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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소설 내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는 동안 무수히도 많은 금이 생겼습니다.
마음의 잔금이 햇살에 찔린 물결만큼 많지만
상처입었다는 이유로 망가지진 않으려 합니다.
나를 강하게 하는 것도 약하게 하는 것도
당신이 아닌 내 자신임을 알기에
그럼에도 나를 미워하는 당신에겐
차라리 꽃을 바치겠습니다.
김영지, <레지나레나 - 용서받지 못한 그대에게> 41화 中
illust by 아현(雅玄)
사랑하는 시인이 있었다.
주인공은 시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의 삶의 파편을 사랑했다. 주인공의 성정은 시를 대지 삼아 자랐다. 언어로 치환된 마음 몇 줄은 죽음에서도 주인공을 살아가게 했다. 배반한 당신을 용서케 했다. 기어이 마음을 지켜내게 하였던 그것은 사실 비극적인 상실을 겪었던 누군가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짓밟힌 어린 아이가, 실은 나를 지옥으로 보낸 당신이었다면.
자라지 못한 채 기약없이 과거에 머물러있던 삶을 과연 연민할 수 있을까. 끝내 미약한 용서마저 내어줄 수 있는지, 이야기는 물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주인공처럼 단단하지 않았다. 금이 가면 부서지는 사람이었다. 결국 사람이란 그렇듯이. 인간은 약하고도 강하다.
그러므로 한없이 인간적인 소설에서 발견한 시가 너무도 찬란하고 다정해서, 도저히 지나치지 못하고 메모장 한 켠에 적어두었더랬다. 시인의 언어를 동경했던 주인공의 마음처럼. 담담하되 올곧은 용서를 되새길 날을 기약하며.
자그맣고 사소하더라도 어쩌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