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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지상에 남기는 마지막 사랑의 메시지 [도서/문학]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이게 다예요』를 중심으로

by 양아현 에디터
2025.10.17 12:00

 

 

매혹적이고도 독특한 문체로 인간의 심연을 탐구한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20세기 프랑스 문단의 거장이라 불리는 뒤라스는 소설과 시나리오를 넘나들며 사랑의 불가능성, 여성의 욕망을 가감 없이 표현해낸 작가다. 『여름 밤 열 시 반』에서는 폭풍이 내리치는 여름밤을 배경으로 살인 사건과 엮인 기묘한 감정을, 『파란 눈 검은 머리』에서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은 채 동일한 인물에게 연모를 느끼는 두 남녀의 동질감을, 가장 유명한 저작이자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연인』에서는 광기에 휩싸인 사랑을 그러내며 자기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해낸다.

 

뒤라스에게 글쓰기란 “한순간 우리를 사로잡는 그 감정들에 대해 말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심오하거나 강렬한 감정들을 육신에 심으며 나아가는 방법이 바로 뒤라스가 말하는 글쓰기인 것이다. 한편으로 감정에 몰두하는 글쓰기이기에 모순이 존재하기도 한다. 뒤라스는 이 글쓰기와 모순을 두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한다. “쓰기는 말하지 않기다. 침묵하기다. 소리 없이 외치기다. (…) 절망을 버티며 쓰기. 절망을 품고 쓰기. (…) 이전에 쓰인 것을 옆에 두고 쓰는 것은 이전의 것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무한대로 팽창하다가도 수축하기를 반복하는 감정과 그 감정의 동반자인 인간.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이 문제는 마치 미지의 존재와도 같다. 이 미지의 존재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뒤라스는 불가능을 향해 거침없이 출발점 앞에 서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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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뒤라스가 남긴 마지막 저작인 『이게 다예요』에는 죽음을 앞두고 마음껏 휘몰아치는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슬픔과 절망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기도, 긴 시간 동안 자신이 써온 작품에 대해 사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줄기는 바로 사랑이다. 15년간 함께한 연인 얀을 향한 진심 어린 고백과 괴로움으로 점철된 삶에게 끝까지 사랑을 눌러 담아 보내는 작별 인사를 통해 우리는 뒤라스가 글쓰기를 통해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애틋한 감정을 몸소 느끼게 된다.

 

뒤라스는 서두에서 “내 밤의 연인 얀에게. 내 우러러 사모하는 이 연인의 정인(情人) 마르그리트가 1994년 11월 20일 파리 생브누아 거리에서 적다”고 말하며 이 글이 얀을 향하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11월 22일, 오후, 생브누아 거리>에서는 뒤라스와 얀이 나누었던 대화가 담겨있다. 짧은 대화지만 그 안에는 사랑과 죽음의 핵심을 관통하고자 하는, 뒤라스의 과거와 현재가 스며들어 있다.


 

Y. A. 당신은 죽음이 두려운가요?

M. D. 모르겠어. 대답할 수가 없어. 바다에 다다른 뒤로는 아무것도 모르겠어.

Y. A. 그럼 나와 함께는요?

M. D. 예전에도 지금도 너와 나 사이에 있는 건 사랑이지. 죽음(la mort)과 사랑(l’amour). 그게 네가, 바로 네가, 되고 싶어 하는 걸 거야. 

(…)

Y. A. 당신은 무엇에 몰두하죠?

M. D. 글 쓰는 일에. 비극적인. 다시 말해 삶의 흐름에 관련된 일이지. 나는 노력하지 않아도 그 속에 있어. - 9~10쪽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뒤라스에게 얀은 어떤 존재이길래 작품에서 이토록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철학을 공부하던 얀은 뒤라스의 소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접하고 강렬하게 매혹되는 경험을 한 뒤, 5년 간 그녀와 서신을 주고받게 된다. 뒤라스는 그에게 얀 앙드레아라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고, 얀은 그녀를 숭배함과 동시에 헌신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얀은 뒤라스가 구술하는 말을 전부 타자기로 옮기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얀은 단순한 애인이 아닌 쓰기의 동반자이자 뒤라스의 작품 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얀에게.

