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험이라는 매개체 [문화 전반]

일상과 맞닿아 있는 것을 특별한 경험으로
글 입력 2022.05.0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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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작업이 잘 풀리지 않고, 머리가 꽉 막혀 답답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있다. 바로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매번 카페에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격적인 부담과 더불어 차(茶) 종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직접 제조한다. 깔끔한 스트레이트 티와 드립 커피부터 진한 티 아포가토와 에스프레소, 청량한 티 에이드와 카페라샤워(에스프레소+탄산) 등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주며 마신다.


처음으로 마신 커피는 이디야의 카페모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에 들어가고, 공부하러 카페에 갔다가 호기심에 마신 음료였다. 그 후 다양한 카페를 다니며 산미 있는 아메리카노에 푹 빠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마신 홍차는 고등학교 때 해외 수학여행을 갔다 오며 사온 TWG의 잉글리쉬 브렉퍼스트였다. 그 이후로 차에 관심을 가지며 많은 브랜드의 샘플러를 구매해서 마셔보았다. 그때 알게 된 브랜드 중 하나가  ‘ALTDIF 알디프’이다.


알디프는 2016년에 설립된  Tea & Lifestyle 브랜드로, 이태원의 작은 티 바로 시작하여 현재는 홍대에서 계절마다 다른 주제와 메뉴로 티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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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책 ‘데미안’의 가장 유명한 구절이자 알디프의 모티프가 된 문장이다. 알 속의 새가 껍질을 깨뜨리며 다른 존재로 태어나듯이, 차를 마시는 사소한 행동이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4년 전 이태원의 티 바를 방문한 이후로 아직도 일상의 환기 방법으로 음료를 마시고 있다. 위에는 거창한 바리에이션 음료를 나열해 놓았지만 단 음료를 그리 선호하지 않아 가볍게 티백으로 된 차를 마시는 경우가 대다수다.  단지 티백 하나로도 기분이 환기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태원의 티 바를 방문했을 때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 방학이었다. 매일같이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늦은 시간까지 독서실에 머물러 있었고, 온종일 하늘을 보는 시간이라곤 밥 먹을 식당을 찾는 때가 전부였다. 그러던 와중에 알디프의 티 코스를 알게 되었고 하루를 비워 이태원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정표에 티 코스를 써놓고 오매불망 그날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방문한 이태원의 알디프는 정말 험난했다. 추운 겨울에 땀이 뻘뻘 날 정도로 오르막길이 이어지는 주택가에 있던 덕분에 첫 잔은 시원한 차가 되었다. 궁금해하던 ‘리스 브렉퍼스트’는 아메리카노 같은 쌉쌀함과 고소함을 입에 머금는 맛이었다. 두 번째 잔은 초콜릿 가향과 잘 어우러지는 벨벳 골드라운드 밀크티, 세 번째 잔은 상큼한 머스캣 향의 스파클링 샹들리에였는데, 공교롭게도 이 3가지 메뉴를 아직도 알디프에서 제일 좋아하는 차로 꼽는다.


또 다른 경험을 꺼내 보자면 알디프의 창신 티룸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홍대점에 비해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좋았고, 이미 지나간 시즌 메뉴를 맛볼 수 있어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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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락앤롤

 

 

‘한낮의 락앤롤’은 지금까지 마신 알디프의 베리에이션 음료 중 최고로 꼽을 정도로 인상적인 메뉴이다. 사실 베이스가 되는 ‘서울의 달 그레이’를 그렇게 선호하는 편이 아님에도 상큼한 크림과 톡톡 튀는 소다의 합은 그야말로 여름의 맛이었다. 그 전까지 티와 크림소다의 조합은 생각해보지도 못했는데 베리에이션 티에 대한 시각이 크게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더하여, 알디프의 티 퍼퓸을 사용하면서 차를 마시지 않아도 차를 마시는 듯한 기분도 경험하였다. 가장 좋아하는 티 퍼퓸은 ‘경화수월’인데, 내음이 가득하면서도 기문 홍차 특유의 묵직하고 스모키한 향이 어우러져 부담스럽지 않은 차이다. 이 차를 섬유 향수에 그대로 우려 넣어 향을 통해 찻자리를 생각나게 한 것이다.


새롭고 특별한 공간에서 경험한 ‘기분 좋음’은 다른 공간에서 차를 마실 때 환기된다. 이런 경험이 일상의 사소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이 쌓이면서 또 다른 ‘기분 좋음’을 만들어낸다. 경험이라는 매개체는 일상에서 특별함을 떠올리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알디프는 계절별로 티 코스를 운영하고 있다. 2022년 호랑이의 해를 맞아 대주제는 한국의 사계, 봄의 주제는 금수강산으로 코스를 맛 볼 수 있다. 이 중 인상 깊었던 메뉴를 두 가지만 소개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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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깻잎을 테마로 한 논알콜 티 칵테일이다. 우리나라는 깻잎을 향신료보다 요리의 재료로 사용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깻잎을 '허브'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한 메뉴이다. 재스민꽃과 여린 잎의 백차가 블렌딩 된 ‘무드 포 러브’가 베이스가 되었고 마시기 전에 마무리로 오렌지블라썸 워터를 뿌려 주었다. 향긋한 느낌의 음료와 산뜻한 깻잎의 향이 잘 어우러져 정말 한국적인 메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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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네 번째 잔은 선택 메뉴와 티 푸드가 제공된다. 들판을 테마로 한 비단 밀크티, 곶감 아이스티, 흙 칵테일 중 흙 칵테일을 선택하였다. 흙 맛이 나는 차라고 하면 아마 보이차가 가장 먼저 생각날 것이다. 흑당 가향의 보이차 ‘올드 블랙 매직’ 시럽과 위스키, 비터, 오렌지를 조합한 칵테일이다.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의 나물을 먹으면 흙 맛을 느낀다고 한다.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미 흙은 우리의 일상에 가까운 맛이다. 흑당의 달달함과 위스키 특유의 달콤하면서 구수한 곡물 향이 어우러지고 오렌지 향이 살며시 가미되어 진하고 깔끔한 칵테일이었다.


티 코스에서 이런 메뉴들을 경험하고 나면 자연스레 집에서도 다양한 커스텀을 적용한 베리에이션 음료에 도전하게 된다. 일상과 맞닿아 있는 것을 특별한 경험으로, 그 특별한 경험을 다시 일상의 것으로 가져오게 하는 것. 경험이라는 매개체가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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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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