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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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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앤서니 브라운의 동화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9년 만에 보러 간 앤서니 브라운이었다.

 

알던 것도 까먹을 시간이라 조금은 낯선 마음이었는데 혼자 다니는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직원을 보며 입장한 탓인지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 대부분이라 조금 머쓱한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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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새 앤서니 브라운이 팔순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나 나이 드는 건 생각 안 하고 남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도 잠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나이는 잊기로 했다.

 

그의 가족애가 드러나는 신작은 꾸준히 나오고 있었고 작년에는 그의 시그니처인 고릴라를 비롯한 영장류가 등장하는 동화도 발매되었다. 앤서니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곳에서 우리에게 줄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다.


편견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난히 가족 이야기를 많이 담은 영국 작가라고 하니 왠지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는 정원 있는 집에서 화목하게 자랐을 것 같은데 영국 북부, 조부가 운영하는 펍에서 자랐다. 생계를 위해 의학전문 삽화가로 일했는데 그 이력은 초현실주의와 그림을 통한 이야기 전달로 이어졌다고 한다.

 

동화처럼 보이지 않았던 과정이 모두 동화로 가는 길이었다니.

 

 

 

고릴라 할아버지의 어떤 <고릴라>


 

일명 고릴라 할아버지인 앤서니 브라운이라 고릴라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1983년에 발매된 <고릴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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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한나가 고릴라를 좋아하는 걸 알지만 너무 바쁜 나머지 함께 동물원에 가서 고릴라를 보는 대신에 고릴라 인형을 선물한다.

 

밤이 되자 인형은 진짜 고릴라가 되어 한나를 동물원에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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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신문을 펼쳐두고 한나와 본인 사이에 벽을 만드는 아빠. 고릴라가 몸을 기울여 한나를 바라보는 장면을 보고 나서 다시 이 장면을 보면 차갑고 딱딱한 분위기가 강조된다.

 

특히나 고릴라와 함께할 때는 식탁에 간단한 아침상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와 패스트푸드가 올라가 있어서 특히나 대조적이다. 어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 장면에서 고릴라는 절대 아빠 대신이 될 수 없다고 느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 말고 아이가 싫어하더라도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는 게 부모니까.

 

 

 

어떤 가족의 이야기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의 책에는 가족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돼지책'은 아이가 볼 때와 어른이 볼 때가 특히나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 집안일을 도맡아 하던 엄마는 어느 날 '너희는 돼지야'라는 쪽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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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아들의 일상은 알록달록 한데 엄마의 일상에는 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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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생활에 아빠도 아들도 개도 전화도 전등도 벽지도 모두 돼지가 되었다. 엄마의 쪽지가 있는 장면에서는 돼지가 문양 사이사이에 숨어있었는데 이제는 화면 가득히 전부 돼지였다.

 

엄마가 돌아오고 아빠와 아이들은 집안일을 돕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끝은 세 사람의 반성이 아니다. 엄마가 고치고 있는 차 번호는 PIGS 123을 뒤집은 SGIP 321 이었다.

 

이야기의 끝은 달라진 세 사람과 행복한 일상을 보내게 된 엄마일까, 아니면 잃었던 자아를 찾으며 돼지를 떠나보낼 수 있는 가능성을 품게 된 엄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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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 몇 년 뒤에 출간된 동물원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발견된다.

 

앤서니 브라운이 소설을 썼으면 어쩌면 사회고발로 이름을 떨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림 속 숨은 그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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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책도 그렇지만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 전반에 많은 요소들이 숨어있다. 일례로 앤서니 브라운이 재해석한 전래동화인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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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을 내려다보는 새엄마의 그림자는 커튼 사이 어두운 밤하늘과 이어져서 뾰족한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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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앨리스는 하늘색 원피스에 하얀 에이프런 대신 당근 같은 느낌을 주는 착장이란 것도 인상적이지만 배경에 있는 세계지도에 앤서니 브라운의 섬세함이 담겨있는 점에 특히 주목할 만하다.

 

지도를 단순화하면서도 생략할 수 없는 부분은 비슷한 이름으로 대체했는데 사실인 듯 아닌 듯 묘한 줄타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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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어린 시절을 담은 캐릭터 윌리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느껴지는 고릴라는 왠지 말하기 쉽지 않은데 그 외의 여러 다른 다양한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어서 이번에는 그런 작품 위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앤서니 브라운의 장점을 이야기하다 놓치기 쉬운 초현실적인 그림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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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면서 동심을 주워 담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앤서니 브라운은 오랜 시간에 걸쳐 온 세상의 것들을 담았는데 그의 절반도 살아보지 않고서 어른의 시선이라는 말을 쓰려니 비겁하게 느껴진다.

 

옆에서 슬쩍 동심을 엿보고 온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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