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가수부터, 뮤지컬 배우, 배우, 애니메이션, 만화, 웹소설... 3D부터 2D까지 덕질할 게 이렇게 많은 세상에서, 누구나 ‘최애’ 하나쯤은 마음속에 품고 있기 마련이다.
덕후가 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내 마음에 어느 순간 빠져드는 무언가가 생긴다. 그 대상을 계속 보고 싶어지고, 눈이 저절로 간다. 눈이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주게 된다. 그렇게 최애를 사랑하게 되고 팬이 된다.
덕질의 또 한 가지 특징으로는, 누군가를 ‘덕질하는 사람’과 ‘덕질의 대상’ 둘 다 그 성별과 나이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10대들이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것처럼,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트로트 가수를 좋아할 수 있다. 트로트 가수가 아니어도 아이돌일 수도 있고, 배우일 수도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게 예측 불가능한 일이듯이 누군가의 팬이 되는 마음도 맘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만 들으니 덕질이란 무척이나 낭만적이기만 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 그 낭만적인 덕질 때문에 문제가 생긴 여자가 있다. 아니, 덕질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엄마’가 덕질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매일 같이 쨍한 노란색 단체복을 입고 돌아다니고, 집 곳곳을 가수의 얼굴로 꾸며 놓고, 결혼식 상견례 자리에서도 ‘햇살왕자 이이경’의 앨범을 돌리는 엄마. 트로트 가수 이이경의 팬클럽 총무. 그게 바로 드라마 <덕후의 딸>의 주인공인 엄마 ‘유재금’씨다.
딸 '서현'은 곧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황의 사회부 기자다. 그렇지만 서현의 집안 사정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안 그래도 대대로 경찰 일을 해 온 번듯한 남자친구의 집안과의 대비가 신경 쓰여 죽겠는데, 엄마 재금은 그런 서현의 사정도 몰라주고 ‘햇살왕자 이이경’ 노래만 불러댄다. 상견례에서까지 트로트 가수의 음반을 돌리는 꼴에 화가 난다. 심지어 영상을 보다가 늦잠을 자느라 상견례에 늦었단다. 결국 서현은 엄마에게 소리친다. 엄마 너무 창피하니까, 결혼식에도 오지 말라고. 자식 인생에 마이너스인 부모도 있는 거라고.
그날 이후, 여전히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서현. 그런 서현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재금이 팬클럽 공금 5000만원을 인출해서 들고 튀어 잠적했다는 것이다. 팬클럽 회장은 콘서트날 전까지 5000만원을 찾아오지 못하면 재금을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서현은 이게 웬 일인지 싶다. 엄마 재금이 갈 만한 곳을 모두 찾아 봤지만, 엄마는 아무데도 온대간대 없고 돈 5000만원을 인출한 기록이 찍혀 있는 통장만 남아 있을 뿐이다.
서현은 엄마가 밉다. 인생에 도움이 된 적도 없는 엄마가, 왜, 무슨 일 때문에 결혼까지 방해하나 싶다. 하지만 ‘엄마’라서. 자신을 키우기 위해 때밀이부터 청소까지 온갖 궂은 일을 다 해가며 살아온 ‘엄마’라서, 포기할 수도 없다. 서현은 자신의 결혼식을 미루면서까지 엄마가 가져갔다는 5000만원을 손에 쥔 채 팬클럽 회장을 찾아간다. 5000만원을 넘기려던 그때, 엄마 재금이 나타나 서현을 가로막는다. 과연 재금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엄마는 정말로... 딸보다 가수를 소중하게 여기는 걸까?
드라마 <덕후의 딸>은 2024년 tvn에서 방영된 단막극이다.
7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엄마와 딸의 갈등을 모두 풀어낼 수 있는가 싶지만, 짧고 굵게 이 드라마가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철없어 보이기만 하는 엄마 ‘재금’은 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엄마’다. 엄마는 자신을 5000만원의 횡령범으로 오해했던 딸에게 말한다.
“아무려면 제 엄마를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싶었지.”
드라마 속에서, 딸 서현은 엄마가 트로트 가수 이이경을 덕질했던 이유가 자신이 어렸을 때 엄마에게 불러주던 노래를 이이경이 불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쨍 하고 해뜰날 돌아 온단다” 라는 한 줄 가사는 엄마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엄마 재금이 가장 사랑하는 최애는 딸이었던 것이다. 시청자인 나로서도 서현과 함께 재금을 의심했던 잠깐이 더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재금은 자신의 성공적인 ‘덕질’을 위해서 누구보다 충실하고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엄마였을 뿐인데.
누군가를 덕질하는 것은 그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가족이어도 좋고, 친구여도 좋다. 내 삶을 더욱 치열하고 생기 있게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그게 누구든 ‘덕질’한다고, 이 사람이 내 ‘최애’라고 말해도 좋겠다. (물론 윤리적인 선에서 덕질해야 한다.) 덕질에는 삶을 나아가게 해 주는 힘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