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창작자가 여전히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심을 두고 이를 재창작하는 까닭은 신화에 지금도 적용할 수 있는 수많은 인간의 원형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 속 인물들은 지금의 사람들과도 많은 부분이 닮아 있으며, 현대 인간의 여러 모습을 신화에 대응시켜 충분히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창작자들이, 비교적 덜 친숙한 국내에서도 고대 그리스 비극을 지금의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러나 신화는 수천 년 전 과거의 이야기인 만큼, 그 시대의 사람들과 현대의 사람들이 신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현대는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이며, 이야기에 수천 년 과거처럼 신앙심과 경외심은 없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신화를 현대 무대에 올릴 때는 창작자의 꾸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대의 관객을 잇기 위해 창작자가 충분한 고민을 할 때에야 깊은 감동과 메시지를 남기는 작품이 탄생할 것이다.
이번 국립극단에서 26년까지 상연할 예정인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독일의 극작가 롤란트 쉼벨페니히의 작품으로, 현대에 새롭게 쓰인 고대 그리스 비극이다. 이번 10월에 상연한 <안트로폴리스 :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5부작의 맨 처음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테베의 건설에 관한 1막과 디오니소스에 관한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복잡한 신화의 이야기는 생각보다는 감각으로 관객에게 먼저 다가온다. 16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코러스는 수많은 노래와 안무를 소화해 내고, 무대 벽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크린에서는 라이브캠으로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을 송출한다. 더해 지난 12.3. 내란 사태의 패러디나, 등장인물끼리 랩 배틀을 하는 등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은 관객의 감각을 자극함과 동시에, 비교적 그리스 신화에 생소한 한국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다.

우선 5부작의 프롤로그, 공연의 1막은 공연이 올라가기 전으로 보이는 분장실이 배경이다.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려는 듯, 스크린에는 실제 시각이 표시되고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분장을 받고 있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분장 스태프들과 드라이기의 소음 속에서 연극은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시작된다.
연극은 계속해서 관객과 무대 사이의 제4의 벽을 깨려 시도한다. 배우들이 무대에서 발을 헛디뎌 객석으로 떨어질 뻔도 하고, 종종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원래는 무대 위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스태프들도 자연스럽게 무대 위를 돌아다닌다.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에서 테베의 건설에 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배우가 다른 배우에게 귓속말로 단어들을 전달하고, 이 단어들은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 속에는 제우스가 납치한 에우로페, 그리고 디오니소스의 어머니가 되는 세멜레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세상의 이치, 그리고 희망찬 시작의 단어로 묘사되는 테베는 다른 이들의 의심에 흔들린 세멜레가 죽고, 복잡한 복수와 원한이 얽히기 시작하며 점점 부정적인 단어로 묘사된다. 눈물을 흘리는 배우와 같이 이야기에 몰입할 즈음, 다시 한번 스태프가 등장하여 배우를 끌고 나가며 관객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프롤로그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로 2막에서 바카이로 등장할 8명의 여성 배우, 그리고 아가우에를 연기하는 여성 배우이다. 여성 배우들이 대부분의 서사를 이끌어가며, 남성 배우들은 그 서사의 재현을 돕는 위치에 선다. 특히 신화는 어디까지나 남성 중심에서 쓰인 옛날이야기이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굳이 이 모든 이야기를 믿을 필요는 없다는 아가우에 역 배우의 독백은 극이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재창작된 면이 있음을 짚는다.
프롤로그는 보통 작품에서 본편의 이야기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쓰인다. 관객으로서 프롤로그에서는 고대 신화를 여성주의적 시선에서 다시 볼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느꼈고, 그러한 맥락에서 2막을 감상하였다. 이와 연결되듯 2막의 남성 배우들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디오니소스는 짧은 속옷 한 장만 걸친 채 어딘가 어설픈 모습으로 등장하며, 카드모스와 테이레시아스는 여장하며, 펜테우스는 과장된 중세풍의 복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2막에 들어서는 점점 연극의 메시지가 뒤바뀐다는 감각을 받았다.
2막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인 세멜레를 비웃었던 자들에 대한 디오니소스의 복수가 시작된다. 하지만 모습만 우스꽝스러운 것이 아니라, 행동 역시도 어설퍼 보이는 모습이다. 신으로서 자신의 원대한 목표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도 계속 무대 구조물에 부딪히고, 제지하는 스태프에게 쩔쩔매는 등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다. 그 외의 남성 배우들 역시 앞서 언급한 내용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만, 프롤로그와 달리 이번에는 남성 배우들이 서사의 주축이 되며, 앞서 서사를 이끌어갔던 여성 배우들은 바카이와 아가우에로서 중간중간 이야기의 전환과 닥쳐올 비극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 후 2막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기존 신화에서 어머니 아가우에가 아들 펜테우스를 죽인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간중간 관객의 몰입과 이해, 그리고 특정 인물을 명확하게 비판하기 위한 연출이 들어갔을 뿐 관객은 신화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그렇다면 이 공연이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그리고 감각은 무엇이었을까. 광기에 사로잡혀 아들을 죽인 아가우에의 비극은 신을 따르지 않은 이들의 비극이라고 보기에는 현대 관객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며, 신화의 비극성을 느끼기에도 아쉬웠다. 특히 앞의 1막과 2막의 애매한 연결은 과다한 정보를 전달하며 관객의 피로만 높일 뿐,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결국 어떠한 메시지나 감동을 얻지 못한 채, 순간순간의 연출과 감동만을 기억하며 극장에서 나왔다.
또한 후반부 아가우에에게 다량의 피를 쏟고, 펜테우스의 시신 모형을 무대에 등장시키는 연출은 비극성을 심화하기 위함으로 보였지만, 관객에게 필요 이상의 충격과 불안이라는 감각을 불러올 뿐, 이 감각이 서사와는 충분히 연결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무대 바닥에 흥건할 정도로 피를 쏟고 시신 모형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강한 수위의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우선 그러한 장면이 꼭 들어가야만 하며 트리거를 감수해야만 하는 이유를 관객에게도 이해시켜야 하지 않을까.
고전을 재해석하는 일은 결국 이를 활용해서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의지와 연결된다. 재밌는 시도로 가득 찬 연극이었지만, 결국 그 여러 감각과 정보의 소용돌이 안에서 관객이 그 메시지를 전달받기란 쉽지 않았다. 참신한 연출적인 시도들은 기억에 남지만, 극 전체적으로는 관객에게 온전히 가닿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