 행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책에서 주목하는 한국의 모습


 

마지막으로는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에서 언급하는 한국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자율 신경계의 일부인 부교감 신경계는 자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자연적 요소와 접촉할 때 심박수와 혈압이 떨어지고 뇌간에서는 불안과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는 기제가 발동된다. 답답할 때 산을 찾는 이유도 이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서 자연환경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자연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책에서는 이처럼 도시화로 인해 자연적 환경과 야외 공간에 접근할 기회가 줄어가는 이 현상을 ‘자연 결핍 장애’라고 명명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에서도 단연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국인들의 ‘멍때리기’이다. 작가는 코로나 펜데믹 기간 동안 자연 체험과 동시에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목적의 행사 “멍때리기”를 언급하며, 자연과의 만남을 위해 긍정적인 움직임을 해야 한다고 외친다. 한가로운 숲에서 가장 낮은 심박수에 도달하는 사람이 우승하는 멍때리기 대회는 그야말로 책이 목적하는 예술의 이점을 집약한다. 주변을 환기할 수 있는 자연에서 정서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동시에 안정감 받기는 예술이 선사하는 많은 즐거움을 요약해 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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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인간의 삶을 위해서는 예술이 필요하다."라는 뜻을 전하는 이 책에서는 반복해서 나오는 어구가 있다. 바로 능력보다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특출난 결과를 보일 필요도 없다. 예술에 다가서기가 어색하다면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가끔 그림을 끄적이거나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는 것도 괜찮다. 그러니 건강을 위해서라면 지금 당장 독서하고 자연을 만끽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자.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인 예술을 취하며 행복한 하루를 가꿔보자. 예술의 문턱에 한층 가까워지게 만드는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의 작품 속 한 구절로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부수어져 활짝 열렸다면 춤을 추라. 싸우는 와중에 춤을 추라. 너의 피에서 춤을 추라. 완벽히 자유로워졌으면 춤을 추라.”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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