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스피커로 재즈 음악을 튼다. 흘러 나오는 선율과 함께 부드럽게 퍼지는 무드등 조명 아래로 책을 읽으면,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많고 많은 재즈 음악 중 내가 첫 번째로 트는 노래는 단연 ‘쳇 베이커(Chet Baker)’의 “Autumn in New York”이다.
기교보다는 감정을 담은 그의 노래는, 매우 거칠고 정직하다. 그의 목소리는 스스로의 감정을 숨김없이 꺼내 놓는 듯하고, 우리는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마약, 폭력, 그리고 끝내 투신이라는 비극적인 그의 삶이 녹아 든 음악은 불안정하면서도 애틋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금부터 내 재즈 플레이리스트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그의 노래 세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Autumn in New York
비 오는 날에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곡. 이 곡은 뉴욕 늦가을의 고독하면서도 낭만적인 풍경을 잔잔하게 담아낸다.
도시의 화려한 외면보다는 조용하고 조금은 고독한 뉴욕의 골목길을 그린다. 마치 화려하지만 비극적이었던 그의 삶이 뉴욕이라는 도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의 트럼펫은 기교보다는 감정 전달에 집중하며, 그 연주에는 온기와 외로움이 공존한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해당 노래를 리메이크했지만, 쳇 베이커의 버전은 조금 더 고요하고 정제된 느낌을 품고 있다.
My Funny Valentine
쳇 베이커의 대표곡 중 하나. 그 특유의 속삭이듯 부드러운 보컬은 사랑의 불완전함을 담백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담백하기에 더욱 진실하게 와닿는다.
우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나에게 완벽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누군가에게 강렬할 끌림을 느끼고 또 강렬한 감정을 부여한다. 사랑만큼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감정이 있을까.
‘완벽하지 않아도, 여전히 그대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은 가사는 사랑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에 대하여 다시금 사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Your looks are laughable
당신의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Unphotographable
사진에 담아낼 수 있는 모습도 아니지만
Yet you are my favorite work of art
그럼에도 당신은 나에게 최고의 예술품이에요
I Fall in Love Too Easily
불안정하고 여린 그의 목소리는 사랑으로 인해 쉽게 불안정해지면서도 계속해서 사랑을 반복하게 되는 모순적인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 곡은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면서도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자신을 자조하듯 노래한다. 몽환적이면서도 진솔한 곡의 분위기는 마치 한밤중 침대에 누워 사색에 잠긴 듯한 감정을 자아낸다. 연약하면서도 인간적인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는 가사는 그 어떤 곡보다도 솔직하게 느껴진다.
My heart should be well-schooled
내 마음은 단단해졌어야 해요
‘Cause I’ve been fooled in the past
이미 과거에 사랑에 속았기 때문이죠
But still I fall in love too easily
그래도 난 여전히 너무 사랑에 쉽게 빠져요
*
대부분의 재즈는 기존에 존재하던 노래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형태로 작업이 이루어진다. 같은 음정과 구조 안에서 연주자는 자신만의 이야기와 연주를 풀어 낸다. 그렇기에 각 연주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나 색깔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쳇 베이커의 담백하면서도 거친 방식은 나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다. 화려한 연주 역시 웅장하고 아름답다는 감상을 전해 주지만, 나는 조금은 절제된 표현 속에서 더욱 진솔한 감정이 묻어 날 수 있다고 느꼈다.
재즈를 좋아하거나 입문해 보고 싶다면 하나의 곡을 다양한 연주가의 버전으로 들어보며 비교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연주자, 그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재즈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떤 재즈를 좋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