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로 '끝'을 의미하는 단어 'fin'.
『fin』은 연예계라는 화려한 무대 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순과 선택을 좇는다. 연예계를 다루지만 그 세계만의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계층, 욕망, 불안, 인정 욕구, 실패에 대한 공포까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감정의 단면들이 고르게 펼쳐진다. 각자의 속도로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서 달리면서도 어느 순간엔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자취를 감춘다. 위수정 작가는 그 무대를 서늘하게 보여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 복귀한 배우 '기옥'과 함께 작품을 하는 배우 '태인'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붙잡고 살아가는 매니저 '윤주'와 '상호'가 있다. 이들은 끈끈하고 두터운 스타와 매니저의 호흡보단 서로에게 말 못 할 감정을 품고 위태롭게 서 있는 두 인간에 가깝다.
기옥과 태인이 가진 부와 명예는 빛나지만 동시에 언제 꺼질지 모르는 조명처럼 불안정하고, 윤주와 상호는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 늘 누군가의 뒤편에서 서 있는 위치, 마음속에 고여가는 서운함과 동경이 차오른다.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어떤 무대에 서 있고, 누구의 그림자 속을 걷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중성 앞에서 갈가리 흔들리는 네 인물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결국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제작기 다른 이유로 무대 위에 서 있지만, 그들 모두는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연극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정도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저 사람이 너무 나쁜 거 아냐?'라고 생각하다가도, '나는 정말 저런 얼굴을 한 적 없나'라는 자책이 스며든다. 누구 하나를 쉬벡 단정할 수 없도록 만드는 복잡함. 그것이야말로 현실의 인간을 닮은 진짜 얼굴이다.
["문제는 내게 주어진 여러 역할과 또 다른 '나' 사이의 괴리감이 느껴지는 그 시간들이다. 가끔은 그 역할들을 내려놓는 순간에조차 그것을 내려놓는 역할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공허해질 때도 있다."] (P. 169)
소설 후반부, 네 사람의 감정과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사건'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건을 도구 삼아 속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기보다, 독자에게 오히려 더 큰 공백을 건넨다. "결국 진실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명확해지지 않는다.
하나의 장면은 끝났지만, 이들의 삶은 또 다른 무대로 밀려가고, 가면은 벗겨지기는커녕 더 단단하게 굳어가는 느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무대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진짜 얼굴로 설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씁쓸함이 뒤는게 밀려왔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생각이 자꾸 난다. 그들은 다음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연기할까? 『fin』이라는 단어는 끝이 아니라 묘하게 열린 문처럼, 독자를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려보낸다.
조명은 꺼졌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연극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