그냥.

하늘은 텅 비어 있다.

내가 이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여러 해째다.

내가 아직 이름 짓지 않은 어떤 남자.

나를 떠날 어떤 남자.

그 나머지는, 내 앞뒤의 일이든, 내 전후의 일이든, 나와 무관하다.

나는 널 사랑해. - 21쪽

 

 

한편으로 이 작품에서는 사랑만큼 죽음과 관련된 뒤라스의 생각이 상세하게 적혀 있기도 하다. 1989년부터 건강이 악화된 뒤라스는 지독한 질병과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 죽음이 다가오리란 공포 앞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문단과 영화계에서 찬사를 받던 예술가에게도 죽음은 감정을, 마음을 변덕스럽게 만든다. 어떤 날은 쓰기를 할 수 없고, 생을 향한 의지와 소중한 사랑마저 허황된 가치처럼 취급해 보기도 한다.

 

 

죽는다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삶의 어떤 순간에, 사물들은 끝난다. - 41쪽


난 널 지독히 사랑해.

난 더는 쓸 수가 없어,

우리 사이의 너무도 큰 사랑, 공포에 이를 만큼. - 45쪽


어떻게 해야 하나, 좀 더 살기 위해서, 또 좀 더 살기 위해서.

이게 다야.

그건 이제 내가 아니야. 더는 알지 못하는 그 누구일 뿐. - 69쪽

 

삶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아무도 그걸 모르지. 살려고 애써야 해.

죽음 속으로 뛰어들어선 안 돼.

이게 다야,

이게 내가 해야 할 모든 말이야. - 70쪽

 

 

변덕스러운 마음처럼 뒤라스는 펜을 들었다 놨다 하지만, 이 행동은 글쓰기를 “소리 없이 외치기”라고 했던 뒤라스의 표현과 맞닿게 된다. 짧은 문장을 쓰는 것, 글쓰기를 멈추는 것, 말하기나 침묵을 유지하는 것. 이 모든 일들은 고독과 광기 속에서 가능해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뒤라스에게는 전부 쓰기로 환원된다. “쓰기. 나는 못 한다. 그 누구도 하지 못 한다. 정말이다. 아무도 못 한다. 그런데 쓴다.”

 

 

나는 광기로 얼어 있어요.

Y. A. 뭔가를 덧붙이고 싶나요?

M. D. 난 덧붙일 줄 몰라. 난 다만 창조할 수 있을 뿐이지. 단지 그것뿐이야. - 78쪽

 

 

『이게 다예요』의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그녀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더는 글을 쓸 수도 연인과 함께 할 수도 없을 것이란 침울함과 슬픔이 날것 그대로 휘갈겨 있다.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과 삶에게 진심 어린 작별을 고하는 뒤라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럼에도 아주 오랜 시간동안 글과 사랑에 밀착해 있는 삶을 살았던 뒤라스가 생의 마침표 역시 사랑의 말로 남긴다는 점은 무척이나 그녀답다. 횡설수설한 정신으로 얇디 얇은 삶의 끈을 붙잡으면서도 그녀는 사랑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소설을 통해 "세상의 어떤 사랑도 사랑을 대신할 순 없"다고 뒤라스가 밝힌 것처럼 그녀는 절대적인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생의 전반을 그 불가능한 사랑의 중심으로 뛰어들고자 했다. 잡으려 할 수록 멀어지고, 낯설게 여길 때쯤 불쑥 찾아오는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야 할까.  『이게 다예요』에서 뒤라스가 지상에 남긴 사랑의 언어를 눈과 마음에 담는 것이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삶을 사랑해. 비록 여기 이런 식의 삶일지라도. - 63쪽

 

 

 

참고문헌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고종석 옮김, 문학동네, 2018

마르그리트 뒤라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 윤진 옮김, 민음사, 2018

마르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장소미 옮김, 녹색광선,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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