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셨나요? 한국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 같습니다. 문화예술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를 소망해봅니다.
자기소개 이후로 다시 한번 “Project 당신”에 글을 남기러 왔습니다. 저는 이 카테고리를 제법 좋아합니다. 에디터들이 한 편의 오피니언 대신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마치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들이 제 4의 벽을 뚫고 관객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저도 간만에 제 이야기를 하러 나와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에디터 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주기적으로 글을 쓰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언제나 다이어리를 구입하면 1월만 쓰고 텅 비워두는 사람, 그게 저였어요. 올해는 그래도 계속 칸을 채우고 있는데, 일기보다는 스케줄러가 되어가고 있네요. 한 때 유행했던 블로그 챌린지도 꼭 하루이틀 놓쳐서 실패로 돌아갔어요. 그래서 지난 3월부터 매주 약 1000자 분량의 글을 한편씩 완성하고 있는 제 자신이 신기하면서도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이 에디터 활동을 하며 지금까지 써왔던 모든 글들이 도전이었습니다. 이번 셀프 큐레이션에서는 저에게 가장 도전으로 다가왔던 기고문 4편을 돌아볼까 합니다. 지금부터 각각의 글들이 저에게 어떤 도전이었는지 하나씩 소개해보도록 할게요.
내향인의 도전, 자기소개
[Project 당신] 안녕하세요, 저의 세계관을 소개합니다 [자기소개] (*클릭하면 기고문으로 넘어갑니다.)
첫 번째로 돌아볼 글은 저의 자기소개입니다. 내향인들이 기가 쪽족 빨리는 순간 중 하나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바로 새로운 모임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앞사람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마치고, 점점 제 차례가 다가옵니다. 그 사이에 저는 긴장한 채로 무슨 말을 할지 빠르게 생각하죠. 그렇게 짧은 머리 속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나서 완벽하게 말해내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입을 열지만 머리는 백지장처럼 하얘집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가 이불 속에 들어가면 말을 더듬은 순간들과 못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아쉬워하죠. 정작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들이 대부분일텐데 말이죠.
이러한 이유로, 이 자기소개는 아트인사이트에서 처음으로 겪은 큰 도전이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자기소개라니! 사실 글쓰기로 저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집중되는 묵직한 공기를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만, 단순히 저의 정보를 나열하지 않으면서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진중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취향을 형성하게 된 과정을 설명해보기로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들을 처음 접했던 계기, 그것들을 좋아하면서 넓혀 간 시야,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의 나에게 미치는 영향. 이 모든 것들을 ‘세계관’이라는 단어로 엮어서 저의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저는 이 도전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우선, 저는 자기소개 막바지에 언급된 저의 다짐을 나름 잘 지켜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탐색하며 공감과 이해의 연결고리를 찾는 글을 쓰고자 합니다. 또한, 지난 해 영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잠시 런던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지는 모르겠지만, 에디터 활동 기간 동안은 이 도시를 산책하며 이방인이 보는 영국과 영국 속 한국 문화를 다뤄볼 예정입니다.”
이 다짐은 제가 앞으로 어떤 기고문을 올릴지 간략하게 설명한 일종의 짧은 콘텐츠 기획안이었습니다. 자기소개 이후로 제가 써왔던 글들을 쭉 둘러보니, 이 다짐대로 기고문을 통해 일상에서 얻었던 문화적 인사이트를 지속적으로 나눠 온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남은 3편의 지난 기고문들을 소개하며 이 이야기도 조금 더 해볼게요.
두 번째로 만족스러웠던 것은 이 자기소개가 저의 오타쿠력을 표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자기소개에서 애니, 야구, 커피, 10년 이상 함께한 애착 곰돌이 “매돌”을 서두에 언급했는데요, 이것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공개적인 플랫폼에서 외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즐거웠습니다. 물론 아트인사이트가 분야에 제한을 두거나 기고문의 분량과 형식에 까다로운 조건을 두지는 않습니다만, 두 달 동안 저 네 가지만 다룰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기소개에는 저의 사심을 꽉꽉 눌러담았습니다. 이 자체로 자기소개는 최고의 만족도를 지니는 도전이었습니다.
