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24일의 목요일
![[크기변환]1070744.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4204_hvsdirom.jpeg)
ⓒ 유진
요즘은 하루의 시작이 이르다. 전시를 본 그날만 해도 오전 5시에는 눈을 뜬 것 같다. 그렇다고 일찍 잠든 것도 아니다. (새벽 2시에 잤던가?) 그저 이 기상 패턴을 반복했을 뿐인데. 어느새 생체리듬이 자연히 바뀌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건강한(?) 습관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상상치 못했는데,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눈이 일찍 떠지는 것만큼, 요즘 반복하는 일들이 무엇인가? 누군가를 '응시'하는 일이다. 내 인생을 길게 돌아봐도 이렇게 이름 모를 혹은 괜히 애정이 가는 '타인'에게 시선을 둔 적이 없었다. 신기한 일이다. 그것도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내 재화를 들여 이방인을 마음에 들여온다. 그리고 꼭 마음으로—글귀로— 뱉어낸다.
무엇을 느꼈는지, 보았는지를 스스로 들이밀어 끄집어내는 요즘이다. 왜?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가장 젊은 날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겠다. 아이돌이 되어 음악방송에 나가서 카메라 안에 담길 일도 없고, 인플루언서처럼 뽐낼 미모와 기량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이를 내 눈앞에 두는가. 그냥. 이뻐서. 그래서 담는다.
당신은 꿈을 가진 사람의 눈망울을 마주해본 적 있으신가? 엄—청 빛이 난다. 아마 어느 명품 브랜드의 보석 몇 개를 들이밀어도 이보단 못할 것이다. 클래식 공연을 보다 보면, 그 빛이 눈 뿐만 아니라 온갖 곳에서 나타난다.
누구는 현악기 활끝에 있는 은색 스크류에서, 건반에서, 공기에서, 손끝에서, 악기 그 자체에서 난다. 은하수가 따로 없다. 그 재미를 알고나니, 공연장에 빈손으로는 못 가는 버릇이 생겼다. 뭐든 쟁여간다. 카메라든, 셔터처럼 장면을 기록할 기억 공간이든. 다만, 이 과정은 재밌으면서 늘 어려운 일이다. 그때마다 내가 원하는 만큼 기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느끼게 될지 장담도 되지 않는 영역이 아니던가.
내가 담아갈 수 있는 재료는 결국 연주자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끝에 서 있던 음악가들은 늘 그 이상을 건넸다.
그래서일까. 매번 불안하면서도, 나는 또다시 그 장막 아래 선다.
이렇게 하여 뭘 얻겠는가 싶겠다. 이유가 뭐 있겠나. 다 나 좋자고 하는거다. 그들의 빛을 그저 내 안으로도 살짝 들이치게 하기 위함이다. 마주하는 시선 앞에 곧장 '나'를 두기 보다, 쪼그려 앉아 타인의 빛을 쬐고 있는 나를 문득 발견한다. 그래. 넌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스스로에게 은은한 미소 하나 건네며, 너털웃음을 지어본다. 눈높이를 맞춰 같이 쪼그려 앉는 재미가 있다.
그래, 타인의 오늘을 내 안에 담아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것. 이 재미나고 어려운 행위의 즐거움과 무게를 알게 된 요즘이기 때문에 사진가 집단 <매그넘 포토스>의 포토북 전시회는 내게 꽤 흥미롭게 다가왔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2025>은 세계적인 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의 80년 역사를 조망하는 전시로, 한국 전쟁부터 9·11,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재난, 변화의 현장에서 ‘인간’을 응시해온 그들의 시선을 포토북이라는 형식 안에서 풀어낸다.
약 150권의 포토북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한 장면을 고르고, 감정을 배열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전시회에서 무엇을 느꼈던가?
2. 뮤지엄한미 삼청본관
![[크기변환]1070652.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356_axsiguhv.jpeg)
ⓒ 유진
일단, 그날의 더위를 논하지 않는다면 너무 섭섭하겠다. 그냥 찜기에 들어간 냉동만두가 된 기분이었다. (살살 녹는다) 그냥 만두다. 아무리 더워도 5분 정도는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는데, 5분은커녕 3분도 고난의 길이었다.
