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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오랜 시간 불리운 노래는 널리 전파되며 지역별로 다른 특성을 지니며 발전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 역시 그렇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아리랑은 경기아리랑이며, 밀양아리랑의 곡조에서 경쾌함이 전면에 나선다면 강원의 정선 아리랑에서는 구슬픈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지역마다 음률과 속도, 가사에 차이가 있지만 각 지역의 아리랑이 묘사하는 상황은 대개 오래 보지 못할 임을 그리는 것이며, 공통적으로 자주 들리는 가사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이다.


지금이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터치 한번이면 얼굴을 보며 실시간 소통을 할 수 있는 시대지만 옛날옛적에는 제때 연락이 닿지 못해 벌어지는 오해와 슬픔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먼 길 떠나는 소중한 이의 여정도 걱정되고 남은 이는 자기 앞에 남은 기다림에 눈앞이 캄캄해졌을 테다. 교통 수단의 발달 수준도 지금과 다르니 떠나는 길, 돌아오는 길 모두 얼마나 요원하게만 보였을까. 먼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달라는 바람은 바로 그렇게 노래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필자가 아리랑의 특징과 정서에 잠시 골몰해 본 이유는 얼마전 강원도 정선아리랑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 퍼포먼스 공연 <아리아라리>를 감상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 인근에 위치한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아리아라리> 6년만의 귀환 공연이었다. 전통음악, 무용, 서사극, 영상을 결합한 퓨전극인 <아리아라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초연되었다. 최근 2년간 이 공연은 호주 애들레이드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 세계 주요 예술 축제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정선아리랑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아리아라리>를 제작한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의 노고가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정선아리랑의 유래로는 고려 7현의 한시가 언급된다. 조선 건국 후에도 고려 왕조에 충성하던 고려 7현이 정선에 은거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지은 한시가 정선아리랑의 가사에 인용되었다.* 정선아리랑 설화로는 두 강이 만나는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배를 띄워 만나며 사랑을 키웠던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설화에는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결말이 있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에 아우라지가 있다. ‘아우라지’는 두 강이 서로 만난다는 의미로,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곳이다. 옛날 아우라지에 사랑하는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강 이쪽과 저쪽에 살아 배를 타고 만나 동박(동백)을 따러 다녔다. 어느 날 그 전날 밤에 내린 비 때문에 배를 띄울 수가 없자 총각은 그리운 마음을 담아 노래를 지어 불렀다. 또 다른 설화에는 한양에 간 총각이 나무 판 돈을 탕진하며 한양에서 여자를 만났다. 매일같이 정선에서 총각을 기다리던 처녀는 그만 아우라지에 투신 자살하고 말았다. 이후 아우라지에는 해마다 두 세명의 사람들이 빠져 죽어 처녀상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 지역N문화, <강원도 지역의 전설: 정선아리랑과 함께 불리는 아우라지>

 

 

정선아리랑문화재단의 <아리라라리>는 정선아리랑 설화 중에서도 후자와 연관이 깊어 보인다. ‘아우라지를 사이에 둔’ 남녀가 등장한다는 점과 한양에 간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자라는 설정이 해당 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리아라리>는 설화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가기보다는 설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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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라리>는 아우라지를 사이에 둔 유천리 총각 신기목과 여량리 처녀 이정선의 혼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70여 분 간 활기차게 진행되는 극의 전개 속도는 꽤 빠른 편이어서 혼례, 첫날밤, 그리고 부부의 딸인 신아리가 태어나는 날까지 막힘없이 흘러간다. 기목은 딸의 출생을 기념하여 ‘신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짓는다.


한양에서 ‘경복궁 중수’를 위해 좋은 목재를 진상하고 실력 있는 목수들을 올려보내라는 명이 떨어진다. 정선 지역의 제일 가는 나무꾼이자 목수인 기목은 다른 목수들과 함께 한양으로 떠난다. 이 공사에서 기목은 큰 돈을 벌지만 한양 기생 애월의 꾐에 빠져 노름판에서 모든 돈을 탕진한다. 노름판 왈패들에게 심한 폭행까지 당한 기목은 아무런 연고 없는 한양에서 기억을 잃고 무려 15년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다.


고향에 남은 기목의 노모와 처 정선, 딸 아리는 기목이 죽은 줄 알고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 같은 마을의 장돌뱅이로부터 기목으로 의심되는 남자의 소문을 듣는다. 기억을 잃었지만 정선아리랑 곡조를 기가 막히게 부르는 남자가 한양 길거리에 있다는 소문이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일 거라 생각한 아리는 장돌뱅이 아저씨를 따라 한양에 가고, 재인청 주관의 놀음 경연을 통해 아버지를 찾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아들의 소식을 듣고 맥이 풀린 기목의 노모가 수명을 다한다.


