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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셔플 플레이리스트에서 오랜만에 스테레오포닉스의 Have a nice day가 흘러나왔다. 기본적으로는 여름에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이 시즌에 굳이 듣는다면 입김 나오는 난롯가에 둘러앉아 시린 손으로 통기타를 치는 모습도 곧잘 떠올리게 하는, 명곡이 다 그렇듯 어디 갖다 붙여도 좋은 노래다. 가사의 절반가량이 Have a nice day(와 랄랄라)를 반복하는데 지하철을 기다리며 이걸 듣고 있자니 불현듯 본 조비의 노래 중에도 동명의 곡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둘 다 좋아하는 노래임에도 두 곡의 제목이 같다고 인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곡은 상당히 다른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스테레오포닉스의 노래는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택시 기사와의 대화를 담았다. 택시 기사는 화자에게 너희들도 관광하러 왔느냐 묻고 여기도 특별할 것이 없다며 이 도시와 사람들을 향한 지루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형식적인 인사말로 ‘Have a nice day’라고 말하는데, 그게 노래가 된 것.


그 상황에 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의 묘사가 가사에 들어가지도 않지만, 그 말을 하는 택시 기사의 표정이 밝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루퉁하여 작은 일에도 쉽사리 짜증 내지만, 동시에 큰 일이 일어나도 쉽사리 성내지는 않는, 권태로운 표정. 이렇게만 들으면 냉소적인 곡을 상상하기 쉽겠으나 내가 느끼는 바는 그 반대다. 가볍고 여유로운 멜로디와 합쳐진 이 가사는 그 권태에서 오히려 매력을 찾게 한다. 마치 ‘여행 떠나봤자 별거 없으니까 지루한 일상이라도 대충 잘살아 보세’라는 듯. 내 머릿속에서는 오아시스의 Half the world away와 비슷한 분위기라고 분류되는 곡.


반면 본 조비의 노래는 좀 더 강렬하고 의지력이 돋보인다. 벼랑 끝에 서더라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바람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한다. 이토록 나는 나답게 살겠다 외치는 노래에서 Have a nice day는 이러쿵저러쿵 훈수 두는 사람들에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오지랖 부리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쇼’라는 의미다. 이 말을 하는 화자는 웃고 있긴 하겠지만 그건 영업용 미소 같은 것. 카페 알바생이 나가는 손님에게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기계적으로 말하지만 대단히 감사하거나 대단히 안녕히 가길 바라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


2024년의 나는 이 Have a nice day를 그해의 첫 곡으로 골랐다. 23년도 연말에 본 조비를 많이 듣고 있기도 했고 Have a nice day라는 제목의 산뜻함과 산뜻한 문장 뒤에 숨은 냉소, 그리고 앨범 커버의 단순명료함(백만 년 정도 지난 듯한 유행어를 써보자면 ‘썩소’가 그려진 커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 저는 제가 알아서 한 번 살아볼게요…


2024년의 첫 곡은 이렇게 잘 떠오르는데, 정작 올해인 2025년의 첫 곡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2024년에서 25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워낙 정신이 없어 아무런 회고나 신년 계획 없이 새해를 맞닥뜨렸던 탓도 있고, 애초에 새해 첫 곡 선정을 매번 공들여서 하는 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다. 대충 그즈음 많이 듣던 앨범에서 우연히 한 곡이 당첨될 때도 많으니까.


인스타그램을 뒤져보니 2025년에는 셰드세븐의 Where have you been tonight을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한다. 새해 첫 곡이라 하면 보통 힘차고 희망찬 곡, 적어도 평화로운 곡을 고를 법한데, 저 노래는 우울한 편이다. 사실 이해가 잘 가는 가사는 아니지만 어쨌든 나 힘들었고 지금도 힘든데 넌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며 징징대는 곡이라고 생각하며 듣는다. 더스미스스럽달까.