오늘의 전시가 열리는 뮤지엄한미 삼청본관은 꽤나 사람들 발길이 줄어드는 삼청동 끝자락, 언덕길 옆 조용한 골목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 절대적으로 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원래 같으면 국립현대미술관을 쭉 지나 산책하듯 걸어 왔겠지만, 그날은 그랬다간 9시 뉴스에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서울역에서 빠져나와 종로11번 마을버스를 탔다. 운 좋게도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다만 작고 아기자기한 그 버스 안은 그렇게 시원하진 않았다. (배부른 소리) 초소형 손선풍기에 마음을 의탁한 채 몇 정거장을 지나 '삼청공원삼거리' 정류장에서 내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골목길을 살짝 올라오니, 붉은 벽돌로 된 낮은 건물 하나가 금세 눈앞에 나타났다.
전시관으로 들어설 때, 여성 두 분이 입구 맞은편 도로 반사경 앞에서 셀카를 찍고 있었다. 나도 이따가 나오는 길에 찍어야지—몰래 다짐하고 출입문 안으로 들어섰다.
![[크기변환]1070659.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422_nmzgmxwm.jpeg)
ⓒ 유진
더위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도 잠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는 카운터가, 정면에는 커다란 전시 포스터와 함께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이 시야에 들어왔다. 표 한 장을 손에 쥐고 천천히, 한 계단씩 내려가니 발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또각또각 울렸다.
평일인 만큼 전시장 안은 고요하고 한적했다. 사람도 한두 명 정도뿐이었고, 지하 1층을 구경하고 1층으로 다시 올라왔을 땐 정말 아무도 없었다. 높은 층고의 천장 아래, 액자들과 나 단둘이 있는 그 순간이 잠시의 호사처럼 느껴졌다. 갓 지은 듯 깨끗한 아이보리색 벽지, 은은한 광이 감도는 밝은 연갈색 바닥, 그리고 이솝 매장이나 교보문고처럼 전시장 특유의 낯선 공기 냄새가 첫인상으로 확 들어왔다.
![[크기변환]1070708.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447_icktmwod.jpg)
ⓒ 유진
계단을 따라 내려오자마자, 카페 공간 유리창 밖으로 거대한 흰 마네킹 조형물이 햇살 아래 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전에 봤던 발레 동작 중간쯤에서 일시정지한 듯한 포즈였고, 양팔 위에는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사람들을 형상화한 걷는 피규어들이 놓여 있었다.
그 아래엔 조각돌이 깔려 있었고, 작은 인공 호수가 조성되어 있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햇빛이 수면 위에서 반짝였다. (역시 예쁜 건 시원한 곳 안에서 봐야 한다)
조형물에 시선을 잠시 빼앗긴 뒤, 옆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카메라만 편히 들고 아까 무심코 지나쳤던 리딩룸으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3. 첫인상- 습, 잘 모르겠는데?
![[크기변환]IMG_4809.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459_bcmaifdb.jpeg)
ⓒ 유진
계단을 내려오며 마주한 긴 흰색 전시 테이블 위에는 책들이 간격 맞춰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오늘의 전시를 소개하는 얇고 반투명한 커튼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높은 흰 벽에 걸린 액자들에 시선이 먼저 닿았고, 이어 나열된 것들 하나씩 펼쳐보기 시작했다.
전시되어 있던 포토북을 절반 정도 휘적휘적 넘기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습- 어려운데..? 이 전시회에서 뭘 느껴야하지?"
책 한 권을 펼칠 때마다 옆에 쓰여 있는 작가노트를 읽어보면서, 어떻게든 머릿속에 엄청난 경험과 지식을 얻어가야지.. 겪어봐야지.. 했는데. 이상하게 눈 앞에 글씨들이 둥둥—웽웽— 맴돌았다.
