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실험적이고 흥미로운 공연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항상 가보고 싶은 축제였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동시대 공연예술의 새로운 동향을 소개하고, 시대적 관점과 가치를 예술로 보여주는 국내 최대 국제공연예술제이다. 예술가의 상상력과 창의력에 주목하고, 새로운 도전과 질문을 던지는 한국과 해외의 우수한 작품을 지원하고 소개한다. 이를 통해 더 넓은 세계에서의 공연 예술을 향유하게 해주는 보물같은 기회이다. 나는 가장 흥미로운 내용과 공연 형태를 가진듯한 <하리보 김치>를 예매했다. 이 작품은 작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초연해 주목받았다. 현재는 한국은 물론이고 대만,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들을 순회하고 있는 인기있는 공연이다.

 

 

 

 

익숙한 음식과 낯선 시선의 교차, 정체성이 끓고 기억이 지글거리는 감각의 무대


미역 냉국의 새콤 달콤한 풍미, 날카로운 칼 끝에서 오이가 썰리는 소리, 뜨거운 기름에 튀겨지는 버섯. 하리보 김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밤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리보 김치의 주요 캐릭터인 달팽이, 젤리곰 그리고 장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온 이들에게 음식이 어떤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미각의 여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사적이고 기묘한 일화들을 통해, 김치 문화의 진화, 인종차별의 씁쓸한 고통, 이방인으로서의 고군분투,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집’의 의미와 그 맛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아시아의 제국주의를 다층적으로 조명한 ‘하마티아 3부작’(2021)의 성공 이후, 연출가이자 작곡가인 구자하가 신작과 함께 다시 한국 관객을 찾는다. 작가의 고유한 음악과 영상 그리고 로봇 퍼포머가 등장하는 하이브리드 퍼포먼스는 문화적 동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역설에 대해 성찰한다. 오감을 자극하는 무대와 함께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일련의 달콤 쌉싸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하리보김치 1.png

 

 

 

하리보와 김치, 혼합된 정체성


 

공연 제목인 <하리보 김치>는 연관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두 단어의 조합이 궁금증을 일으킨다. 이 공연은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시는 구자하 작가님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이 제목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유럽에 거주하는 이로서의 정체성의 혼합된 것을 나타낸다.

 

'김치'는 작가가 태어나면서부터 내재된 한국인의 문화적 배경을 뜻하며, 뿌리와 고국, 정체성의 본질을 상징한다. 반대로 '하리보'는 작가가 독일에 와서 접하게 된 후천적인 취향이자, 유럽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유럽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어느 한 곳에 완벽히 소속되기보다, 두 문화의 중간 지점에 있는 정체성이 표현되었다.

 

낯선 곳에서 본인의 정체성으로 살기가 어려웠던, 타지에 오랫동안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공연에서 공감할 부분이 많다. 나 또한 반년동안 유럽에서 살면서,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과 정체성의 혼란, 고향의 그리움과 같은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하리보김치 3.png

 

 

 

포장마차에서 진행되는 특이한 연극


 

이 작품의 시작은 스크린에서 한국의 시내를 비춰주고, 탐방하다가, 관객을 결국에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면 있는 작은 포장마차로 이끈다. 그리고 무대 위에는 포장마차가 등장한다. 한국의 식문화와 정서가 담긴 익숙한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함으로써, 한국인에게는 익숙함과 정겨움을 주고, 외국인에게는 새로움과 궁금증을 선사했다.

 

이 공연은 소수의 관객이 공연에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관객 참여형 연극이다. 작가가 무대에 직접 올라서 관객 2명을 객석에서 섭외하고, 이야기를 하며, 요리를 선보인다. 김치전, 미역냉국, 튀김, 소맥 등을 만들고 관객에게 대접한다. 공연 후반부에는 작가가 직접 손을 든 사람들에게 소맥을 전달해주는 퍼포먼스도 있다. 공연이 완전히 끝난 후에는, 무대에 초대되지 않은 관객도 모두 포장마차에 들러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렇듯 요리하는 장면을 통해 음식 냄새, 소리 등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여 몰입도를 높인다.

 

또한, 로봇과 작가님이 만든 AI 영상과 음악의 조화로서 더욱 특이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유럽에서는 '하이브리드 연극'이라고도 불린다고 하던데,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형식을 띄는 공연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쓰라린 이방인의 경험을 유쾌하게 버무리는 방식


 

이렇듯 한국과 유럽의 중심에 있는 이가 그려내는 공연이, 외국인에게 더 잘 와닿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인이 유럽에 살며 겪는 에피소드들이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흥미로우면서도 가깝게 다가올 듯 헀다. 코미디적인 요소도 곳곳에 들어가고, 역사적으로 교육적인 요소도 곳곳에 심어져있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뗄 수 없는 것이자, 어떤 한 민족의 정체성을 결정짓는다. 개인적으로는 음식에 담긴 정체성이 잘 드러난 것이, 작가가 겪었던 김치 에피소드였던 것 같다. 나 또한 정말 공감했던 에피소드이다. 보통 외국에 오래 산다고 하면, 꼭 부모님들이 챙겨주는 김치, 한국인은 김치 없이 못 산다는 말처럼 김치는 한국인의 본질적인 뿌리다.

 

그러나 나 또한 해외에서 살면서 김치를 한국에서만큼 당당하게 먹을 수는 없었다. 외국인이 느끼기에 쿰쿰하고 코를 찌르는 어색한 향이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치는 고향의 그리움을 주지만, 동시에 타국에서 '이방인'임을 각인시키는 무게로 작용한다. 새로운 공간에서 나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부정 당하거나, 눈치를 봐야하는 그 미묘한 기분을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하여 공감되었다.

 

 

하리보김치 5.jpg

 

 

 

마지막으로


 

이는 결국 한국과 유럽, 그 경계에 선 이방인과 디아스포라로서 겪는 갈등과 여러 감정들을 고민해보게 만드는 듯 하다. 그러한 이야기의 매체가 '음식'이라는 일상적인 소재여서 더욱 더 깊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해외에서 살던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본인이 있는 곳에서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모두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공연이다. 특히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요리를 나누고 술잔을 맞대는 행위는, 사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공감으로 확장하는 시도처럼 느껴졌다.

 

한 편으로 나는, '결국 진정하고 흥미로운 공연은 본인의 다채로운 경험에서 비롯되는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 또한 내가 겪은 이방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연을 제작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이다. 구자하 연출가님의 앞으로의 작품과 행보가 더욱 궁금해지게 된, 소중한 공연의 후기를 마친다.

 

 

 

한우림_명함.jpg

 

 

한우림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울림의 미학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