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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두 보이스카우트는 그저 알려주고 싶었다. 

자신들이 얼마나 괜찮은 사내가 되었는지, 얼마나 크고 강한 사람이 되었는지.

 

여기에 두 소년이 있다. 군인 일이라면 못하는 게 없는 '에이스'와 군인 일 빼고는 못하는 게 없는 '그래스하퍼'. 두 소년은 작은 몸을 부풀리며 군사 작전을 세운다. 서로 등을 맞대고 정체 모를 적을 향해 총을 겨눈다. 마침내 적이 섬멸되면, 그들은 자신의 조그만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서로에게 내민다. 그 손을 단단히 마주 잡을 때, 서로 힘을 합쳐서 악을 물리쳤다고 믿을 때, 그들은 실제 전장에서 승리를 거둔 군인처럼 우쭐해진다.

 

소년들은 궁금해진다. 상상 놀이만으로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실제 전장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압승 소식이 '그 남자'의 귀에 들어간다면? 마침내 '그 남자'가 소년들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면? "오, 말도 안 돼!" 소년들은 몸을 크게 부풀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발을 구른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기쁠 거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장난감 총을 갖고 놀던 소년들의 손에 진짜 총이 쥐어진다. 상상에만 존재하던 적에게 형체와 소리가 부여된다. 어제까지 함께 떠들었던 동료가 오늘 죽는다. 다음 날, 그들은 또 총을 쥔다. 적을 죽인다. 모든 것은 실제 상황이다. 상상과 다른 점은 딱 하나다. '그 남자'는 결코 소년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 소년들의 이름도, 목소리도, 마지막 순간도, 그 남자의 귀엔 닿지 않으리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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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년에게서 온 편지: 수취인불명>엔 에이스와 그래스하퍼, 단 두 명이 등장한다. 무대엔 자막 제공용 스크린과 타이어뿐이지만, 10년 넘게 뉴욕에서 합을 맞춘 퍼포머 클로이와 나타샤는 타이어를 굴리고, 뛰어넘고, 바닥을 구르며 공간을 채운다. 그들이 얼굴과 팔다리에 진흙까지 묻혀가며 뛰어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전쟁에서 이름을 날려 '그 남자'에게 기억되는 것.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3분에 한 번씩은 이름이 불리는 그 남자, 바로 미국 제36대 대통령 린든 B. 존슨(LBJ)이다.

 

"All the way with LBJ(LBJ와 함께 끝까지)!" 린든 B. 존슨이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내세운 슬로건이다. 그는 "끝까지" 가난과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힘썼으나 "끝까지" 베트남 전쟁 관련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가 베트남 전쟁 확전을 결정한 후 일관성 없는 정책을 내세우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그런데도 소년들은 대통령에게 인정받길 원했다. 그게 남성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라고 생각했으니까.

 

소년들의 인정 욕구를 영리하게 이용한 게 바로 '보이스카우트' 제도다. ‘지형을 순찰하고 탐색한다’는 뜻의 스카우트(Scout)는 1907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책임감, 모험심, 연대 의식 등 군인에게 필요한 자질을 강조한다. 로버트 베이든 포웰 소장은 소년 척후병 덕분에 불리한 전투에서 승리했던 경험을 토대로 보이스카우트를 만들었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미군 장교 중엔 보이스카우트 출신이 유독 많았는데,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고된 훈련을 거치며 국가에 이로운 인물이 되고자 했다. 에이스와 그래스하퍼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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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에이스는 반가운 소식을 듣는다. LBJ가 탑승한 기차가 마을 주변을 지나간다는 소식이었다. 에이스는 결심한다. LBJ에게 트럼펫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고요한 새벽, 바람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만 들리는 철길. 에이스는 꽤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트럼펫을 들고 있다. 발이 저리고 팔이 떨리지만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 그때 멀리서 기차 경적이 들린다. 에이스는 힘껏 트럼펫을 연주한다. 기차는 엄청난 속도로 에이스를 지나친다. 그 찰나의 순간. 에이스는 LBJ가 분명 자신의 연주를 들었으리라고 위안한다. 글쎄, 과연 그럴까.

 

인생은 흔히 기차에 비유된다. 한 번 출발하면 쉽게 내릴 수 없다는 점도 비슷하지만 가장 큰 공통점은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소년들은 대통령에게 아주 '찰나'일 그 순간을 위해 인생을 바친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든 닿았으리라고 믿는다. 심지어 그래스하퍼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들으면 LBJ를 떠올린다. "아기 때 한두 번쯤 만났"을 친부가 이제 곁에 없으니, 미디어에서 강인한 지도자로 그려진 LBJ가 소년의 마음속에서 아버지로 기능하는 것이다. 소년들은 아버지에게 '남성'으로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 마침 에이스와 그래스하퍼가 사는 마을엔 '남성'이 되려는 소년들을 위한 전설이 있었다. 마을 끝 절벽에 올라가 거머리가 득실득실한 호수로 떨어지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년들은 험준한 절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받길 바라면서.

 

전쟁터에서의 인정은 전사자 수로 결정된다. 책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따르면 당시 장교들은 사병들에게 베트남인을 얼마나 죽였는지 보고하라고 강요했다.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었기에 미국은 승리하기 위해선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해해 살아남은 자들이 더는 버틸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군인들은 사람들을 죽였다. 사람들은 사람들을 죽였다. 에이스와 그래스하퍼의 한 동료는 어부에게 표적을 던져 죽이는 '놀이'를 한다. 그 동료는 이렇게 변명한다. "착한 군인일 땐 뭘 해도 괜찮잖아."

 

어딘가 이상하다. 장난감 총을 들고 군사 작전을 세우던 소년들이 상상한 건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젠 질문할 수 없다. 질문할 시간에 총을 들어야 했으니까. 적에게 총을 겨누며 절벽에 도달한 소년들은 마침내 호수로 뛰어내린다. 소년들은 눈을 꼭 감고 거머리가 자신의 피를 빨아먹길 기다리지만, 그 호수는 머리까지 잠길 만큼 깊지도 않았고 거머리도 없었다. 소년은 절벽을 오르느라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소년은 호수로 뛰어내리기도 전에 어른이 되어버렸다. 이제 어른이 되었으니 마을로 돌아가야 하는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른이 되느라 힘을 다 써버린 탓이다. 소년들은 이제 다신 돌아갈 수 없다. 친구와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며 "평생 나랑 이거 해줄 거지?"라고 묻던 그때로, 진정한 '남자'가 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던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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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일이라면 못 하는 게 없던 에이스는 결국 총을 맞고 죽는다. 군인 일 빼고는 못 하는 게 없던 '그래스하퍼'는 결국 살아남아 에이스의 손을 붙잡는다. 소년들의 이름과 목소리, 마지막 순간은 결국 "수취인불명"의 편지로 남는다. "수취인불명"으로 판정된 편지는 보통 발송인에게 반송된다. 문제는 이제 발송인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취인도 발송인도 없는 이 편지는 몇십 년 간의 반송을 거친 끝에 우리에게 전달됐다.

 

책임을 따질 사람도 책임을 질 사람도 없는 지금, 이 편지는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간직될까.

 

그렇게 간직된 목소리는 또 어떤 이름과 목소리와 마지막 순간을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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