예쁜 사진을 건지러 전시장에 온 것도 아니고,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을 목격하러 온 거였는데도, 너—무 낯설었다. 왜일까? 일단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겪어온 인생사나 역사, 혹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다지만, 다른 인종의 사진과 생활환경을 보면서 무언가를 공감하고 감동받기엔 낯선 감정이 너무 큰 벽이었다.
몇 권을 넘겨봐도 머릿속에 '잘 모르겠다'는 문장만 나뒹굴어서, 큰일 났다 싶었다. 다만, 큰 문제는 아니다. 이렇게 마음에 담을 대상이 어려우면, 바라보는 시선이나 소재를 달리하면 된다. 이래 보여도 클래식의 대홍수 속에서 발버둥치는 사람이 아니던가? 낯설 때는 무작정 들이밀고, 작은 건 더 작게 보고, 큰 건 더 크게 보면 된다!
3. 취사선택의 재미 – 낱말 놀이, 책방, 애플뮤직 *이 문단부터 전시 내용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크기변환]1070680.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546_ogofgvbg.jpg)
ⓒ 유진
무엇을 더 작게 보고, 무엇을 더 크게 볼 것인가? 간단하다. 포토북에 집중되어 있는 시선을 작가 노트에도 반쯤 주기로 결정했고, 그 안에서 좋아하는 단어들을 채집하기 시작했다. 이 전시에는 매그넘 포토스에 소속된 작가들의 수많은 이름이 함께 적혀 있었는데, 한두 번쯤은 아는 작곡가나 연주자의 이름, 혹은 성씨와 같은 이름을 작가 명단 속에서 마주쳤다.
이를테면, 요제프라던가, 프랑크라던가, 드보르자크, 외젠 이자이의 ‘외’라던가. 스펠링은 다를지언정, 한국어로 옮겨지면 똑같으니까 냅다 반가워했다. (이야) 전시장 가서 혼자 뭐하나 싶겠지만, 아—내가 친해지고 싶던 이름들이 흰 벽에 예쁘게 나열돼 있었으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내 이름과 같은 ‘유진’도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 이 세상을 거쳐간 다른 나라의 유진 씨는 이렇게 멋지게 살다 가셨구나. (오)
![[크기변환]1070685.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739_khwghkgn.jpeg)
ⓒ 유진
리딩룸에 있던 트렌트 파크 작가의 아코디언처럼 접힌 책 더미를 설명하던 작가 노트에서도 좋아하는 단어를 찾았다. 뭐겠나? 바로 빛이다. 작가는 평생을 ‘빛’을 쫓아 살아왔고, 마지막에서는 빛의 근원으로 직접 향하고자 하여 태양 자체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빛’을 담았다는 걸 알고,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흑백 필름 속 지는 해를 바라봤다. 다른 시간, 같은 하늘에서, 서로 다른 위치의 동그랗고 하얀 태양이 눈에 들어왔다. 아, 누구는 빛을 쫓아 태양을 바라보는구나.
유치한 낱말 놀이를 하고 나니까 낯가림이 조금 풀렸다. 일본의 풍경을 담은 작가의 책도 살펴보고, 다홍·초록·흰색 천 안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는 여인과 눈도 맞춰보고, 작가 올리비아 아서가 세상을 떠난 친구의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책의 황갈색 배경 앞에서 멍하니도 있어봤다. 높은 벽 위, 울상을 짓고 우스꽝스럽게 점프하는 양복 차림의 신사가 웃겨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러다 같은 층 복도에 마련된 전시장으로 이동했다. 한두 명 계시던 관람객도 다른 층으로 옮겨가셨는지, 이 파트에서는 관람객이 오직 나뿐이었다.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또각, 또각. 이제는 눈으로만 담아야 하는 포토북 행진을 왼편에 둔 채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크기변환]107070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838_dpngixfm.jpg)
ⓒ 유진
포토북이 아니더라도 시선을 끄는 장면은 꽤 많았다. 아이보리 벽지와 책들을 받쳐 놓은 전시대 아래로 네모난 긴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었다. 벽 위에 자국 하나 없이, 굳건히 세상을 받치고 있었다.