미술 애호가, 공연을 다뤄보다
[Opinion] 웨스트 엔드에서 가장 오래 운영된 공연, ‘쥐덫(The Mousetrap)’의 장수 비결은 무엇인가 [공연]
미술계에는 워낙 학문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 많기에 아직은 스스로를 ‘전문가’보다는 ‘애호가’로 인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만, 어쨌든 보고 공부한 것들이 대부분 시각예술이다보니 [미술/전시] 카테고리의 기고문을 자주 다뤄왔습니다.
이 글은 수습 기간 후 본격적으로 에디터 활동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미술과 전시가 아닌 장르를 다뤄 본 기고문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런던에서 70년 이상 운영해 온 연극 “쥐덫”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입니다. “쥐덫”은 추리극이라 내용 자체도 즐거웠고, 수십년간 운영된 공연이라는 점도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져서 이것을 소개해보고 싶었어요.
미술과 전시가 아닌 장르의 문화예술 기고문을 작성해 본 첫 도전, 이번에도 크고 작은 성취감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저명한 언론사인 가디언(The Guardian)의 기사나 한국에서 열린 쥐덫 공연 현황 등 다양한 출처에서 정보를 수집해 초안을 구성하고, 이것들을 저의 감상과 녹여내어 연극 자체의 작품성과 경영적 측면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었어요.
청중으로서 “쥐덫”을 보며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을 아트인사이트에서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저는 내용보다도 배우들이 커튼콜에서 관객들에게 당부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쥐덫>을 보았으니, 이 범죄의 공범이 된 것입니다. <쥐덫>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Whodunnit(범인 찾기)의 비밀은 이 방에 남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연설명을 곁들이자면 추리극의 특성 상 사건의 전말이 외부에 공공연하게 알려지면 연극에 대한 기대감이 반감되기에 공개적인 곳에서의 스포일러는 자제해달라는 것을 요청하는 뜻인데요, ‘공범’이라는 표현을 통해 연극이 끝나고 나서도 관객들을 극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방식이 무미건조하게 입단속을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연극의 장수비결로는 원작자 아가사 크리스티의 브랜드 파워와 그녀의 스토리 구성 능력, 그리고 최장수 공연이라는 타이틀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데, 저는 이 커튼콜 대사도 소소한 흥행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 기고문은 제가 익숙하지 않은 장르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던 도전이었습니다. 역시 뭐든 해봐야 겁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현재 해외에서 에디터 활동을 하는 중이라 문화초대에 한 번도 응하지 못했는데(눈물), 만약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뮤지컬이나 음악 공연 리뷰도 써봤을 것 같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인터뷰를 요청하다
[Opinion] Korea in London 1 - Let’s Kollab! 런던의 밤을 한국 문화로 물들이다 [문화 전반]
이 글은 런던에서 한국의 문화컨텐츠로 문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비영리단체 “Kollab”의 영국지사를 담당하고 계신 김시율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다뤘습니다. ‘에디터’로서의 저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담긴 도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지원할 당시 런던에서 지내고 있는 상황을 활용해 해외의 문화예술을 전달하는 통신원이 되어보겠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에디터가 되니 시간 내어 방문하기도 어려운 해외의 전시나 공연을 국내에 소개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닐지 스스로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요. 자칫하면 아무런 인사이트나 공감도 없이 거리감만 유발하는 기고문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돌이켜보면 다른 나라의 문화예술을 현장감 있게 전달하는 것이 여행 다큐멘터리처럼 이국적인 흥미는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쨌든 두 달 전에는 제법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진행하게 된 것이 이 인터뷰였습니다. 김시율 대표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제교류나 문화기획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문화를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그 현장을 보여주는 기고문을 한 번은 다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기고문이 저에게는 세 번째 도전이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인터뷰로 좋은 말씀을 많이 나눠주셨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답변은 해외진출을 희망하는 미래의 예술가와 문화기획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었어요.
