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팬레터’가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뮤지컬 ‘팬레터’는 지난 2016년 국내 초연된 창작 뮤지컬로, 올해 5번째 시즌이자 10주년 기념 공연을 맞이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김유정과 이상 등 당대 문인들의 모임 ‘구인회’의 일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창작된 팩션 뮤지컬이다. 천재 소설가 김해진과 그를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 정세훈, 그리고 김해진의 뮤즈이자 비밀에 싸인 작가 히카루의 이야기를 통해 문인들의 예술혼과 사랑을 매혹적으로 그린다.

여기까지가 기사의 이야기이며, 이번 후기는 조금 투박하게 남겨보고자 한다. 혹시나 뮤지컬 ‘팬레터’를 처음 관심이 생겨 이 후기를 접했다면, 위의 시놉시스만 읽고 관람했으면 한다. 원래 어떤 공연이든 스포 없이 보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이번 공연도 시놉시스만 읽고 공연장에 들어섰다. 1막을 보고 든 생각은 스포를 보지 않고 관람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동경에서 유학하던 작가 지망생 세훈은 자신의 필명인 ‘히카루’로 당대 천재 소설가로 불리는 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낸다.
선생이시여, 슬픔을 안고 계시나이까?
그렇다면 그 슬픔을 나누어 주소서.
그리고 거기 따르는 길을 지시하여 주소서.
어느새 해진과 세훈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이후 세훈은 경성에서 문인 모임인 ‘칠인회’의 급사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해진을 만나게 된다. 세훈은 해진과 편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해진이 히카루에게 가진 사랑의 의미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히카루라는 사실을 알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세훈은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히카루를 만들어버린다. 하지만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세훈 안에서 히카루가 가진 영향이 커지고 히카루에 대한 해진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 갔다. 이 끝의 결말을 아는 이들에게 묻는다. 그것은 악몽일까 빛일까?
![[팬레터] 공연사진_08 김경수 원태민_제공 라이브(주).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1/20260126163947_zwbqcvwg.jpg)
개인적으로 해당 작품의 주인공을 한 명만 꼽아보라 한다면 단연 히카루라고 생각한다. 세훈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 히카루는 세훈이 가진 작가로서의 욕망이 가득 담겨있다. 후에 해진의 병이 더욱 심해져 생사의 갈림길에도, 병을 치료하는 것이 먼저라는 세훈과 죽기 전까지 나와 글을 써 세상에 남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히카루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세훈은 해진을 위해 히카루의 자아를 버리고 해진에게 자신이 히카루임을 고백하지만 해진은 도리어 왜 그런 짓을 했냐며 화를 낸다. 뮤지컬의 넘버에 나올 만큼 극에 중요한 존재인 뮤즈. 해진에 히카루란 그런 존재이다. 해진은 히카루가 세훈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세훈이 히카루임을 알고 있음에도 히카루를 잃지 않기 위해, 글을 계속 쓰기 위해 세훈이 히카루를 놓지 않길 바랐다. 개인적으로 히카루라는 역할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특히 히카루가 춤을 추며 부르는 “글자 그대로”라는 넘버가 가장 좋았다. 세훈이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으로 키워진 히카루는 세훈과 달리 자신이 넘치며 확신이 가득했다.
![[팬레터] 공연사진_17 김히어라_제공 라이브(주).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1/20260126164001_ozhfdgfw.jpg)
솔직한 마음에 왜 빨리 말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해진은 자신에게 슬픔을 가지고 있느냐고 말을 하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람이 누구라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해진의 마지막 편지에도 세훈을 원망하지 않는다. 해진도 역시 글을 쓸 구멍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해진과 히카루, 해진과 세훈은 서로가 서로의 뮤즈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히카루가 해진이 죽어가는 중에도 함께 글을 남기고자 한 것이 아닐까?
너의 말들로 그때를 내가 버티었다.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결같이 너의 답장을 기다리마.
삼월 십칠일 해진으로부터.
개인적으로 매우 몰입해서 보았다. 인물들 간의 관계도 재미있고 그 속에서 순수문학의 소중함에 관한 이야기도 잘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순간의 감정도 크게 다가오지만 곱씹어 볼수록 더 느껴지는 게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팬레터] 공연사진_24 에녹_제공 라이브(주).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1/20260126164025_rdcaadch.jpg)
이번 ‘팬레터’는 무대를 거의 변형하지 않고 진행되었다. 무대를 넓게 쓰지 않고 앞쪽만 이용하되, 무대 뒤쪽에서 그림자를 이용하는 연출을 많이 사용했다. 해당 작품에서 ‘혼란스러움’이라는 느낌을 관객들에게 자주 보여주는데 그림자라는 요소가 잘 어우러진 것 같다. 무대를 거의 변형하지 않은 대신에 조명을 이용하여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고 느꼈다. 무대 바닥에 쏘여지는 원고지 모양이나 히카루가 춤을 출 때 비치는 강한 조명은 인물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한 주요 인물들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세훈과 히카루가 하나가 되어 춤을 추기도 하고, 세훈과 히카루, 해진이 함께 춤을 추며 세훈이 가지는 죄책감, 히카루의 매혹적임, 해진의 혼란스러움을 한곳에 담을 수 있었다. 보면서 배우들이 손짓이나 제스처에 많이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무대는 배우들을 더 집중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팬레터] 공연사진_05 원태민 강혜인_제공 라이브(주).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1/20260126164047_uigbbfbp.jpg)
여담으로 팬레터라는 것이 굉장히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보통의 편지라는 게 그렇지만, 한 사람만을 위해 써 내려가는 글이라는 사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둘만 볼 수 있기에 마음에 담아두는 말을 꺼낼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편지는 내 마음을 실컷 뱉어도 그 사람에게 주지 않으면 나만 간직할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팬레터도 좋고, 평소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넘친다면 주지 않을 편지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