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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의 나는 바닥에 떨어진 젖은 휴지 같았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감정의 배설물 때문이었는지, 스스로 흘린 눈물의 무게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바닥과 나 사이에 공기가 드나들 틈이 전혀 없었다. 물기를 머금고 바닥에 밀찬된 휴지는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부서진다. 다시 집어 올리려 할수록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짓이겨질 뿐이다. 그때의 나는 확신했다.

 

이게 끝이구나. 여기서 더 올라갈 수도, 더 떨어질 바닥도 없구나.

 

축축한 물기를 말리고자 꼬박 6년을 병원과 상담실을 전전했다. 눅눅했던 생각의 습기를 약과 상담으로 닦아내며, 30대에 접어들 무렵 내 마음은 어느덕 바스락거릴 정도로 기분 좋게 건조돼 있었다. 10대의 막막함과 20대의 자학이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몸이 알아서 잡다한 고민을 덜어내고 현재의 소소한 즐거움에서 가치를 찾는 안정된 인간이 되었다고 믿었다.

 

얼마 전, 다녀온 하현상의 콘서트는 이 믿음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평소 슬픔의 밑바닥을 노래하며 위로를 건네던 그는 정규 2집 『NEW BOAT』 앨범을 내놓이며 이렇게 말했다. "슬픔을 이만큼 노래할 수 있다면, 그만큼 기쁨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음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는 그의 고백은 내가 먼저 걸어온 굴곡진 길을 맑은 음색으로 다시 정리해 주는 느낌이었다. 깊은 슬픔을 통과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단단한 기쁨. 나는 그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하며, 나 또한 이제는 기쁨의 궤도에 무사히 안착했노라 안도했다.

 

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정답을 내어줄리가. 공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20대의 나를 가장 처참하게 무너뜨린 상황과 유사한 일이 일상에 침입했다.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온몸을 감쌌고, 단단하게 말랐다고 믿었던 마음은 다시 바닥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자학 대신 분노가 차올랐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말려온 마음인데'라는 억울함이 매일 밤 데스노트 같은 일기를 쓰게 만들었다. 6년 간의 치료도, 약을 끊어가던 희망도, 아티스트의 노래를 들으며 다짐했던 기쁨의 연대도 불청객 하나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다시 젖은 휴지가 되어 바닥에 붙어버렸다.

 

그 비참함 속에서 거대한 착각을 마주했다. 나는 특별히 강해졌거나 성장해서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한동안 비바람이 불지 않았기에 마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여전히 '언제든 젖을 수 있는 휴지'일 뿐이었다. 나이는 방패가 되어 주지 못했고, 30대라는 이름의 힘은 생각보다 연약했다. 슬픔의 깊이만큼 기쁨을 얻을 수 있으나 반대로 기쁨의 정점에서 다시 슬픔의 수렁으로 미끄러질 수 있다는 것 역시 인간의 실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보잘것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 미칠 것 같던 분노 게이지가 잦아들며 묘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내가 무너진 것은 못나서도, 6년의 세월이 헛되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비를 맞으면 젖는 것이 인간이라는 당연한 순리 때문이다. 나는 수많은 결을 가진 입체적인 존재였다. 이상적인 극복을 꿈꾸며 평온을 노래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냉소와 분노 사이를 격렬하게 진동하는 역동적인 사람이었다.

 

30대가 되어 얻은 진짜 수확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 젖지 않는 법이 아니라 젖었을 때의 나를 부정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얼마든지 다시 무너질 것이고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젖은 휴지는 바닥을 탓하지 않는 법. 비루한 순간조차 나의 일부임을 고백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무너진 채로도 일상을 이어가는 묵묵함이야말로 내가 지녀야할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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