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답변이 나올 수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인물’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캐릭터가 확실하고, 그 인물에게 뚜렷한 욕망과 목표가 있으며, 독자들이 인물을 따라가고 싶어질 때 비로소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면 이야기도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명제는 가상의 이야기 속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 개개인의 삶은 각자가 가지게 되는 ‘욕망’과 ‘목표’에 따라 변화한다. 같은 환경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어떤 목표를 가지느냐에 따라 나아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유명 작품 속의 인물들을 통해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고자 한다.


 

일괄편집_KakaoTalk_20250523_000301661.jpg

 

 

먼저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 에렌 예거다.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던 에렌은 어느 날, 거인들의 습격을 받고 어머니와 고향을 잃게 된다. 에렌의 어머니는 에렌의 눈 앞에서 잔인하게 거인에게 잡아먹히게 되는데, 이는 에렌에게 강력한 복수의 동기가 된다. 거인들을 모조리 섬멸하고 자유를 되찾겠다는 에렌의 강렬한 욕망을 만들어 준 것이다. 만약 에렌이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지 않았더라면, 그가 주인공의 운명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복수의 동기’가 없는 에렌은 굳이 훈련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 에렌 예거가 <진격의 거인>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캐릭터가 강렬하고도 뚜렷한 목표와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복수’와 ‘자유’로 정의할 수 있는 에렌의 욕망처럼, 어떤 욕망은 굉장히 뚜렷하고 확실할 수 있다.

 


일괄편집_KakaoTalk_20250523_000140561.jpg

 

 

하지만 욕망은 복잡할 수도 있는 법이다. 최근 영화로도 상영된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의 주인공 ‘조각’을 예시로 들고 왔다. 60대 여성 킬러 ‘조각’은 날카롭고 예리하며, 인정사정없이 ‘방역’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조각은 한 사람에게만 예외를 두기 시작한다. 임무를 수행하다가 다친 자신을 구해 준 동물병원 의사, 강 선생이다. 조각은 정체를 들킬 위험이 있다면 제거해야 한다는 규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강 선생을 살핀다. 이런 조각의 마음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앞에서 소개했던 에렌 예거의 욕망이 그의 직업인 ‘조사병단’과 이어지게 되는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있다면, 강 선생과 그의 가족을 지켜 주고자 하는 조각의 목표와 욕망은 그녀의 삶을 이루는 직업 ‘킬러’와는 완전히 대칭되는 종류다. 조각이 자신의 욕망을 쉽사리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처럼 욕망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생겨나 어느 순간 튀어나오게 된다. 우리의 삶이 나아갈 방향을 정확히 말해 주는 게 아니라, 슬그머니 방향을 비틀어 버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게 욕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욕망’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욕망이라는 특별한 동기가 없다면 사람의 삶은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일까? 에렌 예거나 킬러 조각처럼, 특별한 욕망이 있어야만 우리는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이 질문에 관한 답으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주인공 ‘애순’을 데려오고 싶다. 애순은 어릴 적에는 시인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고, 엄마에게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겠다는 확실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삶을 살아갈수록 애순의 꿈은 사라진다. 진주 목걸이를 걸어줄 엄마를 잃고 시인이 될 수 있는 길이었던 학교를 들어가지 못한다. 애순의 욕망은 그렇게 옅어져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순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욕망을 만들어낸다. 관식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인 금명이와 은명이를 잘 키우는 게 애순의 욕망이었을 것이고, 관식과 함께 평온하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게 그녀의 욕망이었을 것이다. 애순의 모습은 아주 특별한 욕망이 없어도,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우리의 욕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그렇게 특별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욕망이란 게 어려운 게 아닌 것 같다.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글의 제목의 빈칸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묻고 싶다.

 

당신의 삶을 만들어 가도록 하는 당신만의 욕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KakaoTalk_20250415_213353869.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