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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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과 평화로운 풍경, 그 뒤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영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서실리아가 가장 먼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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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소녀의 죽음


 

영화는 1970년대 미국 미시간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3살 서실리아, 14살 럭스, 15살 보니, 16살 메리, 17살 테리즈, 이 다섯자매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또 다른 중심에는 느릅나무가 있다. 느릅나무는 북유럽 신화에서 여성의 생명과 지혜를 뜻하는 나무로 여겨지며, 여성의 생명력과도 연결된다. 마당에 있던 느릅나무는 자매들이 특히 아끼던 나무였다. 느릅나무가 병에 들어 잘릴 위기에 처하자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와 나무를 둘러싸기도 했다. 결국 영화 후반부에 느릅나무는 환경관리원들에게 잘리고 만다.

 

영화를 보다보면 집안이 폐쇄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매들은 몸에 붙는 옷은 입을 수 없었고, 파티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며,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면 차를 탈 수 없었다. 숨막히는 집에서 서실리아는 자매들 중 가장 첫 번째로 죽음이라는 방법을 이용해 탈출하고자 한다.

 

막내 서실리아의 죽음은 단순 비극 이상의 것이었다. 서실리아는 총 두 번의 자살기도를 하는데, 그 중 두 번째는 안타깝게도 성공하고 만다. 첫 번째 시도 이후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아 서실리아의 갈증을 해소해보려 했지만 이미 깊게 벌어진 균열을 메우긴 힘들었던 것 같다. 부모는 서실리아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지 못한 채 자매들을 더 통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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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스의 일탈


 

영화는 두 가지의 큰 사건을 기점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가 서실리아의 죽음이고, 두 번째는 럭스의 일탈이다.

 

럭스는 트립이라는 교내 인기남의 관심을 받고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함께 프롬파티에 간 날, 둘은 밤을 지새운다. 그러나  트립은 그 날 밤 럭스를 운동장에 내버려둔 채 혼자 자리를 떠나고 남겨진 럭스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통금 시간을 넘겨 다음 날 아침 집에 들어간다.

 

럭스의 일탈 이후 자매들의 부모님은 더 강한 통제와 감정적 억압을 보여준다. 학교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럭스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담겨있는 LP판들을 불태우고 버려버린다. 집이 제일 안전하고 좋은 장소라며 자매들을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버린다.

 

럭스는 억압된 환경에서 자유를 가장 크게 갈망하고 발산하려한 인물이다. 겉으로 보기엔 감정에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상실감과 깊은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럭스는 억압된 삶에 대한 반항과 트립에 대한 트라우마로 성적으로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 남자들을 지붕으로 불러들여 성적 행위를 즐기면서 자기 파괴적으로 행동한다. 부모의 통제 속에서 자신의 몸을 이용해 자유를 발산한 것이다.

 

럭스의 이러한 행동들은 단순한 반항이라기보다 삶에 대한 깊은 무력감과 외로움의 표현이었다. 럭스가 표현한 자유는 결국 해방이 아닌 자신에 대한 또 다른 굴레를 만들어버렸다. 행위 이후 지붕 위에 앉아 홀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그녀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인지 보여준다.

 

럭스의 행동과 자매들의 죽음은 한 가정의 소통의 부재와 통제, 억압이 낳은 비극적인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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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진 수어사이드' 로 보는 청소년 자살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은 입시와 사회적 압력 속에서 살아간다. 자매들처럼 도망칠 곳이 없는 청소년들은 자살이라는 비극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버진 수어사이드'를 조금 비틀어보면 우리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소통의 부재, 감정 억압, 지나친 통제는 집이라는 공간이 감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그들의 조용한 신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지금까지의 침묵을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버진 수어사이드'는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다 본 후 자매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투영해보는 경험으로 인해 마음이 꽤 무거워진다.

 

영화가 마을 소년들의 시선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각 자매들의 정확한 자살 원인을 알지는 못한다. 사건 이후 부모님은 마을을 떠나버리고 아직도 자녀들이 왜 자살을 택했는지 이해가지 않는다고 한다. 소년들은 자매들의 자살 원인을 찾으려 애썼지만 도무지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자신들에게는 퍼즐조각이 있지만 아무리 맞춰봐도 빈 부분이 남는다고. 주변 퍼즐 때문에 이상한 모양으로 비어있다고 말이다.

 

결국 영화는 열린결말로 끝난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고 비틀어진 퍼즐조각은 스스로 맞춰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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