진주를 담은 듯 반짝이며 새빨갛던 표지, 유성우가 박힌 듯 흰색으로 그려진 물방울 사이로 길을 지나는 사람들, 자신이 찍은 것을 펼쳐내는 왼손, 전쟁의 참상, 누워 있는 여자,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꼬맹이, 날개를 달고 자전거를 타는 남자아이, 카메라를 든 채 창가 밖을 찍은 남자, 누군가를 원망하듯 울먹이며 앞을 응시하는 한 사람.
이미 누군가의 렌즈에 담긴 피사체들이지만, 그 정지된 사진들을 다시 찍으며—오늘의 날짜로 잠시 그 사진들의 일자를 갱신시킨다. 대부분은 나중에 지워지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것은 손 안에 잠시라도 담아두어야 안심이 되지 않던가.
4. 공간 - 쏴아-, 뚜각—,뚜각-, 물음표(묘사 불가)
![[크기변환]1070745.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915_dftpmygz.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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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사진만큼이나 그날의 뮤지엄한미라는 공간 자체를 진짜 ‘향유’했다. 향유란 무엇인가? 누리어 가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누렸는가? 높은 층고의 전시관과, 그 공간의 밀도를 홀로 누렸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지하 1층 전시를 모두 마음에 담고,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뚜각—뚜박-뚜걱— 올라왔다. 이날은 이어폰을 끼지 않은 채 전시를 관람했다. 유달리 이 전시관은, 운동화가 원목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뚜각’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리듬감이 공간 전체에 작게 번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이 떨어지는 소리, 폭포를 닮은 백색소리—‘음향’이 온 세상에 깃들어 있었다. 그 안에서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내 걸음이 인식된다. 그 움직임 사이로 자연이 스친다. 어떻게 이어폰을 꽂을 수 있겠는가. 또각—쏴아,-또각—쏴아.
![[크기변환]1070729.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904_yuqltlkp.jpeg)
ⓒ 유진
명상이 따로 없었다. 날이 좋았고, 햇볕의 기세가 가장 뜨거운 시각에 실내로 들이치는 빛은 꽤 지켜볼 만했다. 특히 벽과 벽 사이, 적당한 그림자와 어둠이 조성된 공간 속에서 근근이 발견되는 네모난 빛—카스테라처럼 말랑하고 노란 그것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예뻤다. 왠지 좋아하는 어떤 공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오늘은 더하우스콘서트의 마룻바닥이 아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공연장의 관객석이겠다. 다수의 관중에게 연주를 약속한 시간이 되면, 지체 없이 관객석엔 새까만 어둠이 들이치고, 연주자가 등장하는 무대 위로 노오란 조명이 동그랗게 모여든다. 그래. 이 빛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 장면이 겹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참, 좋아하는 게 한결같다.
1층에서는 어떤 낱말들과 눈을 맞췄던가? 아마 마지막 전시관에서 본 작가 치엔 치 장의 사진과 편지겠다. 정신질환자들이 갇힌 대만 남부의 롱파탕 사원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슬’을 사용한다는 설명. 그 사슬에 감긴 이의 맑은 미소가 담긴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웃고 있는데, 애환이 느껴져서 마냥 따라 웃을 수 없는 기분. 뭔가 씁쓸하면서도 시선을 피하고 싶어진다. 그 옆엔 환자가 어머니께 보낸 긴 편지도 있었다.
“처음엔 새끼줄, 그다음엔 나일론 줄, 그 뒤엔 쇠사슬…”
“롱파탕 빅밴드에 들어간 건 제 인생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습니다.”
어머니, 이제 얼마나 제가 정상인이 되었는지 보러 와 주세요.
그래 주실 거죠?
당신의 아들 드림
추신.
어머니, 누군가가 저를 이름으로 불러준 지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제 이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나요?