남장을 하고 사당패에서 재주를 부리며 경연 참가자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아리는 소문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남자의 목에는 정선이 만들어 준, 아리의 것과 같은 목도리가 둘러져 있다. 여기에 그가 신아리랑을 부를 줄 아는 것을 보고 아리는 그가 자신의 친부임을 확신한다. 아리의 설명에 기억을 되찾은 기목은 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아내를 만난다. 가족은 마침내 상봉한다. 정선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아리의 청아한 목소리가 해후의 기쁨을 노래에 실으며 막이 내린다.


정선과 기목의 이름은 정선아리랑 자체와 관련 설화를 연상시킨다. 부부의 딸 신아리는 극중 불리는 ‘신아리랑’을 비롯해 정선아리랑을 토대로 만들어진 새 이야기와 노래들을 상징한다. 설화 속 한양에 눌러 앉은 남자에 착안해 만들어졌을 것이나 기목은 남자와 다르다. 기목은 자신의 딸 아리 덕분에 보고 싶은 아내가 있는 고향 마을로 물을 넘고 고개를 넘어 돌아온다. 정선 역시 설화 속 여자와 달리 정인을 영영 잃지 않으며 제 목숨도 잃지 않는다. 옛 이야기에 담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은 현대인들이 지은 새로운 이야기는 설화와 달리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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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문화와 오늘날의 문화, 한국 예술과 서양 예술 장르 형식이 퓨전된 공연인 <아리아라리>에는 흥미로운 조합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이 공연의 백미로 꼽는 대목은 경복궁 중수 장면이었다. 목수들이 차례로 커다란 목재를 자를 때 톱질하는 몸의 움직임이 가야금 혹은 거문고 연주 배경음악과 연결되는 연출이 아주 재치 있었다. 이어 목수들이 본격적인 궁궐 공사에 돌입하는 것을 난타 퍼포먼스로 보여주었는데 망치질과 못질이 박력 있고 신나는 연주와 함께 어우러져 관객의 흥을 돋우었다.


국가기록원 포털에서 발행한 아리랑 e-book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아리랑'은 1865년부터 시작된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때 전국적인 민요가 되기 시작했다고 본다’고 한다. 정선아리랑 설화에서 남자가 한양에 나무를 팔러 갔다는 내용과 극중 기목의 목수 설정, 그리고 실제로 아리랑이 전국적으로 전파된 경복궁 중수 시기, 극중 기목과 가족이 떨어지게 되어 정선아리랑의 구슬픔이 배가되는 시작점이 모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데서 일종의 쾌감이 온다. 경복궁 중수라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극에 영리하게 녹여 낸 결과 퍼포먼스 면에서도 뛰어난 연출이 나온 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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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의 영리함과 재치를 느낀 부분은 극의 후반부에도 있었다. 정선아리랑은 경기아리랑에 비하면 비교적 낯선 음악이지만 70여 분의 공연 시간을 내내 정선아리랑 곡조 모티프의 음악으로만 채운다면 관객은 쉽게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경연 설정은 음악 구성의 다양함을 더한다. 다양한 참가자가 각기 다른 재주를 선보여야 하는 경연의 특성 덕에 민요 정선아리랑에 근간을 둔 공연 <아리아라리>에서 우리의 또다른 전통인 판소리 춘향가의 어사출도 대목이 나오더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안무 면에서는 전통미 있는 동작들 사이사이 감초처럼 발레와 비보잉 동작이 들어가 변주를 만들었다. 풍류대회 장면에서 풍물놀이 상모꾼의 상모 돌리기 동작도 보는 즐거움이 컸다. 판소리 공연에 관객들의 추임새가 들어가도 무리함이 없듯이, 긴 상모끈이 너울거리며 관객석으로 넘나드는 것 또한 무리함이 없었다.


<아리아라리>에서 오래 헤어져 있던 가족을 다시 이어준 것이 정선아리랑 곡조를 타고 흘러온 소문이라면, 아리가 기목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확신하게 도운 것은 새로 만들어진 노래 신아리랑이었다. 전통의 보존이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시간이 지나도 이어준다면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화예술을 만들어내는 창조 행위는 우리 문화의 저력에 대한 자기확신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아리아라리>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정선아리랑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알렸으며 온고지신의 범위와 의의에 대해 숙고하게 하는 극이었다.

 

 

* 내용 참조

- 아리랑마을 홈페이지

- 지역N문화 <입에서 입으로 내려온, 지역의 설화>

- 국가기록원 포털 아리랑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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