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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에서 퍼스트레이디로서 정치적 행보를 이어간 ‘에바 페론(1919~1952)’의 삶을 담은 이야기다.
막이 걷히기도 전에 ‘에바 페론’의 부고를 전하는 자막이 나온다. 합해서 열 줄도 안 되는 그녀의 삶은 급작스러울 정도로 짧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윽고 막이 걷히고 망자인 듯한 그녀를 앙상블들이 에워싸더니 춤사위와 노래를 시작하고, 관객석 어디선가 나타난 ‘체’라는 인물이 에비타의 삶에 대한 비판적인 내레이터를 자처하면서 짤막하게 요약됐던 그녀의 삶은 그야말로 떠들썩한 뮤지컬로 번져간다. 꺼졌던 삶의 불꽃이 튀기 시작한다.
아르헨티나 시골 마을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바가 야망을 품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나 영화배우로 발돋움하고, 대지진으로 일한 난민구제 모임기관에서 노동부 장관이자 군부 지도자였던 ‘후안 페론’을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와 함께 민중의 편에 서서 그를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부분까지는 말 그대로 신분 상승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후 우여곡절이 빚어진다. 퍼스트레이디로서 유럽 시장 개척을 위해 순방길에 오르는 그녀는 그럼에도 좋지 못한 반응-특히 영국에서-을 얻고, 귀국 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페론 재단을 세우지만 돈을 빼돌리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거센 비판을 받는다. 순방 막바지서부터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던 그녀는 자신이 직접 부통령이 되기로 결심하지만, 병이 깊어지면서 죽음을 직감하고 마지막으로 대국민 방송을 한 뒤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다.
에비타의 삶이 전하는 정신
누군가 타이밍도 재지 않고 후하고 불어 끈 촛불처럼 그녀의 퇴장은 급작스러우며 칼 같았다.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그녀(유리아 배우)가 부른 ‘새로운 세상’(‘A New Argentina’), ’돈 크라이 포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는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연단에서 부르짖는 그 목소리는 그 어떤 반대와 역경, 비아냥, 비난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뽐냈고, 뮤지컬이 막을 내린 뒤에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재생되고 있다. 그 목소리는 연단 위에서 부르짖어지기 전까지 그녀의 마음속에 형언할 수 없는 응어리들로 맴돌았을 것이고 이내 그녀 삶의 전부로 채워져 언어로 발화됐으리란 생각에 삶을 무언가에 헌신하는 이들의 ‘살아있음’까지도 느끼게 해주었다. 그 살아있음이야말로 무수한 사람들의 인생이 그 생이 끝난 뒤에도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불어넣는 ‘정신’이 아닐까.
주목할 만한 포인트 셋
이 뮤지컬은 당연 에바 페론을 독보적으로 주목해야 하지만, 그밖에도 다른 뮤지컬에선 본 적 없는, 독특해서 제각각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고찰해 볼만 한 요소가 셋 있다.

첫 번째, 체라는 인물. 아르헨티나 출신의 쿠바 혁명 지도자이자 1960년대 저항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후안 페론 정권에 반대했던 인물이지만 이 극에서는 후안 페론을 비롯해 그의 아내이자 이 극의 주인공인 에바 페론의 삶을 해설하는 해설자로 기능한다. 그는 갖가지 춤사위와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이 극을 전개한다. 그는 어느 장면이든 등장해 능청스럽게 인물들을 소개하고 사건을 개진한다. 만일 그가 아니었으면 이 극이 이렇게 신날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하는 독특한 인물이다.
두 번째, 압도적으로 많은 앙상블과 미니멀한 무대다. 정치적인 인물의 삶을 담고 있는 만큼 민중을 표현할 수 있는 많은 앙상블이 필요했으리란 생각이다. 무채색의 미니멀한 무대 디자인은 다채로운 옷을 입은 인물들을 부각시킨다. 많은 앙상블과 미니멀한 무대라는 상반된 요소가 극을 끌고 가는 모습은 무언가의 재현은 그 시대 그 모습을 ‘그대로’ 옮기는 것보다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세 번째, 성스루(Sung-Through) 방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과 노래가 함께한다. 노래 없이 깔리는 대사가 없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노래는, 그리고 노래에 깔린 남미 특유의 악기 소리는 극을 흥겹게 만든다. 생에 불어넣은 리듬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한 인물의 삶과 더불어 남미의 정서까지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뮤지컬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