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오>는 프랑스 청춘을 대표하는 세 명의 젊은이를 따라가며 프랑스 사회가 품은 암울한 현실을 조명한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1985년 작 <택시 드라이버> 속 로버트 드 니로의 독백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도 잘 알려졌지만, 단순히 오마주 영화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지점을 정확히 짚고 있다. 영화는 세상의 모든 청춘이 겪는 정신적 억압과 불합리한 사회 구조를 감각적인 연출로 포착한다. 언뜻 보면 감정을 거침없이 폭발시키는 듯하지만, 섬세하고 절제된 연출 덕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흑백으로 구성된 화면은 모든 희망의 색을 뱉어 버리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한층 더 강렬한 분위기를 만든다.
개봉할 당시 낭만의 나라로 불리던 프랑스의 우울한 이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많은 관객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에펠탑을 배경으로 세련된 옷을 입고 거리를 거닐고, 카페에 앉아 논쟁과 토론을 즐기는 프랑스인들의 낭만적인 모습만 비추던 시절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나는 <증오>야말로 프랑스의 정신을 가장 깊이 담아낸 영화라고 본다. 혁명 정신과 함께 피로 얼룩진 역사와 지금도 이어지는 시위와 파업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프랑스인의 기질이 세 청년의 분노와 절망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던 청춘이 서서히 추락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 괴롭고 고통스럽다. 꺼져 있던 불빛은 손가락 하나만 튕겨도 켜질 것 같고, 막무가내로 욕을 내뱉어도 다 용서될 것 같던 ‘우리의 세상’에서 버림받고 좌절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이를 안타깝게 만든다. 우연히 손에 쥔 총으로 경찰을 죽이는 상상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방아쇠 한 번 당기지 못하는 청춘들의 허무함. 그리고 그 총으로 친구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끝내 목격해야 하는 무기력함은 마음을 오래 짓누른다.
친구의 병문안을 온 이들을 매정하게 쫓아내려고 한 병원 관계자와 경찰들, 그들을 막무가내로 취재하려는 기자들, 모욕과 고문을 일삼는 경찰들. 그들은 단 한 번이라도 이 청년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정말 그들의 행동을 그저 이유 없는 일탈이라고 생각했을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처럼 청춘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미래와 성공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서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다. “난 은하수에서 길을 잃은 개미 같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대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의 마음을 가장 정확히 대변한다. 고민의 깊이에 차이가 있을 뿐, 청춘이 품는 불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로부터 충분한 지원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년들. 세상은 너희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숨 돌릴 틈조차 주지 않는 사회의 오만함에 청춘들은 사회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화답한다. 모두가 작은 자극에도 터질 듯 긴장되는 전투 상태에 놓여 있다. 청춘은 아직 괜찮다고 스스로 세뇌이며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내일을 걱정한다. 중요한 건 어떻게 착륙할 것인가이지만, 대부분의 착륙은 결국 추락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영화 <증오>는 ‘우리가 어떻게 착륙해야 하는가’에 대해 답하는 작품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렇게 추락하고 있다’는 현재진행형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착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 영화를 본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로 남겨둔다. 이 문제는 비단 프랑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청춘의 행동과 말만을 가리켜 비난하고 매도하기보다 증오를 만들어내는 사회의 구조와 그 이면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