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칼에 베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에 가거나, 혹은 스스로 연고를 바른 후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야 할 것이다. 상처가 벌어지거나 다친 부위에 자극이 가해지면 낫는 데도 오래 걸리고 더 아프기 때문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작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법엔 누구나 명확한 답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칼에 마음을 찔리거나, 혹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갈기갈기 찢기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뮤지컬 <아몬드>엔 아픔을 정반대의 방법으로 다루는 두 소년이 등장한다. 한 소년은 자신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크고 아픈지 전혀 느끼지 못한다. 반면 슬픔을 준 이들에게 불같이 분노하는 다른 한 소년은 상처를 헤집고 찢으며 자신을 괴롭힌다.
손원평 작가가 2017년 출간한 소설 <아몬드> 주인공 ‘윤재’는 ‘알렉시티미아(Alexithymia)’라는 신경학적 장애, 즉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편도체가 작게 타고난 그는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나 공감의 정서를 쉽게 느끼지 못한다. 그에겐 기쁨, 슬픔, 사랑, 두려움마저도 활자로만 존재하는 추상적인 관념이라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감정 훈련을 해야 한다. 공식을 달달 외우듯 ‘희·노·애·락·애·오·욕’ 같은 감정의 뜻과 상황에 맞는 표정을 외워도, 남들 눈에 윤재는 표정 없는 괴물로 보일 뿐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했을 때도, 장례식장에서도 그는 울지 않았기 때문이다.
‘곤이’는 어릴 때 실종된 후, 이곳저곳을 떠돌다 소년원까지 가게 되며 세상에 대한 냉소를 안고 성장했다. 뒤늦게 만난 교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얼굴도 못 보고 떠나보낸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곤이를 더 엇나가게 한다. 겉으론 거친 욕설과 험악한 표정, 사나운 분위기로 무장했지만 사실 그의 속내는 더없이 여리고 외롭다. 전형적인 외강내유형인 곤이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빼앗은 윤재에게 날카로운 분노를 쏟아낸다.
소설 <아몬드>는 국내에서만 150만 부 이상 판매됐고, 전 세계 30개국에 번역 출간된 베스트셀러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인 윤재와 방황하는 소년 곤이가 상처를 제대로 마주하는 법을 배우며 성장하는 이야기로, 소설은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2020년 일본 서점대상 번역 소설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출처 : 라이브㈜
2022년 초연 당시 관객 평점 9.5점을 기록하며 ‘문학과 무대가 만난 모범 사례’란 호평을 받은 뮤지컬 <아몬드>가 3년 만에 돌아왔다. 무대부터 음악, 대본, 연출까지 전면 업그레이드된 2025년 재연엔 초연을 성공으로 이끈 핵심 크리에이티브 팀이 다시 뭉쳤다. 라이브㈜에서 제작한 뮤지컬 <아몬드>는 강병원 프로듀서를 필두로, <마리 퀴리>·<팬레터>를 연출한 김태형과 <프랑켄슈타인>·<벤허> 음악을 작곡해 한국 뮤지컬 역사에 굵직한 발자국을 남긴 이성준(브랜든 리)이 뭉쳤다. <뱀파이어 아더>를 집필한 서휘원이 초연에 이어 대본과 가사를 썼으며, 재연엔 고동욱 영상 디자이너가 새롭게 합류해 다채로운 영상을 선보인다.
뮤지컬 <아몬드> 재연은 서울 대학로 NOL 유니플렉스 1관에서 9월 19일에 개막했으며, 12월 14일에 막을 내린다. 재연엔 배우진이 초연 12명에서 8명으로 재정비됐으며, 무대 연출에도 큰 변화를 줬다. 작곡가 이성준은 음악감독을 겸임하며 일부 넘버를 새롭게 편곡했다. 또한 윤재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것도 눈에 띈다. 배우들은 윤재의 회고록을 읽는 독자 역할도 겸하여, 그의 마음속 생각을 나레이션으로 들려주기도 한다.
비극적인 사건 앞에서도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주인공 선윤재 역엔 초연 당시 뛰어난 연기력과 캐릭터 구현으로 극찬을 받았던 문태유가 돌아와 또다시 극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대극장과 중소극장을 오가며 다작하는 윤소호,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며 실력을 증명한 김리현이 윤재 역에 새로 합류하며 작품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출처 : 라이브㈜
겉은 거칠지만 속내는 외롭고 아픈 소년, 곤이(윤이수) 역엔 강렬한 무대 장악력과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는 윤승우가 새롭게 합류했다. 드라마와 무대를 활발히 오가며 끝없는 연기 열정을 선보이는 김건우 또한 새로운 곤이로서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초연 당시 완벽한 곤이였단 극찬을 받은 조환지는 재연에도 합류해 더 깊어진 감정으로 관객을 설득하고 있다.
육상 선수를 꿈꾸고, 윤재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가르쳐준 소녀 이도라 역엔 웰메이드 작품들에 연이어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김이후가 새롭게 합류했다. 초연 당시 작품에서 튀어나온 듯한 싱크로율이란 평을 받은 바 있는 송영미가 재연에도 출연하며 에너제틱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뛰어난 실력으로 단숨에 떠오른 신예 홍산하 또한 도라 역에 새롭게 도전하며 관객의 기대를 받고 있다.
윤재의 감정 교육에 몰두하는 엄마 역엔 금보미·이예지, 손자를 사랑으로 키우는 슈퍼 히어로 할머니 역할엔 강하나·허순미가 출연 중이다. 윤재의 든든한 조력자인 빵집 사장 심 박사(심재영) 역엔 이형훈·안창용, 곤이의 권위적인 친아버지인 윤 교수(윤권호) 역은 김보현·송상훈이 연기한다. 학생 외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멀티 캐스트엔 김효성·김현기가 참여한다.
뮤지컬 <아몬드>는 마음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방법, 전혀 다른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 삭막한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는 것,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선명한 메시지를 보여준다. 탄탄한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초연을 선보였던 뮤지컬 <아몬드>는 재연에도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무표정한 윤재의 얼굴에서 관객은 그의 슬픔을 엿볼 수 있다. 그 슬픔이 마침내 터져 나오는 클라이막스의 순간, 객석엔 말로 차마 다 표현하기 힘든 뜨거운 감동이 찾아올 것이다. 그 감동의 이름은 ‘공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