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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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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에게 '영혼 없음'이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더욱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단편처럼 느껴지는 글들이 이어지지만, 서서나 인물의 발전은 보이지 않고, 이야기의 결도 어디론가 흘러가 버린다. 그렇게 몇 편을 넘긴 뒤에야, 에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혼 없는 작가』는 다와다 요코의 초기 산문을 모은 책이다. 일본어와 독일어라는 전혀 다른 언어 사이를 넘나들며 글을 써 온 작가. 그는 단지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 사이에서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언어를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고백이자 탐색의 기록이다.

 

 
모어에서는 단어들이 사람과 꼭 붙어 있어서 도대체 언어에 대한 유희를 하는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모어에서는 생각이 단어에 너무 꼭 들러붙어 있어서 단어나 생각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닐 수가 없다. (p. 48~49)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문득, 내 마음에 걸쳐진 언어라는 얇은 천을 생각했다. 모국어라는 가장 익숙한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말하지만, 그 익숙함이 오히려 자유를 가로막는다는 느낌. 다와다는 이처럼 언어의 틈과 경계에서 글을 쓴다.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말해지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사이에서, 때로는 모국어보다 더 자유로운 타언어에서.

 

그의 글은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한 허구성과 환상성을 띤다. 그것은 서사의 힘이 아니라 언어의 리듬과 사고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몽상'이다. 에세이의 형식을 띠지만, 여행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추상적인 사유의 나열 같기도 하며, 때로는 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는 쉽지 않은 독서 경험이었다.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어려워했던 이유는 '언어의 유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늘 단어를 정확히 짚고,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다와다의 글은 언어를 설명의 도구가 아니라, 유영의 매개로 사용한다. 마치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물고기처럼.

 

이 낯섦 속에서 나는 다른 두 명의 작가를 떠올렸다. 줌파 라히리와 백수린. 두 작가 모두 언어와 경계, 이방성과 소외에 대해 쓰는 이들이다. 라히리는 성인이 되어 이탈리아어를 새롭게 익히며 자신을 재정의했고, 백수린은 프랑스의 유학 경험을 통해 언어와 정체성의 모호함을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이들 모두 언어를 단순한 도구로 보지 않는다. 언어는 곧 정체성의 일부분이며,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이기 때문이다.

 

 
내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단어들은 내 감정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나는 모어에도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지는 단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선 외국에서 살기 시작할 때까지 그것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p. 83)
 

 

다와다의 고백은, 언어를 다루는 작가로서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드러낸다. 말은 곧 생각이고, 생각은 곧 나 자신인데, 그 말이 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표현의 실패는 어느 정도까지는 언어를 매개로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경험이 아닐까. 이 책은 바로 그 '말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사유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글을 좋아하면서도 언어를 두려워했다. 적절한 단어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말과 마음의 사이의 거리에 늘 갈증을 느껴왔다. 다와다 요코의 글은 그런 나에게 묘한 위안을 주었다. 온전하지 않음 자체를 수용하며, 언어의 유동적인 존재로 대하는 그의 태도는 언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나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말한다.

 

 
단어 하나를 쓴다는 것은 문 하나를 연다는 것이다. (p. 201)
 

 

어떤 문은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고, 어떤 문은 다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한다. 언어라는 미지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모두 낯선 여행자다. 다와다 요코는 그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차분히 걸어간다. 이 책은 그 여정의 한 자락이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 도달하지 못한 의미, 하지만 그 안에서 떠오르는 감각들.

 

언어의 경계를 살아가는 이 작가의 여정을 조금이나마 따라가고 싶어졌다. 언어를 통한 '허구 아닌 허구', '에세이 같은 소설'이라는 그의 세계는 여전히 미지지만, 그 미지성마저도 이 작가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어쩌면, 언어란 본래부터 완전하지 않은 것이기에, 우리는 그 불완전함 속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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