내친김에 이보다 더 예전에는 어떤 곡으로 새해를 맞이했나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살펴봤다. 음악 듣기에 취미를 붙인 19년도에 처음으로 기록을 했는데, 이때는 퀸의 Show must go on.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온 뒤라 나도 오랜만에 퀸의 노래를 많이 듣던 시기였다. 2020년의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추측이 가능했다. 그해 그린데이의 내한 콘서트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청소년 관람 불가 콘서트였다. 19년도의 나는 19살이어서 티켓팅에 참여하지 못했다가 2020년 1월 1일 00시 00분이 되자마자 표를 샀다. 아마 나는 기뻐하며 그린데이의 곡을 틀었을 텐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린데이의 곡은 10월에 듣기 위해 남겨놓았을 거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곡 Boulevard of Broken dreams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21년도와 22년도에는 연속 두 번 노엘 갤러거의 곡인데, 그가 마침 그 무렵 발표한 싱글이 있어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헤드폰을 끼고 들었다. 블로그를 가장 열심히 할 때라 이 곡들로 1월 1일부터 가사 번역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23년도의 나는 킨의 Love Too Much를 들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한 곡 중 가장 즐겁고 발랄한 곡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 사랑하고 너무 성급히 좇고 너무 높이 날고 너무 멀리 가며 순간의 나는 네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일 년간 휴학하고 푹 쉬며 인류애가 넘쳤나 보다. 이 벅찬 곡 다음이 바로 본 조비의 Have a nice day가 된 것은 조금 안타까운 일이다. 마치 한 해 동안 사랑이 바닥나서 투지를 다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다음 곡이 Where have you been tonight인 것만큼 안타깝지는 않다. 또 다른 한해동안 지난 투지마저도 바닥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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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26년의 첫 곡으로 어떤 곡을 들어야 덜 안타까울지, 갑자기 고민하게 되었다. 아니면 더 안타까운 것도 좋다. 인간은 행복 배틀만큼이나 불행 배틀도 좋아하니까. 어쨌든 그때그때 첫 곡을 정하던 이전과는 달리, 내년의 첫 곡은 좀 공을 들여서, 이유를 갖고 선정하고 싶다는 뜻이다. 새해 곡을 공들여 고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곡이 이뤄지는 한 해가 이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미신적 힘이 있다기보다는, 연초의 마음가짐이 끝까지 이어지길 기원하는 것이리라.


81초 정도 고심한 끝에 더스트럿츠의 Only just a call away를 듣기로 했다. 아직 한 달 정도 남은지라 그 시간 안에 결정을 바꿀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생각은 그렇다. 사실 ‘새해 첫 곡’의 정석을 원한다면 같은 앨범에 있는 Could have been me를 듣는 게 맞다(이 노래도 참 좋은 곡이니 만약 후회 없는 한 해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이 곡을 첫 곡으로 고려해 보시길). 하지만 Only just a call away는 올해 첫 곡이었던 Where have you been tonight의 답가가 되어줄 곡이다. 나에게 Where have you been tonight은 자기 잘못은 생각 안 하고 투정 부리는 곡인데(흉보는 게 아니고, 정확히 이 점 때문에 좋아한다), Only just a call away는 이 마지막 한 대만 더 빨고 나면 난 집을 나갈 거지만 그래도 이 타고 남은 재는 아침까지 품을 거고 우리는 헤어지지만 네가 날 찾기만 하면 난 다시 한걸음에 달려오겠다는 곡이다. 지금 당장 곁에 있다거나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닌, 어찌 보면 이별 통보에 가까운 말임에도 묘하게 힘이 되고 로맨틱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내가 죽을 때 이 사람이 나랑 순장될 건 아니고 그걸 내가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내 장례식은 이 사람을 믿고 맡길 수 있겠구나 싶은. 이게 맞는 비유인가.


핵심만 말하자면 인생 혼자 사는 거긴 한데 그렇다고 정말 혼자는 아니라는 것. 이 무슨 1975의 노래 제목 I always wanna die (sometimes) 같은 말인가 싶겠지만 원래 노래 제목과 가사는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다가 듣다 보면 이해된다. 예술의 힘이라기보다도 그냥 반복 학습의 힘, 세뇌의 힘이라고 보는 편이지만 어쨌든 그렇다.


11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는 걸 보며 무슨 벌써부터 크리스마스 타령인가 싶었는데 반짝이는 그걸 2주째 매일 보고 있으니 그냥 이미 2026년의 1월 중순쯤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동일한 현상이다. 이렇게 새해 첫 곡을 아직 듣지도 못한 채 기분으로만 새해를 맞이했는데 몸은 여전히 게으른 걸 보니 새해 첫 곡을 열심히 고르건 말건 나는 2026년에도 게으름을 피울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날의 나에게도, 오늘의 나에게도, have a nice day라고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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