"'국제'라는 말에 너무 압도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국경은 있을지 몰라도 감각은 공유된다고 믿거든요. 한국어든 영어든 어떤 언어를 쓰느냐보다도, 자신만의 표현 언어가 있다면 그걸 알아보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고 결국 언젠가는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그 언어는 음악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해외 진출' 자체를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지속 가능한 나만의 표현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자신만의 언어를 다듬다보면 자연스럽게 의미있는 기회들이 따라오는 것 같아요."
사실 인터뷰를 요청하여 일정을 조정하고, 사전에 질문을 준비한 뒤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는 석사 논문을 쓰며 해봤던 일이기에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거절당하면 다른 글을 쓰면 그만이기에 무조건 한 명의 인터뷰 대상자라도 구해야 했던 논문 학기보다는 편한 상황이었어요. 그렇지만 인터뷰를 수락하여 귀중한 시간을 선뜻 내어 주신 김시율 대표님께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학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외부 전문가분들과 소통을 이뤄 본 경험이었기에 이 또한 나름의 도전이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아트인사이트라는 소속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제목에서 유추가 가능하겠지만, 서두의 “Korea in London”이라는 글 옆에 숫자가 있죠? 네, 기회가 된다면 짧은 시리즈로 구성하여 다른 분들과의 인터뷰도 두세편 더 올리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다른 현실적인 일들과 병행하느라 앞으로 몇 번의 인터뷰를 더 진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트인사이트에서의 활동이 끝나기 전에는 한 번 더 인터뷰 기고문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딜리버리 댄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를 도전하게 하다.
[Opinion] 기술과 가상세계의 범람, 동시대의 “Many worlds over” [미술/전시]
드디어 마지막 기고문입니다. 이 글이 지닌 도전의 맥락은 앞의 3편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전의 글들이 에디터 활동을 시작한 계기로 이루어진 도전이라면, 이 글은 제가 에디터를 도전하게 만든 글입니다.
때는 2022년, 저는 고등학교 동기 K와 갤러리 현대에서 김아영 작가님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어요.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세계관을 구성하는 다양한 조형물, 그리고 GL 웹툰이라는 서브컬쳐의 결합이 배달라이더라는 사회적 주제와 어우러져 동시대의 한국을 보여주는 미술은 이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시는 제가 학부에서 현대미술 수업을 듣고 있을 때라, 이 때 봤던 전시를 전시감상 레포트로 제출했었어요. 이 글이 제가 처음으로 구조를 갖춰 작성한 비평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글을 다시 한번 다듬고 고쳐 아트인사이트에 지원했습니다. 번외로 제가 에디터 지원 당시 썼던 “딜리버리 댄서의 구” 기고문도 공유해보도록 할게요.
[Opinion]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작품 다시 보기 - 김아영 작가의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통해 [시각예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2023 프리즈 런던에서 다시 보게 되고, 지난 해 차기작인 “딜리버리 댄서의 선: 0°의 리시버”가 발표되면서 에디터가 되면 이 작품의 기고문을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한 편의 기고문에 전작의 맥락, 신작의 소개, 이를 아우르는 저의 해석을 모두 담느라 글의 구성이 평소보다 깔끔하지는 않아서 글 자체에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그래도 제 에디터 활동의 큰 목표 중 하나였기에 썼다는 것 자체로 뿌듯하네요.
앞으로의 도전을 기대하며
크든 작든, 우리는 도전을 통해서 한계를 넓혀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저에게는 그것이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활동입니다.
지금까지 아트인사이트에서 수습 기간을 제외하고 총 11회의 도전을 이뤄왔습니다. 남은 기간 동안에도 도전을 이어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