![[크기변환]1070740.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954_cgukusve.jpeg)
ⓒ 유진
그 말이 그냥, 마음에 꾹 박혔다. 나는 말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나와 난간 아래의 리딩룸을 내려다보았다. 책들이 쭉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멀리서 보니, 약간 책방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애플 뮤직 플레이리스트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크기변환]1070743.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3936_gandazgk.jpeg)
ⓒ 유진
이상하게도 아들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살짝 싱숭생숭했던 그 순간, 아까 장난스레 프랑크 소나타를 떠올리게 했던 책 표지 위의 손바닥과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멀리서 그 손바닥과 손바닥을 마주쳤다.
지하 1층부터 1층까지 모든 전시를 관람했지만, 정작 포토북 한 권도 온전히 읽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다시 리딩룸 안으로 들어가,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라인을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제목은 <얘들아, 이리 와 놀자>. 매그넘 사진가들이 촬영한 세계 어린이들의 일상과, 미국 뉴욕의 아이들이 그 사진을 보고 지은 시를 함께 엮은 시집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어찌나 공감되는 내용이 많던지. 무엇이 그렇게 공감되었냐면, 클래식 음악을 듣는 순간에 스쳐 가는 생각과 마음들과 너무 비슷했다. 너무 많이 말하면 방문해 읽는 재미가 사라지니, 딱 하나만 나누고 싶다.
〈웃기는 것은 움직여〉
웃기는 것은 움직여.
네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거.
날아보려 하니까
내 속에 찌르르 뭔가 느껴져.
하하!
![[크기변환]1070760.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4007_gxaztvro.jpeg)
ⓒ 유진
전시를 모두 보고 난 뒤, 다시금 거대한 마네킹 조형물이 보이는 유리창 앞에 섰다. 그래서,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가들은 왜 포토북으로 세상을 담으려 했을까?
사실 우리는 단편적인 기준으로 판단되어지는 순간들이 꽤 많다. 몇 분 내외의 면접이라든가, 오디션이라든가, 첫인상이라든가, 말 한마디라든가. 그 짧은 순간이 완벽한 기억으로 남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 순간 때문에 며칠을 머리를 싸매며 후회하게 된다.
사진은 어떨까? 사진 몇 장만으로 그 작가를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가능하긴 하겠지만, 때로는 아쉽다. 조금 더 긴 흐름을 지켜봐 주었으면. 아마 그 작은 바람 하나가 포토북을 만들게 했고, 그것이 전시가 되어, 이 머나먼 이국 땅까지 도달한 건 아닐까.
내 글도 여간 다르지 않다. 참, 다시 봐도 길다. 말재주가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줄줄이 주절거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의식되지 않는 나이테 같은 것에 조금은 기대어본다. 나이가 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아닐 거 안다)
그냥, 내 긴 시야를 최대한 멀찍이 담고 싶었다. 그래야 다시 되돌아보았 때, ‘과거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니까. 애초에 짧은 몇 문장으로는 기억이 안 난다. 길고, 길게, 기—다랗게 마음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문장 쯤에서야 깨달을 수 있다.
“그때 그랬구나!”
![[크기변환]1070724.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4027_eyqkbyix.jpeg)
ⓒ 유진
5. 끝내며 – 매그넘 포토스? 나는 해피 포토스
![[크기변환]IMG_4815.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6234051_hwyyfxyw.jpeg)
ⓒ 유진
놀랍게도, 요즘 꽤나 포토그래퍼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이 매그넘 포토스라고? 나는 해피 포토스다. 나 혼자인데 왜 포토스냐고 묻는다면? 다 이유가 있다.
기꺼이 카메라를 빌려준 동갑내기 친구, 함께 공연을 나눠주는 동행들, 내 렌즈 안에서 미소를 지어주는 사람들, 긴 포물선의 음을 만들어내는 연주가들, 그리고 오늘의 나를 담아주는 손길들. 다—모여 모여, 해피 포토스다.
오늘도 해피 포토스는 성업 중이며, 당분간은 이러하겠다. 내가 좋아하는 악기가 있는 곳으로, 다들 모여–모여– (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