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부터 잠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교나 아르바이트가 그나마 방지턱 역할을 해 주었는데, 그마저도 없으면 여지없이 미국의 시간으로 살고는 했다. 로스앤젤레스 어디서 레이첼이 잠들 무렵에 나도 유튜브를 끄고 커튼을 친다. 슬슬 방으로 누런빛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와 미국은 15시간가량의 시차가 있다.
딱히 자기연민 섞인 고백은 아니다. 아마도 호르몬이나 생활 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수면이 어려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후자의 경향이 큰데, 자정에 잠들면 하루가 허무하게 끝나는 기분이라 매번 오기를 부린다. 지금도 침대로 다이빙하는 게 맞다는 걸 알지만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켰다. 분명 낮 동안 피곤하겠지만 조용한 새벽에 이것저것 끄적거리라고 보챈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할 말도 없다. 일단 나쁜 습관부터 고치고 위로받으러 다시 오도록 하겠다.
따라서 후술할 내용은 찡얼이라기보다는 나열이다.
새벽 내내 뒤척이다가 고작 네 시간 자고 짜증스럽게 눈을 뜨면 세상의 채도가 확 낮아진다. 정류장에서 자꾸만 목을 큼큼대는 할아버지가 거슬리고, 하필 내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신호등이 싫고(빨간불이라는 뜻이다), 왼쪽 신발 끈은 왜 또 풀리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종일 피로가 쌓였으니 오늘은 일찍 눈이 감기겠다는 기대를 갖고 집으로 향한다. 반신욕에 요가까지 하고 얌전히 눕는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 제기랄. 채도가 왜 지금 다시 올라오는 걸까. 심지어 명도는 반대로 낮아졌다. 구석에 휙휙 던져놨던 고민 꾸러미들이 언제 이렇게 쌓였는지 체감해야 하는 시간이다.
다행인 건 심각한 불면증까진 아니라는 사실이다. 건강 상태가 좋거나 근심거리가 없을 때면 다시 한국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적정 수면시간을 충분히 채운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뜨면 바로 창문부터 연다. 방으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노란빛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부터 헬스장에 가서 마구 달린다. 이때만큼은 목초지의 양보다 점프력이 좋을지도 모른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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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그날의 수면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당장 나부터도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밤늦게 혼자 있으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간다.
푹 자고 싶으면 조도를 낮추는 게 좋대요. 완전히 어두우면 제일 최고고요.
해파리 수면법 아세요? 미 해군이 개발한 거라던데.
자기 전에 마그네슘을 드세요. 산화 말고 글리시네이트로...
그런 정보들을 쏟아내기에 애매한 사이라면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만다. 짧은 한마디지만 사실은 이것저것 눌러담은 말이다. 그러니 나의 잘 자라는 말은 대부분 진심이고... 솔직히 밥 잘 챙겨 먹으라던가 추위 조심하라는 건 빈말이다. 갑작스럽게 고백해 본다. 친구가 한 끼 정도 걸렀다고 해서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며칠 굶는다고 해서 사람 안 죽는다. 하지만 새벽에 뒤척이다 연락한 눈치면 바로 답장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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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데, 어쩌면 사람들이 건네는 말에는 각자의 결핍과 진심이 묻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잠들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굿나잇 인사를 열심히 한다. 누군가는 본인이 추위를 많이 타서 아침마다 비 소식을 챙겨줄 수도 있겠고, 또 누구는 허기를 알기 때문에 남들의 식사를 유독 챙겨줄 수도 있을 거다.
어쩌면 우리가 무심코 받았던 어떤 안부들이 생각보다 컸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아직까지도 모를 진심 어린 격려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기억조차 못하는 그런 말들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여겨진다. 서로에게 애정을 건네면서, 정작 자신이 무엇을 받고 있는지는 모르고, 그럼에도 다시 사랑을 보낸다. 이런 반복이 아무렇지 않게 계속되는 세상이 난해하고 우습다가도 또 포근하기도 하다.
그래서 글에 말미에서는 언젠가 내가 받았을지도 모를 작은 진심을 다시 토스하려고 한다.
혹시 새벽에 이 글을 읽고 계신 분이 있으신가요.
오늘은 특히나 편안하게 주무시길 바랍니다.
되도록이면 꿈도 꾸지 마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26년 4월 13일 새벽 5시, 이지연 에디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