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빠르다. 벌써 반절이 가까이 지난 올해를 돌아보면 새삼 그 속도가 느껴진다. 그러다 보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머지 반절이 지나면 또 한 살을 먹는다는 것!
인생을 앞서간 여러 선배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나이 먹는 일은 실로 놀랍다. ‘내 마음은 예전 그대로인데, 겉모습만 변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랬다니. 내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렸을 때의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들의 부모님은, 또 삼촌 이모,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 그럴만한 때가 되어서, 모두가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조금의 이질감도 없이 나이가 드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나이 든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모두에게 낯선 일이었다.
나이 먹는 건 이렇게나 서글프기만 한 일인 걸까. 나이가 더 들게 되면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내’ 모습의 간극을 지켜보는 일이 마냥 슬프기만 할까.
아니, 그럴 리 없다. 인생은 그렇게 예정된 비극보다는 조금 더 열린 결말에 가깝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의 과거를 떠올려보게 된다.
나는 나이를 먹고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에는 ‘도대체 내 인생이 어떻게 되려나’ 근거 없는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곤 했다. ‘이번 시험을 못 보면 어쩌나’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나’, ‘대학에 못 가면 어쩌나’ 하는 나름의 ‘고민터널’이 인생의 곳곳에 장애물처럼 배치되어 있었다. 그땐 참 그 걱정들이 별거였는데. 그 터널을 이미 멀찍이 지나온 지금, 인생에서의 ‘큰 일’은 생각보다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더 관대한 시선으로 나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어릴 때에는 누군가 내게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하루 종일 마음이 곯았다. 그런데 이제는 필요한 만큼만 생각을 하고 관둘 수 있게 되었다. 나를 향한 누군가의 무례함을 마주했을 때에도 덩달아 무례해지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 나를 찾지 않고 구태여 연락해 안부를 묻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고, 그 사람이 생각난다면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능동성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더 ‘나 다운’ 사람이 되었다. 음식, 취미, 옷, 일은 물론 사람들도 내가 좋아하는 존재들로만 나의 삶을 채워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곧 나와 닮은 것들이고, 나와 닮은 것들이 모이면 일시적이지 않은 즐거움과 행복을 준다는 걸 알게 됐다. 나다워지는 건 내게는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나는 얼마나 특별한 존재일까’. ‘모두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것 아닐까’ 지레짐작하며 괜히 우울해지기도 했던 그때. 나라는 사람을 기꺼이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삶이 어느 때보다도 각별해졌다.
정확히 몇 살 때, 얼마큼씩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돌아보니 이렇게나 변했다. 의심이 많은 나는 한 살씩 나이를 더해가고, 그 대가로 얻게 되는 것들을 비교했을 때 그것이 과연 등가교환일지 아직은 확언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체로 지금까지는 수지타산이 맞는 좋은 거래였다.
이제는 한 살 두 살, 나이가 주는 무게가 늘어갈수록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나에게는 일종의 ‘나이 보험’이다. 앞으로 30대, 40대, 50대가 되었을 때. 숱한 인생 선배들의 조언처럼 남이 보는 내 모습과, 내가 바라본 내 모습의 간극이 커 조금은 슬픈 기분을 느끼게 될 때 즈음. 그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미리 생각하며 대비하는 일.
조금의 욕심을 내자면 나는 동심과 천진난만함을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때에도 여전히, 날씨가 좋으면 하루에도 두세 번 바보 같은 웃음을 짓고, 계절에 맞는 노래를 찾아 듣고, 어린아이들과 통하는 대화코드를 가지고 즐겁게 대화하고 싶다. 또, 더 넓은 마음의 그릇을 가진 인자한 어른이 되고 싶다.
아이같으면서도 어른스런. 그런 모순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기꺼이 나의 시간을 내어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