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수능 주간이 다가왔다. 매년 이맘때면 평소에 비해 유난히 시려지는 공기를 두고 사람들은 학부모들이 수험생 자녀를 위해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를 드려 온갖 영혼들을 불러 모아 생긴 ‘수능 한파’라고 한다. 그 남다른 기운과 뼛속까지 서늘한 추위는 이 단어에 진실성을 부여하는 것만 같다. 마지막 수능을 본 지 어언 육칠 년이 다 되어가지만 11월의 어느 추운 목요일이면 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 생생히 떠오른다. 미성년자의 막바지, 성인이 되기 불과 몇 달 전이지만 수능이란 큰 관문을 앞두어 설렘과 불안, 기대감과 걱정이 마구 뒤섞인 혼란스럽고 오묘했던 감정들.
그때는 반의 모든 친구들이, 학교의 모든 3학년 학생들이, 전국의 모든 나의 또래들이 하나의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은근한 연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수험생과 예비 사회인 그 사이의 신분 속에서 매일 비슷한 공부를 하고, 같은 문제집과 모의고사를 풀며 함께 너무도 닮아있는 일상을 보냈다. 친구들은 언제나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고, 오늘 헤어져도 내일 눈 뜨면 다시 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멀어도 고작 버스로 30분이면 서로의 집을 오갈 수 있는 것, 별 노력 하지 않아도 매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소속감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시기의 우정은 성인의 것과는 사뭇 다른 형질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아직도 고등학생 때의 우정을 생각하면 서브우퍼가 재생된 듯 마음 깊은 곳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린다. 이런 십 대의 감정은 <해피엔드>의 유타와 코우가 졸업을 앞두고 누구나 공감할 방식으로 뼈저리게 겪어내는 우정과도 맞닿아있다.

근미래의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유타와 코우는 제각기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음악이란 관심사로 뭉친 친구들과 함께한다. 밤이면 몰래 좋은 EDM 음악이 나오는 클럽에 다 함께 잠입하고, 그것도 모자라 동아리 방에서 직접 음악을 틀고 아침까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취미를 즐기고 철없는 장난을 같이 치며 늘 꽁꽁 묶여있는 이들은 서로를 동일시할 정도로 끈끈한 사이다.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학교에서 또 방과 후에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긴 3학년들은 아마도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을 것이다.

언제나 이 상태로 함께일 것만 같았던 유타와 코우 앞에 두 번의 갈림길이 놓인다. 학생들의 장난에 대응하기 위해 안전이란 명목하에 모두를 감시하는 AI 감시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CCTV를 학교에 설치한 교장, 총리의 퇴진 및 차별 금지 시위에 대항해 거세지는 공권력이 그 첫 번째다. 이같이 부당한 상황들에 소수자로 상징되는 재일한국인 코우는 반발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반면 유타는 그렇지 않고 음악에만 열중하며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치적 각성을 통해 성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코우는 유타를 점점 이해하지 못한다.

두 번째는 다름 아닌 졸업이다. 둘을 묶어두던 학교라는 끈이 풀리는 순간이다. 이때부터 유타와 코우는 성인으로서, 사회인이 되기 위해 슬프지만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야만 한다. 이전까진 무얼 해도 같은 학교 학생이자 친구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졸업 후엔 본인의 개성을 따라 직접 방향을 정해 나아가야 한다. 공통분모가 사라진 채로 마주하는 친구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 낯설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둘은 갈라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 두 번째 갈림길에서 유타와 코우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서로의 반대 방향을 택하며 육교에서 담담하지만 영원히 서글픈 이별을 맞는다. 궁극의 해피엔드를 위한 새드엔드는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싶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을 떨치기란 쉽지 않다.
심리적 헤어짐에 후행하는 물리적 단절, 이 두 번의 균열 방식이 아프면서도 흥미로워 네오 소라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대학생은 무척 자유로워서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지만, 고등학생은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읽었다.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시스템 안에 존재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갖더라도 유년 시절의 추억과 우정을 통해 여전히 친구 관계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간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함께 울고 웃고, 화내고 기뻐했던 유타와 코우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이어준 교복과 그것을 입은 채 평일 내내 어쩌면 주말에도 평생의 추억으로 좋든 싫든 함께했던 친구들이 더욱 애틋해진다.

졸업식에서 우는 아이도 마냥 졸업이 싫어서 우는 것만은 아니란 말이 있다. 헤어짐은 언제나 슬픈 것이라고. 더구나 인생의 전환기를, 가장 치열하게 자아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시기를 함께했던 사람과 더 나은 엔드를 위해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것은 항상 슬픈 일이다. 지금까지 동고동락한 삶을 등지고 영원할지도 모르는 이별을 다짐하는 일은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해도 영영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수능이 끝나면 머지않아 모두에게 유타와 코우의 졸업과 같은 헤어짐의 순간이 올 것이다. 쭉 같이 지낼 것만 같던 날들도, 아무리 싸우고 미워해도 헤어질 일 없었던 관계도 이별이란 또 다른 방식의 우정으로 실현되는 순간 말이다.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인 줄 알았지만 서로 너무나도 다른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도 안타깝지만 온다. 연대감과 소속감이 사라지는 날들, 이제 예전에 매일 같이 먹던 간식 맛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일들도 생긴다. 하지만 우리가 동시에 겪었던 그 불가분한 우정, 같은 배를 탔다는 공동체의 감각, 십 대의 모든 크고 작은 추억은 유타와 코우가 육교에서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채 헤어지며 심장을 간지럽히는 상태로 멈춘 몇십초의 장면처럼 영원히 마음속에 새겨져 있을 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