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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를 떠올리면 대부분 다프트 펑크(Daft Punk)를 먼저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프트 펑크 못지않게 애정하는 또 다른 듀오가 있다. 바로 저스티스(Justice).

 

2007년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이후, 이제 곧 데뷔 20주년을 앞둔 저스티스는 십자가 모양의 심볼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다. 강렬한 락 사운드, 인디 신스의 질감, 그리고 시대를 가리지 않는 절묘한 샘플링이 결합된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독창적이고 강렬하다. 작년에도 새 앨범을 내고, 올해까지 리믹스를 이어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이들은 매번 새로운 충격을 선사한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듀오로 꼽을 수밖에 없다.

 

저스티스의 모든 디스코그래피를 좋아하지만, 내게 절대적인 1위는 데뷔 앨범 ‘Cross’. 중학생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접했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생생하다. 음악이 이렇게까지 물리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귀를 폭행하듯 몰아치는 사운드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역대 저스티스의 모든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도 이 앨범에 수록되어있다. 바로 ‘Stress’이다. 어떤 트랙을 들었을 때 불쾌함과 불안정함을 느끼게 해준 트랙은 Stress가 처음이었다. 당시 성능이 좋지 않은 이어폰으로 들었음에도, 날카롭게 귀를 찌르는 스트링, 심장을 짓누르는 비트, 그리고 숨 돌릴 틈 없는 전개에 완전히 압도됐다.

 

성인이 된 뒤에는 보스 NC700 헤드폰으로 들으며 또 다른 차원의 체험을 했다. 저음은 더욱 깊고 무겁게 울리고, 고음은 한층 날카롭게 귀를 찌르면서, 이 트랙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Stress는 Cross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을 넘어, 저스티스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내 인생 트랙으로 자리 잡았다.

 

 

 

공포를 담아내기 위해 사용한 샘플링

 

4분 59초 동안 이어지는 Stress는 시작과 동시에 청자를 몰아붙인다. 여유롭게 긴장을 끌어올리는 인트로 따위는 없다. 대신 공포영화 속 경고음처럼 날카롭게 긁어대는 스트링과 차갑게 가공된 묵직한 전자음이 폭력적으로 귀를 때린다. 첫 소절부터 음악이 아니라 소리 그자체의 압박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무지막직한 사운드 이면에는 바로 샘플링이있다.

 

 

01. David Shire - ‘Night on Disco Mountain’ 샘플

 

 

 

이 곡 특유의 소름 끼치고 거북하지만 강렬한 사운드 중심에는,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의 ‘Night on Bald Mountain’을 디스코로 재해석한, 영화음악가 데이비드 샤이어(David Shire)의 ‘Night on Disco Mountain’이 있다.

 

원곡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현악기를 디스코 비트 위에 얹은 이 트랙에서, 저스티스는 스트링 파트를 샘플링해 템포를 높이고 반복적으로 배치했다. 고음역대의 날카로운 스트링은 끊임없이 귀를 찌르고, 저음의 베이스는 묵직하게 짓누른다. 현악기를 EDM의 중심 악기로 끌어온 이 선택은 장르 문법을 깨는 대담한 시도라고 본다. 이런 창의적인 샘플링 덕분에 Stress는 전자음악이면서도 클래식의 음산함을 품은, 유례없는 사운드 질감을 얻었다.

 

 

02. Devo – ‘The Truth About De-Evolution’ 샘플

 

 

 

여기에 1976년, 아메리칸 뉴웨이브 밴드 데보(Devo)가 만든 단편 영화 ‘The Truth About De-Evolution’의 사운드가 더해진다. 영상 5분 무렵 등장하는 독특한 음향을 샘플링해, 곡 전체의 분위기를 한층 더 디스토피아적으로 몰아넣는다. 이치럼 Stress를 원곡 샘플과 비교하면, 그 사운드가 어떻게 변형되고 흡수되어 트랙 속에서 살아 숨 쉬는지 확인하는 재미도 크다.

 

저스티스의 멤버 자비에 드 로즈네(Xavier de Rosnay)는 Stress를 ‘듣기에 불쾌하고, 심지어 두통을 줄 수도 있도록’ 믹싱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음악 프로듀서가 청중이 편하게 듣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반면, 저스티스는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설계했다.

 

실제로 곡을 들어보면 리듬은 일정하지만, 잔향과 노이즈가 겹겹이 쌓이며 숨 쉴 틈을 빼앗는다. 음 하나하나가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압박감을 형성하고, 곡이 끝날 때까지 그 긴장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 결과 춤을 추게 하는 클럽 트랙이 아니라, 사운드로 찍어누르는 청각적 서스펜스 영화가 되었다.

 

불안정하고, 끝없는 고조 속에 갇힌 듯한 이 사운드는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지금도 Stress를 재생할 때면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 속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다.

 

 

 

논란의 뮤직비디오


 

 

 

이 트랙이 유명세를 얻게 된 데에는 독보적인 사운드뿐 아니라 논란이 된 뮤직비디오도 한몫했다.

 

로맹 가브라스(Romain Gavras)가 연출한 이 영상은 파리를 배경으로, 젊은 십대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기물을 파괴하며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는 모습을 담았다. 16mm 필름의 거친 질감 속에서 카메라는 폭력과 파괴를 냉정하게 기록한다.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실제 파리의 어두운 단면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작품이라 착각했을 정도였다.

 

프랑스 TV에서는 방영 금지를 당했고, 일부는 이 영상을 인종차별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저스티스는 “영상 속 인물을 흑인으로만 본다면, 그 시선 자체가 이미 편견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히려 이러한 논쟁은 작품이 던진 질문인 폭력, 편견, 사회적 불안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다.

 

여담이지만, 당시 뮤직비디오 속에 등장했던 십자가 로고가 새겨진 봄버 자켓이 너무 갖고 싶어 한동안 찾아 헤맸던 기억도 있다.

 

 

 

Across the Universe - Stress (live version)



 

 

원곡 자체도 압도적이지만, Stress의 진정한 매력은 라이브 버전에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저스티스의 첫 번째 월드 투어 Across the Universe에서 선보인 버전.

 

말 그대로 ‘날것의 절정’이다. 원곡이 이미 청자를 불안과 긴장 속에 몰아넣는 곡이라면, 이 라이브 버전은 그 감정을 한층 더 폭력적으로 증폭시킨다. 기존 트랙을 또 하나의 샘플처럼 다루며 무대의 즉흥성과 에너지를 덧입혔다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버전이 특별한 이유는 도입부의 긴 빌드업. 다른 라이브 버전이 원곡처럼 곧바로 드랍으로 시작하는 반면, 이 버전은 긴 호흡으로 긴장을 끌어올린 뒤 폭발한다. 여기에 오래된 녹음 특유의 거친 음질과 관중들의 환호가 겹치며, 원곡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완성한다.

 

정제된 음원이 주는 쾌감 대신,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나는 긴장감이야말로 이 라이브 버전의 본질. 설령 완벽히 다듬어진 녹음이 나온다 해도, 나는 여전히 이 투어 실황 속 날카롭고 거친 Stress를 선택할 것이다. 그 속에서만 저스티스가 구현한 ‘불편함의 미학’이 가장 진하게 살아 숨 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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