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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일본의 공포·스릴러 영화에는 특유의 축축하고 눅눅한 불쾌함이 깔려 있다. 단순한 공포심을 넘어,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그 기묘한 분위기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최근에 본 두 편의 일본 영화도 그랬다. 오늘은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정면으로 드러낸 두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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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영화 <오디션>은 “끼리끼리끼리끼리…”라는 기괴한 반복음이 머릿속에 남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아오야마는 아내를 일찍 여의고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중년의 남성이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아들이 아오야마에게 재혼을 권유하고, 아오야마는 영화 프로듀서인 친구 요시카와와 함께 주연 배우 캐스팅을 빙자한 ‘신붓감 찾기 오디션’을 꾸민다.


오디션의 목적이 불순했기에 요시카와의 질문도 적나라했다. 되려 적극적이어야 할 아오야마는 점잖은 척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고, 본인이 이력서에서 미리 눈여겨본 아사미가 등장하자 그제서야 질문들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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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오디션에 나오는 수많은 여성들이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장면이 나온다. 앞에 앉은 두 남성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 여성들이 택하는 방법은 다양했다. 영화는 그중에서도 자신의 신체를 성적으로 어필하는 여성들을 강렬하게 보여주었다.


목적 자체가 기만적이었기에, 공간과 분위기, 심사위원의 태도까지 어느 하나 불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꿈을 찾아 오디션에 지원했던 여성들을 철저히 농락한 오디션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생 아들을 둔 중년 남성이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단아한 신붓감을 찾겠답시고 이력서와 사진들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눈쌀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또, 책상 위에 놓인 죽은 아내의 사진을 죄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결국 뒤집어놓는 행동, 오디션에서 질문은 안하고 가만히 앉아 지원자들을 바라만 보는 모습은 아오야마가 원하는 페르소나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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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오야마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젊고 아름다운 아사미에게 집착 당하며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만다. 덫을 놓으려 했던 아오야마가 오히려 덫에 걸린 것이다.

 

특히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며 이어지는 고문 장면은 영화사에서도 손꼽힐 만큼 잔혹하면서도 인상적인 연출로 남았다.

 

 

 

<차가운 열대어>



소노 시온 감독의 영화 <차가운 열대어>는 ‘사이타마 애견가 연쇄 살인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작은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 샤모토는 아내와 딸이 있지만, 늘 위축되고 소심한 가장이다. 그와 반대로 거대한 열대어 상점을 운영하는 무라타는 호탕하고 대담하다. 무라타는 점차 샤모토의 가족들에게 스며들며 그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마침내 살인마로서의 본모습을 드러내 샤모토를 범행에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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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모토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무라타의 곁에서 벌벌 떨며 뒷처리를 도울 뿐이었으나, 반복되는 범죄 속에서 샤모토는 점차 무라타를 닮아간다. 각성한 샤모토는 힘으로 가족들을 제압하며 마치 폭군처럼 행동하기에 이른다.


샤모토는 아내와 함께 천문관에 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관찰하고 싶어하는 인간성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아내와 딸은 소심한 샤모토에게 만족하지 못했고, 무라타의 호탕한 외양에 매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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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서든 고지식하게 행동했던 샤모토에게 능글맞은 무라타의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소심한 남편에게 모든 것을 배려 받으며 지내왔던 아내 타에코는 자신을 강하게 휘어잡아줄 무라타 같은 강한 남편을 원하게 되었다. 작은 열대어 상점에 만족하지 못했던 딸 미츠코는 거대한 열대어 상점을 운영하며 더 큰 사업과 부를 가져다줄 무라타 같은 아버지를 원하게 되었다.


결국 무라타는 이 가족 안에 잠들어 있던 욕망을 형상화한 존재로 기능하며, 그들을 파멸로 몰고 간다.


*


이 두 작품은 모두 어떤 특별한 괴물이나 귀신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중년 남성 아오야마, 소심한 가장 샤모토. 이들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지만, 욕망을 향한 작은 균열이 생기자 걷잡을 수 없이 파멸해간다. 일본식 스릴러의 힘은 바로 이 일상적인 인물을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데 있다.


낯설고 충격적인 폭력 장면에도 우리가 깊은 불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인물들이 결코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충분히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불편함은 곧 자각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 두 영화가 보여주는 진짜 공포는 잔혹한 장면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불쾌함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의 가능성을 집요하게 흔들어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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