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계절은 그다지 호불호의 영역이 아니었다. 특히 여름은 그냥 징하게 더운 계절, 그래서 조금은 불쾌한 계절일 뿐이었다.
계절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건 공교롭게도 취업 때문이다. 최근 다니게 된 회사는 그 이름부터 계절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진하게 녹아있는 곳이다. 문득 누군가에게 계절은 꽤 중요한 호불호의 영역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레 계절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올여름도 콧잔등을 스치는 땀 냄새와 끈적이는 피부에 녹아든 불쾌지수와의 싸움은 여전했다. 하지만 분명 다른 점도 있었다. 낯선 환경에서 낯선 일들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긴장을 놓지 못하기도 하고, 땀이 비 오듯이 나는 현장에서 뿌듯함에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매일 왕복 4시간씩 출퇴근하면서도 어쩐지 살아있는 것 같았다.
가끔은 모든 걸 감당하는 게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한 번쯤은 겪을 감정이다. 그런 날엔 출퇴근길에서 이어폰을 꽂고 이 뜨겁고 끈적한 여름과 내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음악을 음량 8 이상으로 크게 듣곤 했다. 심장을 울리는 드럼 소리와 몽환적인 기타 소리는 그렇게 여름의 넘실거리는 파도를 헤쳐 나가도록 도왔다.
휴가를 가진 못했지만, 올해 나의 여름은 그만큼 역동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파도 위의 서퍼처럼 전진할 수 있게 도운 음악들을 여기에 기록한다.
이츠 – '청록'
어리숙했던 그날도
요란스러운 오늘도
숨 쉴 때마다 파도가 이는
아 시리도록 아름다운
- 이츠, '청록'
앨범 커버 이미지를 보고 듣지 않을 수 없었던 이츠의 ‘청록’. 23년도에 발매된 ‘청록’은 어쩐지 그리운 그때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이츠의 단단하고 힘 있지만 무겁지는 않은 특유의 보컬과 풍성한 악기 소리가 단숨에 눈앞을 짙푸른 청록색으로 물들인다. 영어 제목이 'Blue Rock'인 것도 재미있다.
푸르른 청춘을 소재로 하는 곡은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지금의 청춘에게 응원과 위로를 전하는 힘을 갖는다. 눈부신 청록색 계열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가수와 작은 공통점을 가져서 그런지, 내 여름의 색깔이 이 ‘청록’과 상당히 유사하게 느껴진다.
‘청록’ 덕분에 새파란 바람을 타고 날아 영원한 봄을 찾아가는 지금의 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곡의 분위기상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어울리는 곡이다 보니 앞으로도 자주 듣지 않을까 싶다.
드래곤포니 – '지구소년'
저기 떠 있어
푸른빛을 내는 행성
보고만 있어
다가서지 못한 채로
(중략)
난 너밖에 없어
나를 버리지 마
- 드래곤포니, '지구소년'
이츠의 '청록'이 청춘의 희망을 담고 있다면, 드래곤포니의 ‘지구소년’은 청춘의 외로움과 고독을 비춘다. 반복되는 후렴 부분 가사는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곳이 광활한 우주의 한 지점일 뿐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그래서인지 출퇴근길에 이 노래를 들으면 역설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후렴 가사도 좋아하지만, 사실 좋아하는 가사는 본문에 인용한 두 개의 가사다. 처음 가사는 푸른빛에 닿고 싶어도 닿을 수 없는 화자의 감정이 잘 묻어난다. 그러다 2절에서 갑작스레 ‘나를 버리지 마’라며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앞에서는 비유를, 뒤에서는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가사의 대비가 좋았다.
대상이 명확한 사랑 노래로 읽히기도 하지만, 대상과 관계없이 뭐든 간절한 무언가가 있는 청춘에게 큰 울림을 준다. 나의 경우엔 그것이 내 앞에 놓인 목표였고, 그 목표에 닿는 일이 간절했다. 문득 밴드 음악은 어떤 상황에도 대입할 수 있어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캔트비블루 – '첫 눈에 널 사랑할 수는 없었을까'
전부를 약속했는데
전부조차도 부족해
내 곁에 머물러만 준다면 난
이상이 될게
- 캔트비블루, '첫 눈에 널 사랑할 수는 없었을까'
갑자기 사랑 노래라니. 이 글의 주제와 썩 어울리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올여름은 캔트비블루의 ‘블루’와도 비슷했다는 생각에 이 곡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곡은 사랑의 아련함을 담은 동시에, 분명히 여름의 청량함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락없는 사랑 노래인데 올여름의 나는 대체 왜 이 곡을 질리도록 반복해서 들었을까. 어쩌면 간절하고 애절한 대상이 무엇이든, 그 어둠을 조금이나마 밝고 청량한 무드로 승화시키는 캔트비블루의 의도가 좋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인터뷰에서 가사로는 우울한 무드를, 곡의 속도감으로는 그런 우울함에 잠기지 않으려 하는 느낌을 대조시킴으로써 그들만의 색깔을 녹여낸다는 이야기가 크게 와닿았다.
나약했던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파도에 잠겨 허우적댔을 것이 뻔하다. 여름을 그저 ‘견뎌내는’ 계절로 생각하고 그렇게 나만의 우울감에 잠겨 영원히 그 안에 고여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여름은 분명 캔트비블루처럼 조금은 빠른 일상의 템포로 내 안의 ‘블루’에 희망을 덧입혔다.
*
갈수록 모든 게 소중해진다. 가을의 초입에서 여름을 돌아본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달랐다. 뒤돌아보니 모든 게 유의미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넘실대는 파도가 되어 나를 꾸역꾸역 앞으로 밀어냈다.
그런 상황에서 출퇴근길에 즐겨들었던 음악은 내가 그 파도에 잠식되지 않게, 즐겁고 신나는 마음으로 그 파도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서퍼가 되도록 도왔다. 나도 이제 조금은 여름을 감각하고 즐기게 된 건 아닐까.
앞으로도 난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일렁이는 파도를 의연하고 꿋꿋하게 타고 갈 것이다. 다가올 차디찬 바람과 시린 계절에도, 파도를 타는 서퍼의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